머리는 쉬고 마음으로써 뜻을 가져라
여러분은 지금 부처님 법을 믿으러 다니기 때문에 여기 이 절에 왔다고 하실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우리 한 생각, 행동 하나, 한 발자국을 다 따져본다면 하나도 진리에 관한 것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진리에서 벗어나서는 살 수가 없고, 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사실을 잘 알아야 된다고 봅니다.
여러분이 여기 가나 저기 가나 다 한도량인 것입니다. ‘한’이라면 전체를 말합니다. 예전에도 내가 말했지만 전 우주의 근본이 인간 마음의 근본에 직결돼 있다고요. 이 세상에 죽은 세상 산 세상이 다 가설이 되어 있어서 그 의식 자체가 전부 근본에 가설이 돼 있고요. 그래서 모두 공생 공용 공체 공식화 하고 돌아가고 있다고요. 그러기 때문에 지수화풍을 바탕으로 두어서 광력 자력 통신력 전력이 우리에게 충만히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두고 말해서, 하늘을 받치고 땅을 딛고 그대로 원을, 전체를 같이 굴리는 걸 말합니다. 그래서 백지를 알아야 붓대를 굴릴 수 있고, 붓대를 굴릴 수 있어야만 중생을 제도한다 이런 뜻입니다.
이 땅을 한 발로 디뎠다고 하는 것은 평발을 말하는 겁니다. 전체 도량을 디딘 거죠. 전체를 받치고요. 전체를 굴리고요. 그래서 불바퀴는 그대로 영원한 걸 말하고 물바퀴는 지혜를 말하고 법바퀴는, 즉 말하자면 대권(大權)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대권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거와 같이 그렇게 허명무실한 게 아닙니다. 자비의 대권은 그렇게 무서운 것도 아니고 안 무서운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건 절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좀더 주의해야 할 상황, 이런 것을 오늘은 좀 얘기하려고 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수많은 생명들의 의식이 주어져 있다고 그랬죠.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여러분의 몸 바깥에도 자력으로써 밀어내는 게 있고 밀어당기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몸에만 있는 게 아니라 지구에도 있고 어떤 혹성에도 있습니다. 즉 말하자면 나고 들고, 든번 난번 교차해가면서 방어하는 게 있단 얘깁니다. 그걸 세 가지 요건이라고 그러는데요, 이 몸으로 비유하겠습니다, 사실이니까.
그래서 밀고 당기고 밀어내고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바로 든번 난번 이렇게 방어를 해서 지키는 게 있다 이겁니다. 지키는 건 뭐냐면, 레이다망에서 들이느냐 내느냐의 그 지키는 관리인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러면 거기에서 만약에 상황이 달라졌다고 판단했을 때 이 레이다망에, (머리를 짚어 보이시고) 즉 누진통(漏盡通)에 직결이 되는데 우리가 무슨 상황이 벌어지면 벨을 눌러서 온통 집안 식구들을 다 모으듯이 그렇게 해서 이 안에 있는 의식 자체가 전부 쏟아져 나가게 돼 있습니다, 방어하기 위해서. 그러면 그걸 뭐라고 그러느냐? 바깥에서 들어오는 것, 안에서 나가는 것 이걸 상황에 따라 대치를 하기 위해서, 방어를 하기 위해서, 서로 순환을 하기 위해서 나가는 걸 뭐라고 하느냐? 그것을 이 세상에서는 ‘오로라’라고 이름 짓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할 땐 모습 없는 의식 자체란 말입니다. 그러면 모습 없는 의식 자체가 한생각에 만 개가 되느냐, 천 개가 되느냐, 하나가 되느냐, 하나도 없어지느냐. 이거는 바로 작용에 따라서 그렇게 생기고 일어나고 줄고, 일어나고 주는 거다 이겁니다. 그럼 바깥의 생명들은 없느냐. 그게 아닙니다. 바깥의 생명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도 안에서 일어나서 나가고 바깥에서 일어나 들어오고 하는 그 과정이 있고, 안에서 일어나가서 그냥 대치를 하는 게 있고 여러 가지 조건이 있죠, 상황에 따라서. 우리가 지금 살아나가면서 남을 만나는데 상황에 따라서 싸움도 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 좋게 화하게도 할 수 있고, 돈을 받고 그냥 치우는 것도 있고, 서로 좋게 해서 술을 마실 수도 있고, 이러한 문제를 비유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주권은, 대권은 누가 가졌느냐. 여러분에게 직결돼 있는 근본에 따라서, 마음에 따라서 금방 할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여러분의 믿는 마음에 따라서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믿지 못해요. 왜 믿지 못하는지 난 알 수가 없어요.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러분은 자신을 믿지 못하거든요. 자기가 자기를 믿지 못하고, 자기가 지금 행을 하는 거를 모르고, 자기가 지금 어떻게 돼서 말을 하는지 어떻게 돼서 한 발 한 발 떼고 있는지 그걸 모른단 말입니다. 그게 어디서 나오는지 말입니다. 그게 다 어디서 나옵니까?
여러분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을, 즉 말하자면 화두라고 하죠? 여러분이 이렇게 보이는 게 있기 때문에 바로 여러분으로 인해서 주인공도 있는 것이요, 상대도 있는 것이요, 세상도 있는 것이요, 모두 이름들도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이 아까 얘기했듯이 나를 발견하고 의식에서 벗어나면 되는 줄 알지만 의식에서 벗어나도 자기 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어떠한 게 닥쳐오든지 그거는 상관을 하지 말아야죠. 자기 지혜를 넓혀주기 위해서 다각적으로 다가오는 자기 공부 재료를 막고 ‘나는 이런 거 싫다.’ 이러는 거거든요. 여러분이 어떠한 문제가 다가오더라도 하나하나 놓고 가면서 어떠한 거든지 용도에 따라서 그냥 놓고 가거라, 그냥 놓고 가라. 그 근본에다 놓으면 다 된다. 더 위로 올라가서 내가 더 알려고 하지도 말고, 더 내려가서 모르지도 마라. 오직 거기 근본에 직결되어 있는 그 자체에만 놓는다면 그대로 한생각에 가정의 12대 종손까지도 모두 건질 수도 있다고 하는 겁니다.
한생각에서, 무슨 돈을 들여서 많이 차려놓고 하는 것보다도 한생각에 하는 게 제일 빠르다, 빠르다 이렇게 가르쳐도 여러분은 그렇게도 모르고 그저 남한테 기대고 말입니다. 모두 여러 사람들이 나이가 들고 그러면 남한테다 의존하는 마음도 생깁니다만 의존하는 마음이 더욱더 없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의존하는 생각이 있다면 모든 게 비틀어지고 모든 게 속상하고 내가 해달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아이고, 불신하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고, 나는 나대로 더 비참하게 되고 나는 나대로 더 힘이 줄어들고 병이 들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한생각에 따라서 일어날 수도 있고 누울 수도 있는 거고, 병이 들 수도 있고 병이 나을 수도 있는 겁니다. 가만히 보면은 절대적으로 아주 죽을 병이 들었을 때, 더욱더 그것은 자기가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수만 번 쓰러졌다 일어나고 쓰러졌다 일어나고, 경험을 스승 삼아서 오로지 이날까지 살아왔습니다. 이날까지 내가 손을 이렇게 한데 모으고 나를 살려달라고 애원한 때가 한 번도 없습니다. 그건 내 양심입니다. 양심에 맹세하고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 사람은 한 번 죽지 두 번 죽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지금 노래를 부르면서 그렇게 애원하고 여러 식구를 등에 업고서 걸음을 걷는데 무겁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이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면서 ‘여러분이 다 자기 자신의 자성을 알고, 의식에서 벗어나고 몸에서 벗어나고 진리 속에서, 끄달리지 않아야 여러분은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고 세계를 거둘 수 있고 평화를 가져올 수가 있는 그런 삶에 대한 보람을 느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처님!” 하면 벌써 이거는 공생(共生)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여러분은 개별적인 여러분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주인공’ 하면 포괄적인 주인공이지 어째서 개별적인 주인공입니까? 하나 얘기할까요? 작게는 여러분의 속에 들은 의식이 전부 한마음으로 합쳐진 모임의 장소 한생각일 것이고, 두번째 죽은 세상 산 세상이나 천체 한마음의 근본이 한데 합쳐지는 포괄적인 주인공이죠. 첫째도 포괄적이요 둘째도 포괄적이요 셋째도 삼천대천세계가 한데 포괄적이다 이겁니다. 이렇게 해서 한데 돌아가는데 지금 마음에서 그렇게 돌아가는 동시에 여러분이 ‘내가 물이 없다’ 이랬을 때는 포괄적인 데서 개별적으로 탁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목마른 것을 입을 축이려고 해도 포괄적으로 돌아가야만이 목을 축일 수가 있으니 이것이 공덕이다 이겁니다.
지금 내가 경고한다고 한 거는 말을 하다 보니까 지금 생각이 얼른 안 나서 그럽니다마는 여러분이 지금 주인공을 믿고 이렇게 찾고 그러는데, 찾는 게 아니라 ‘자기한테 본래 있으니 발견하라’ 이런 소립니다. 그런데 거기에 뭐가 모순이 있느냐 하면, 여러분은 주인공을 머리로 굴리려고 한다 이겁니다. 내가 이번에 철저히 여러분의 마음을 검증했습니다. 여러분이 머리로 굴리는 경향이 즉 30%, 20%는 되더라 이겁니다. 머리는 쉬게끔 내버려두고 마음으로써 뜻을 가져라 이겁니다. 믿음의 뜻! 뜻으로 내고 들이고 하는 거지 머리로 굴린다면 머리가 고장이 나요. 머리로 굴리는 게 아니라 믿는 것도 마음이요, 굴리는 것도 마음이요, 들이고 내는 것도 마음입니다. 마음에다 하면 절대로 고장이 나질 않습니다. 머리로 굴리니까 머리로 산발이 돼서 바깥으로 내닫고 머리가 도는 사람도 있고 별사람 다 많은 거 아니냐 이겁니다, 딴 짓들을 하고 말입니다.
옛날에도 내가 얘기했지만, “주인공이 나가라고 그래서 나간다. 들어오라고 그래서 들어온다.” 요런 소릴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 주인공이 나가란다고 나가고 들어오란다고 들어오느냐 이겁니다, 상황을 봐야지요. 지켜보는 놈은 누구냐 이겁니다. 한 발 딛고 받치고 굴리는 놈은 누구냐 이거예요, 굴리는 놈도 그 놈이요, 지켜보는 놈도 그 놈입니다. 이것이 내가 해서 누(累)가 될 일이냐, 누가 안 될 일이냐? 이것을 잘 보고, 내가 이익할 거냐, 이익하지 않을 거냐? 이것을 해서 남이 보기 좋은 거냐, 보기 나쁜 거냐 하는 걸 잘 봐야지요. 그런데도 무조건 주인공이 하란다고 나가서, 바깥에 가서 춤을 추란다고 춤을 추시겠습니까? ‘저 바깥에 나가서 춤을 춰라.’ 주인공에서 그런다고 하면 ‘허허! 내가 어떻게 하나 보려고 테스트해보는구나. 참! 감사하구나.’ 좀 이렇게 다시 굴려서 되놓을 줄은 왜 모르느냐 이 소립니다. 그렇다면 여기 와서 공부할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노예가 돼서 그냥 살지. 이렇게 노예짓을 하나 저렇게 노예짓을 하나 마찬가지인데 말입니다. 이 두 가지가 지금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머리로 굴리지 말라. 모든 건 마음에서 나오는 거 마음에다 놔라.’ 하는 거요. 마음에서 나온다고 그대로 하는 건 노예생활로 접어드는 길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여러분 가정에 가지 말고 다 스님이 되십시오.” 그런다면 여러분 다 스님이 되시겠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말할 거예요. 여러분이 너무나 약으셔서 “몸은 비록 이렇게 속세에 있으나 마음이야 스님과 저와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아주 틀림없이 고렇게 말을 할 분들이 많이 계세요.
여러분이 값싸게 생각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중대한 실패를 가져올 수도 있는지 모릅니다. 항상 내가 든든하더라도 한 번 더 딛고 한 번 더 흔들어보는 그런 조심이 있어야 된다 이겁니다. 항상 믿는 마음이, 물러서지 않는 마음이 자나깨나 한시도 떠나서는 안 된다는 얘기죠. 그렇다고 해서 자나깨나 손을 한데 모으고 자다가도 일어나서 그 몸짓 발짓 하는 거, 난 싫단 말이에요. 왜? 귀신인가? 아주 진득하고 무겁고 이 세상을 다 들어서 놓는 것처럼 무겁게 한마음 뜻으로 놓는다면, 이 세상이 흔들려도 여러분의 마음 그 자리는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
제가 두 가지 얘기한 거 꼭 명심하셔야 돼요. ‘머리로 굴리지 않는다. 모든 건 마음으로 믿고 마음으로 오고 가고 하는 것을 마음에다 놓는다. 믿고 물러서지 않는다. 그건 개별적인 자기가 아니라 포괄적인 자기라는 것을 안다. 근본이다.’ 이런 거 말입니다.
벌써 상식으로 생각을 해도 알겠지만 이 몸에 들은 의식 자체들이, 모습 자체들이 생명 자체들이 나와 너와 둘이 아니다. 그러곤 한마음으로 이렇게 해준다면, 한 회사에서 회장이나 사장이나 공장장이나 전부 우리는 한 도반으로서 한식구다. 그러니깐 ‘이렇게 벌어서 우리 같이 먹고 같이 살자.’ 이런다면 아, 누가 뭐랍니까? 누가 싸워요? 그러면 내 몸 안에 들은 의식들이 파워를 일으키지 않는단 말입니다. 파워를 일으켰다가도 그렇게 다 갖다가 한마음으로 놓는다면 거기에서 ‘어, 난 죽을 수 없어.’ 이럽니다. 왜? 자기가 자기를 죽일 순 없거든요, 자기니까. 곧바로 자기니까요. 그렇게 수효가 많은 이름을 가졌는데도 전부 자기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자기를 죽입니까? 대답해 보세요. 자기가 자기 죽일 마음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
어떤 때는 그냥 얼굴을 시커멓게 해가지고 오시는 분들도 여러 분 보죠. ‘에이, 저건 마음 한 번 돌리면 저 속에서 전부 의식들이 그냥 한마음이 돼주어서 파워 일으켰던 것 다 원활하게 만들고 또 세포가 부패됐던 것이 모두 원활하게 되면 저 얼굴이 그냥 뽀얗게 하얗게 될 텐데.’ 이렇게 아쉬운 생각이 든단 말입니다. 여러분이 나고 상대가 있는 거지 여러분이 나지 않고 무슨 부처가 필요 있고, 무슨 이 세상이 필요 있고, 상대가 필요 있고, 사랑이 있으며 의리가 있고 도의가 있겠습니까?
날더러 어떤 사람은 부처님 법을 설하지 않고 자기 말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진짜지 남이 해놓은 거 읽어가지고 여러분한테 말해드려야만 속이 시원하겠습니까? 또 그렇게 말한다고 싫다고 그런다면 그만이지 아니, 내가 뭐 골이 비었습니까? 싫다 그러면 그만이지. 그거 뭐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사람이 살다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데, 말하자면 그 정신을, 마음을 어떻게 해가지고 가느냐에 달려 있어요. 나도 여러분과 같은 몸뚱이를 가지고 있고 눈 코 달린 것도 같고 똑같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어땠으며 여러분의 마음은 어땠습니까? 그 마음 차이입니다.
오늘 내가 또 한 가지 말해볼까요? 아까 얘기했죠. ‘오로라’라는 의식과 안에서 일어나는 것 바깥에서 일어나는 것, 바깥에서 바로 자력으로서 밀어내고 당기고 하는 그것과 또 방어를 하는 그런 세 가지 요건이 있다 그랬죠. 그러면 그 방어를 하는 거는 두뇌에서 모든 걸, 안에서 일어나는 거 바깥에서 일어나서 들어오는 거를 연방 제시한다고 그럴까요? 통신한다 그럴까요? 그러면 안에서 일어나서 막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거 여러분한테 내가 얘기하는 것은 믿거나 말거나 할 수 없습니다. 그럼 할 수 없지 어떡합니까?
가정에서 살아나가는 것도 영계의 문제라든가, 세균의 문제라든가, 유전의 문제라든가, 업보의 문제라든가 이런 문제도 대동소이합니다, 작아서 그렇지. 여러분이 치이느냐, 여러분이 승리하느냐의 문제가 그대로 이렇게 지금 진행되고 돌아가고 있죠. 그러니까 상대성이 없으면 진리라고 이름도 안 붙었을는지도 모르죠. 상대성이 있기 때문에 그걸 용도에 따라서 항상 나눌 때가 있다면 또 같이 할 때가 있고, 유능하게 지혜 있게 굴려야 될 텐데 그거를 아차, 수습을 못 하면 그 지경이 일어나는 거죠. 여러분 고걸 잘 생각을 하셔서,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잘못되는 일은 없습니다. 왜? 나 보세요. 내가 그렇게 됐다면 얼마나 잘못됐을는지 모릅니다. 나는 그렇게 하다가 가면 가고 말면 말지 하는, 아예 그냥 다 버렸기 때문에 이만이라도 하지 만약에 버리지 않았다면 되게 걸렸을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또 우리가 어떠한 일이 있어서 고난이 일초에 그냥 막 나한테 다가왔다고 합시다. 그거를 아주 무겁게 놓고 기다리시고 지켜보셔야지 만약에 그걸 지켜보지도 않고 그냥 방방 뛴다면 아주 어지러운 일이 그대로 벌어집니다. 거기다 놓고 그냥, 모든 것을 거기 맡겨 놓고 있으면 스스로서 그냥 굴려져서 스스로 평화스러운 게 옵니다, 가정에도 모든 게. 그런데 주인공을 발현했다고 하는 분들이 어떤 땐 더 터무니없이 야단법석들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거는 오히려 더 못됐어요. 오히려 거기서 시킨다고 시키는 대로 말입니다. 발작을 일으키는 거예요. 자기가 어떡하나 볼 양으로 그러는 거를 거기 속아가지곤 자꾸 일어나니까 그거는 안 하니만 못하고, 옆의 사람들 고통만 주게 되고 자기가 고통스럽고, 외려 명주 올이 전부 묶여 돌아가게끔 만든단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데서 묶이면 보이지 않는 데서 풀어야 할 텐데, 보이지 않는 데서 오히려 묶어놓는 형상이 된다 이겁니다.
부처님의 마음, 마음자리 골수를 보려면 여러분의 골수를 알아야 부처님의 골수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듯이 여러분이 그 마음의 도리를 모른다면 어떻게 부처님께서 일산(日傘) 오백 개를 한데 합쳐서 삼천대천세계에 굴려서, 요리를 만들어서 보여준 뜻을 알겠습니까? 그러니까 자성신, 즉 말하자면 자기 자신! 자기 자신 안이 궁이거든요. 한데 합쳐서 돌아가는 궁. 그 궁, 등(燈) 밝은 그 마음들을 밝은 거기에다가 한데 그냥 합쳐서 탁 주장자를 보여주니깐 확 밝아지면서 대천세계가 그대로 잘 보이더라 이거죠. 여러분이 좀더 그렇게만 가실 수 있다면 스스로 그 궁 안의 밝은 등을 그대로 볼 수 있고, 바깥이나 안이나 다 볼 수 있어요. 머리로 보려고 하지 말고 마음으로 보게 된다 이겁니다.
봐도 도가 아니에요. 보기만 한다고, 뭐 되는 줄 아세요? 보기만 해도 안 되고 갖다가 놨다가, 들었다가 이래도 안 되고 또 이거 있다는 거 소리만 들어도 안 돼요. 도가 아니에요. 단지 이거를 (컵받침을 가리키시며) 마음대로 들고 왔다 갔다 할 줄도 알고, 볼 줄도 알고 들을 줄도 알고, 그 속을 말이에요. 이게 지금 어디서 왔나? 이거를 알아야 하고, 또 이것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이것도 알아야 하고, 그리고선 요게 요렇구나 하고선 요걸 갖다 주기도 하고, 요걸 갖다 먹기도 하고 이래야 도예요. 예? 과정이 말입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게 아니라 여러분이 벌써 이렇게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부처를 이룰 수 있고, 그 마음을 낼 수 있는 대권을 가졌다 이겁니다. 대권이라 하면은 여러분이 마음대로 자유자재할 수 있는 그런 자유를 가졌으니 그 대권을 얻어라 이겁니다.
오늘 내가 또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는데 잊어버렸어요. 생각을 했다 금방 잊어버렸다고요. 그러니 잊어버린 걸 찾으러 갈 수도 없고요. 아무튼 여러분이 처음에 주인공에 놓는 공부, 무조건 믿고 놓고 물러서지 않는 거, 아프든지 어떠한 일이 생겼어도 거기서밖에는 해결 못한다고 거기다 맡겨 놓는 거, 한 발짝도 우리가 그냥 떼는 게 없어요. 생각 하나도 그냥 하는 게 없어요.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그 의식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니깐 거기다가 그렇게 맡겨서 할 수 있도록 이렇게 하되, 자기가 발견이 됐다 하면은 둘이 아닌 도리를 알기 위해서도 또 거기다가 맡겨 놓고, 역시 거기서 하라는 대로 하지 말고, 하라는 대로만 해서 좋을 일은 하고 하라는 대로 해서 나쁠 일은 하지 말라 이거예요, 좋지 않을 일은. ‘아하! 이거 그러면 거기서 왜 그런 거를 시키나. 아! 나의 사람 됨됨이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테스트해 보는구나!’ 하고선 참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싱긋이 웃을 정도로 그렇게 좋아야죠, 맡기고. 거기에 속아서 그냥 그걸 듣고는 남의 호박 따란다고 호박 따고, 호박잎 따란다고 호박잎 따고, 도둑질 하란다고 도둑질 하고, 온통 나가란다고 나가고 들어오란다고 들어오고, 이게 무슨 야단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끌어주는 스승이 필요하다 이겁니다. 자기가 걸어보지 않고 자기가 가보지 않은 길은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꼭 이 공부하는 사람은 바로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필요하다 이런 겁니다. 그리고 또 말로만 이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한테 그렇게 해놓고 여러분이 그렇게 진실하게 이대로 하신다면 나도 거기 대동소이하게 따라주는 겁니다. 도둑놈이란 게, 뭐 망보는 놈은 도둑놈 아닙니까? 그러니까 서로 여러분이나 말을 이렇게 해드리는 나나 다 도둑놈이 되듯이, 그렇게 말을 해주었으니깐 나도 책임이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여러분 하나하나가 전부 이거는 잘못되면 안 되니까, 또 이거는 잘못될 리가 없어요. 왜? 마음에다 맡기기 때문에 잘못될 리가 없어요. 잘못된 사람도 횡설수설하는 거를 여기서 나오는구나 하고 맡겨 놓으면 그 정신병자들이 다 나아요. 본인들이 그렇게 못해서 더디지, 그냥 잠깐 그렇게 그랬던 사람은 그냥 금방 괜찮아지죠. 그러니 제 아무리 이 세상에서 잘났다고 날뛰고 아무리 권세가 좋고 돈이 많고 그렇다 하더라도, 정말 극치적으로 들어가서 본다면 새 발의 피죠.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가요, 그런 말 하면 창피하기 때문에 숨길 것 같지만 난 숨기지 않습니다. 그냥 욕을 하든 말든 할 수 없는 거죠. 내가 이번에 이틀인가, 사흘을 그냥 수분이 다 빠지고선 껍데기만 빙글빙글 도는 거예요. 안에 있는 의식들이 다 나가가지고선 채 수습을 못한 거예요. 아예 그냥 그렇게 되는 상태인데, 그 상태에서도 나는 절대로 그걸 뭐 망각하거나 그런 게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딱 받치고 서 있는 거야. 그대로 서 있죠. 이걸 굴리지를 못해 그렇죠.
그러니까 뭐냐 하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세상에 모두가 죽어도 죽은 게 없고 살아도 산 게 없구나! 지금 새삼스럽게 그런 걸 아는 건 아니지만 여러분한테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죽어도 죽은 게 없고 살아도 산 게 없구나! 한 발짝도 에누리가 없고 한생각도 에누리가 없구나!’ 그런데다가 또 여러분이 그렇게 살고 권세와 돈만 생각하고 희희낙락 ‘이것만 하면 족하지 이까짓 것 뭐 필요해.’ 이렇게 하는 사람들에 한해서 ‘참 너무나 그 사람네들이 안됐구나. 사람이 아무리 그래도 죽을 때 가서는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고, 전부 네가 좋아서, 네가 나 좋아서 따라다녔지 내가 너 좋아서 따라다니지 않았지 않아.’ 하고 돈은 달아나가지 않습니까? 자기 가족들도 전부 그렇죠, 뭐. 그런데 인간이 돼가지고 이 도리를 못 느끼고 알지 못한다면 얼마나 쓸쓸하고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고독하냐 이거죠.
그래서 여러분이 돈 있는 거는 그저 자식들이 담벼락을 지고 돌아서서 울지 않도록만 이끌어주면서, 이 마음의 뿌리를 도와주면서, 재산을 많이 주지 않아도 될 때는 조금 덜어서 우리가 이런 데 지원이라도 설립하고 또 이런 데 강당이라도 크게 하고, 이렇게 해서 좀더 여러 사람들한테 전달해서 이런 도리를 좀 알고나 죽게 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드시는 분들은 좀더 생각을 깊이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죠. 그렇다고 해서 자식들이 그냥 배고파서 울게끔 놔두고 그렇게 하라는 게 아니고요. 그게 바로 누구 자식입니까? 바로 우리들 자식이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들 부모고 말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내 가정이니까요.
그리고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이제는 앞으로 나한테 얘기는 할 수 있을지언정 들을 생각은 하지 말고 얘기만 하시고 가실 요량 하십시오. 우리 스님네들한테도 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답변은 안 합니다. 왜냐? 멋대로 생각한다면 멋대로 생각하는 대로니까. 생각을 잘 하시라 이겁니다. 생각하시는 대로 따라드리렵니다. 또 한 가지 그렇게 한다면 너무 가혹한 것 같아서요. 여러분이 생각을 잘못하시더라도 급한 상황은 얘기만 하시면 그대로 상황을 돌리겠습니다마는, 될 수 있으면 급하면 급한 대로 주인공에 다 놓고, 여기 들어오셔서 예배 올리실 때에 전체 둥글려서, 즉 말하자면 공덕의 공양을 올리는 거지 우리가 개별적인 어떤 공양을 올리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생활의 상황, 용도에 따라서 이렇게 굴리고 돌아가고, 잘 완화시킬 건 완화를 시키고 급한 건 급한 대로, 여기 와서 기도드릴 시간이 없으면 없는 대로 용도에 따라서 그냥 재깍재깍 해나가야죠. 안 그래요?
그리고 또 급하면 “스님, 이런 이런 일이 있습니다.” 그러곤 그냥 턱 끊어요. “너 들었으니까 알아서 해라.” 하고, 아니, 정말이에요. 그냥 얘기만 하고 가는 사람은요, 야! 그 사람 그렇게 알고 가는데, 믿고 가는데 어떡할 겁니까? 제 놈이. 그러니까 그게 외려 여러분한테는 낫지, 말을 시키려고 애쓰고 목탁을 두들겨줄 때를 바라고 한다면 외려 그 일은 망쳐버려요, 더뎌서. 아니 한 시간 내에 할 일을 일초에 할 일을 그냥 내일로 미루고 모레로 미루고 하는 거나 똑같아요. 그러니 그 일은 망쳐지고 말아요. 그러니까 말을 했다 하걸랑 그냥 자기만 따닥따닥 해버리고 딱 끝내요. 그렇게 하면 벌써 입력이 돼 돌아가니깐요. 자꾸 말을 시키려고 그러니까 나도 급박해지고 여러분도 믿지 못하는 게 되고, 여러분이 믿는다면 말을 다닥다닥 해놓고 입력해놓고 그냥 가버리면 되지, 아! 그 뭐라고 그렇게 그러냐 말입니다. 저 부처님이 (등 뒤의 부처님을 가리키시고) 대답해줍디까? 여러분이 그냥 자유자재껏 말을 하고 온통 원을 다 세우고서 가도 잘했다 못했다 이런 거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산 부처의 일이라는 것이, 죽은 부처의 일이라는 것이 두 가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산 부처 죽은 부처 둘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쯤 아시고 여기 무슨 껍데기만 있느니 알맹이가 있느니 하지 마시고, 알맹이가 따로 있고 껍데기가 따로 있는 게 어디 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껍데기만 있는 줄 아는 신도님은 자기가 껍데기로 돼 있기 때문에 껍데기로 보이는 겁니다. 부처가 부처로 보인다면 자기도 부처일 것이고, 껍데기로 보일 것이면 자기도 껍데기입니다. 그러니 절대로 껍데기 알맹이, 이것을 둘로 보지 마시라 이겁니다, 절대로. 그래도 그 솥 안의 그 팥죽이고, 그 팥죽 안에서 펄펄 끓는 그 방울이 솟구쳐 문수보살이 나오고 보현보살이 나오는데, 어디라고 감히 껍데기 소리가 나오고 알맹이 소리가 나오겠습니까? 여러분 조심해서 생각하시고, 지혜롭게 생각하시고, 지혜롭게 행동하신다면 이 세상에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이 행복하실 겁니다. 이 세상을 다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이 도리는.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구제를 하십시오. 신행회의 회장님뿐만 아니라 신도 전부가 하나하나 이끌어서 이 도리를 가르쳐주십시오.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가르치고 오면 오는 대로 가르치고, 그냥. 자식들도요, 자식들한테 가르치는 것 좀 좋습니까? “얘, 네 마음 안에 엄마 아빠의 마음도 부처님의 마음도 다 한데 합쳐 있기 때문에 주인공이라고 한단다. 그러니까 감사하게 먹었습니다. (합장하시며) 하는 것도 주인공에 하면은 아빠 엄마한테 감사하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고 이렇게 가르쳐주면, 급하면 생각나는 겁니다.
어느 학생이 엄마한테 그 소리를 가끔 들었대요. 그런데 어느 친구가, 나쁜 친구가 따로 있겠습니까마는 학교를 안 나오고 있던 친구가 나타나가지고는 “너, 아무 데 가자.” 그러는데 안 가니까 그냥 주먹으로 여기 볼때기를 지르더래요. 그 순간에 그냥 그 생각이 퍼뜩 들더라는 거예요, 급하니까. 그 생각을 하니까 “아휴! 이거 이거!” 쥐고만 흔들고는 세 놈이 그냥 가더니만 “에이, 너한테다 내가 손을 대느니 그만둬야지.” 그러면서 가더라는 겁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이것이 참, 여러분이 믿거나 말거나 이렇게 생각하는 거지마는 여러분은 우연이라고 그러겠죠. 우연히는 없습니다. 이거는 절대입니다. 여러분이 사는 한, 여러분이 살고 있는 한 여러분이 하고, 여러분이 길을 걷고, 여러분이 행하고, 여러분이 파괴를 하고, 여러분이 조화를 이루고 이렇게 하는 것이지 누가 해주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지금 우리 몸뚱이를 파괴하고 이러는 것도 여러분입니다. 지구도 인간들이 다 주인으로 살면서 파괴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파괴를 하기 이전에 우리는 이 몸도 보호해가면서, 이 생명이 얼마나 귀중한 겁니까? 못났든 잘났든 이 세상에 나온 게 말입니다. 그리고 또 이 지구가 생긴 것도 얼마나 귀중한 겁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어떠한 마음으로라도 그렇게 해나가면 마음들이 스스로 포용력이 생기고, 조화를 이루어서 파괴될 것도 안 되고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거 우리들한테 일러주면 우리는 또 마음으로 커버하고 가고, 아! 얼마나 좋습니까, 네? 과학자들은 연구하면서, 또 천문학을 연구하면서 이런 걸 해가면서 자꾸 일러주지 않습니까? 그런 대로 우리는 그거 커버해나갈 수 있는 그런 여건을 세운다면 이렇게 하찮은 몸뚱이도 수명이 길어질 겁니다, 아마. 어떻습니까?
※위 법문은 대행스님 법어집 「한마음」의 내용 중에서 36호를 발췌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