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화·생산성이 생태파괴 불러
우리에게 점점 더 친숙해지는 생명과학은 서양 중세의 신의 세계로부터 인간의 욕망을 해방시켰던 합리적 이성에 의거한 근대성(modernity)의 산물이다. 근대성은 ‘자립된 개인’이라는 개념과 ‘과학적 사고방식’에 근거하여 지금의 물질문명을 이룩해 왔다.
하지만 신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이러한 이성적 근대성은 사물을 인간 위주로 바라보고 기계론에 바탕을 둔 유물론적 세계관에 따라 생명 현상을 일종의 기계작용으로 파악한다. 그렇기에 생명 현상은 단순히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회생물학자들의 관점이나 생명복제의 바닥에 깔려 있는 기본적인 생각은 철저하게 근대적 사회의 산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근대 사회를 이루는 인간 위주의 사고방식은 자연과 생태에 대한 억압으로 작용하여 환경 파괴를 불러왔고, 또 유물론적인 과학 문명은 오직 생산성과 효율로서 모든 것을 차별하고 지배하는 모습을 지니게 됐다. 따라서 생산성과 효율을 위해 표준화를 좋아하고 다양성 보다는 통일된 세계화(globalization)를 더 좋아한다. 이는 비록 근대화 과정으로 우리의 욕망은 채워졌지만 이제 우리는 근대성이 지닌 차별과 지배 구조를 지닌 문화 속에 살게 됨을 의미한다.
결국 오늘 우리 생활 속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근대를 이룬 한 축으로서의 과학기술은 우리가 생각하듯 보편적인 진리가 아니라 기계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대표적인 유물론적 사고체계이고 철저하게 근대성을 포함하고 있는 지배계급의 문화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산성과 효율을 위해 근대화라는 이름 속에서 개발론자들로 인하여 희생되고 파괴되어 왔던 자연을 인간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또 인간을 단순한 기계로서 유물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부터 해방시킬 새로운 이념이다.
그러면 생산성과 효율을 바탕으로 한 물질적 풍요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채워줌으로서 전 세계를 정복한 서양의 근대가 지닌 한계를 보완할 새로운 대안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그동안 근대화에 앞장을 섰던 서양사회에서 동양사회 보다 더욱 뜨겁게 불교, 참선, 명상 등이 유행하는 것과 관련 있다. 진정한 불자라면 너도 나도 생산성과 효율을 외치면서 세계화 속에 뛰고 있는 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정신없이 휩쓸려 가기보다는 조용히 부처님 말씀을 통해 너와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부처님은 유정, 무정 모든 것이 연기적인 관계임을 말씀하셨다. 또 이 세상을 단순히 사대(四大)라는 물질만의 세계로 바라보는 유물론적 관점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도 말씀하셨다.
비록 지금은 인간 위주의 생각과 유물적 과학기술이 맹위를 떨치는 사회이기는 해도 이러한 근대가 지닌 한계에 대하여 불자들의 작은 깨어있음이 하나둘 모이게 되어 무르익으면 저절로 자연과 생명이 함께 어우러지는 새로운 지평이 열려질 수 있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서울대 수의과대학 면역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