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걸음 걷고 말하고 움죽거리는 게 다 부처님 법
(462호에 이어)
그러니 모든 문제가 바로 우리한테 있다는 거죠. 누구를 나무라기 이전에 나부터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부드럽게 말을 해주고 따뜻하게 해줌으로써 집을 안식처로 알고 그냥 들어오게끔 한다면 남편이나 자식들이 어찌 안 들어 오겠습니까? 또 아내도 나갔다가 부지런히 들어올 수 있게끔 하는 것입니다. 식구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서로가 서로서로 위하니깐 말입니다. 그럼으로써 삼라만상 대천세계 모두가 전부 공존하고 있죠. 그리고 공심으로 공용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지지난 번에도 와서 그런 얘기를 했지만 고정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랬으니 공이 색이요, 색이 공이란 말을 했죠. 그 한 마디에 두 가지 세 가지가 붙어 돌아갑니다. 공이 색이고 색이 공이기 때문에, 그 까닭에 둘이 아니요, 나를 찾으면 나 자체도 없이 공했다는 까닭이요, 또는 둘이 아니게 이 세상이 공심으로 공용하고 공체로서의 공식까지도 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한마음은 대가 없는 것이 한마음이요, 한마음은 부처라는 이름도 가질 수 있으며 한마음은 결국은 길이죠. 그러니 우리 자체가 무엇을 탓하기 이전에 우리부터 돌아볼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남을 탓하기 이전에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 뉴욕에서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가톨릭은 가톨릭대로 불교는 불교대로 이렇게 쪼개져 있는데, 난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나고 똑똑하다 할지라도, 쪼개고 쪼개도 항아리 속에서, 즉 말하자면 구더기가 서로 여기 이 자리는 내 자리, 이 자리는 내 자리하고 찾는 거와 같으니 얼마나 이게 쓸쓸하고 얼마나 애석한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항아리 속에서 지금 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구 속에서 우리는 지구의 인간으로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벌레짓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는 여러분 속에 생명들이 수십억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다니는데, 이리로 가고 저리로 가고 하는 거를 속의 중생들이, 그 친구들이 다 압니까? 모르면서 이 부분 저 부분을 맡아가지고 공장을 맡아가지고, 소임을 맡아가지고 그렇게 운영을 하고 있죠. 그리고 서로 싸우죠. 그런데 지배인이 그 마음을, 지금 공부하는 마음을 잘 가지고 있다면 파워가 일어나지 않아요. 싸움하지 않아요. 그리고 세포를 죽이지도 않고요. 그런데 세포를 죽이고 파워가 일어난 반면에 모두 사람의 몸뚱이를 못 쓰게 되고 어떤 한쪽이 굳어지고 하는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까?
천지가 한데 합쳐져야 인이 나오고, 음과 양이 한데 합쳐져야 인간 하나가 생산이 됩니다. 모두가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볼 때에는 우리 세상 이 천지가 다 돌아가고 우주가 돌아가고 그래서 ‘나로부터 알아라’ 하는 겁니다. 나의 국토부터 안다면 이 세계 국토를 알고, 세계 국토를 안다면 내 국토도 지킬 수 있고 지구 국토도 지킬 수 있다. 역사도 영원히 잘 가져올 수도 있고 간직할 수도 있다. 그러는 반면에 집을 지키려면 바로 우주를 우리는 탐지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럼 나툰다는 법은 무엇인가. 바로 태양도 월 세계도 다 나 아님이 없다. 왜 그런가. 내가 주장자를 줄 수도 있고, 그 주장자를 내가 가져 올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게 조절입니다. 이 마음은 체가 없어서, 즉 말하자면 금방 화해서 약사도 될 수도 있고 부처님도 될 수 있고 보현도 될 수 있고 하니까요. 그러고도 문수도 될 수 있고요. 생각났다 하면 문수요 움죽거렸다 하면 보현이니 이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소리입니다.
어저께도 그렇게 말씀드렸죠. 다시 되풀이 한번 해볼까요. 부처님 마음으로서 사바세계에 관세음을 딱 만들어 놓으시고, 자기입니다. 자기 마음이에요. 동방에 아촉으로 정해 놓으시고 지천국에 지장을 정해 놓으시고, 서천국에는 바로 아미타를 정해 놓으셨어요. 그것이 자기 마음에서 그렇게 정해 놓은 거지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 명이 깨우쳐도 만 명 다 부처님 한마음의 한자리입니다. 이 뜻을 아신다면 내가 잘났다 네가 잘났다 할 것도 없고 그대로 한자리인 것입니다. 한마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한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거는 일일이 따지고 들고 그러니 이 중천세계에서 체로 걸러서 바로 상세계로, 마음세계로 오르느냐 하천세계로 떨어지느냐는 교차로에서 바로 체로 거르는 중세계입니다. 그러니 이 중세계에서 여러분이 하시는 대로 뭐 그렇게 싸 짊어질 것도 없거든요, 사실은. 과거에 지고 나온 것도 지금 벗어나려고 앨 쓰는데 지금 뭘 하게 그렇게 짊어질 겁니까? 그래서 전설의 고향, 여기서도 잘들 보시지만 그게 전설의 고향이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여러분이 앞뒤를 모르기 때문에 그러시지, 과거에 산 거는 현실이고 현실에 산 건 미래인 것입니다. 사람이 짐승이 될 수도 짐승이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포천 어디에서 이런 예가 있었죠. 큰 구렁이가 도를 닦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 닦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 하면, 신문에 나고 모두 야단들이 났었거든요. 한 20년 전 얘기라고도 볼 수 있겠죠. 아마 20년 더 되었을 거예요. 그랬는데 그때 군인들이 무지하게 거기 주둔해가지고 천막을 치려고 전부 산을 깎았는데, 거기 노인네의 꿈에 “내가 지금 도를 닦고 있는데 앞으로 사흘만 있으면 끝나니까 사흘만 말미 좀 달라고 그렇게 말씀 좀 해달라.” 하고 그 동네 노인네의 꿈에 나타나 그렇게 부탁을 하며 애원을 하더라는 겁니다. 또 “그렇지 않으면 내가 사흘 만에 내 몸을 딴 데로 옮길 테니까 사흘만 말미를 달라.”고 그렇게 애원을 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가서 얘기하니깐 군인들이 들어주지 않는 거죠. 이튿날 또 꿈을 꿔서 또 가서 얘기해도 안 들어주고, 사흘째 되던 날은 아주 간곡히 부대장더러 얘기를 하니깐 군인이 그런 미신을 들을 수 있겠느냐고 그러고는 안 들었다는 겁니다.
그랬는데 웬걸, 그때 천막을 치고 거기서 전부 자는데 밤에 그냥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가지고, 그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오는 줄도 모르게 비가 와가지곤 그냥 산이 뭉그러져서 전부 야단이 났어요, 그냥. 근데 그렇게 애원하고 애원하고 벌벌 떨면서 그냥 빌고 빌었던 그 노인네 논만 고대로 산이 무너져가지고 막아주고 그 집만 막아줬지, 딴 집들은 다 그냥그냥 그랬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것을 보니까 예전부터 원 노릇을 하다가 너무 욕심이 많고 너무 남의 것을 갈취를 했기 때문에 구렁이가 돼 가지고 거기서 내내 있다가 나중에는 개심을 하고, 천 년을 거기서 이슬을 먹고 거기서 이파리만 따먹고 그러고 했지 남을 해치지 않고 천 년을 공부하다가 사흘 남았는데 그랬으니 그 동네 일판이 다 그렇게 된 것도, 그렇게 된 건 그렇게 된 거지만 군인들이 몇 백 명이 아니, 그때 그 숫자는 다 모르겠어요. 부대가 몇이라니깐, 아주. 그런 소리를 듣고 그런 현상을 보고 이래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겪어보면 아시겠지만….
여러분이 그러한 의식을 가지고 욕심이나 아집이나 탐심, 남을 탓하는 투기, 이러한 마음을 가지신다면 안 되죠. 될 수 있으면, 우리가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인생은 가랑잎과 같다고 그랬죠.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래도 인간이라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도 저런 나뭇가지보다도 못한 때가 많아요. 가을이 돼서 나뭇잎이 다 떨어져도 그 가장구는 발발 떨면서도 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조금도 해치지 않아요. 그런데 하물며 사람이 말입니다. 그 한 철 살기 위해서 나그네 생활로 한 철 살기 위해서 남을 얼마나 해칩니까. 꼭 해친다고 해서 해치는 게 아닙니다. 마음 한번 잘못 먹으면 그렇게 해쳐집니다. 거짓말 한 번 하다보면 그걸 속이기 위해서 백 번은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이게 부처님이 가르치신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 철 그렇게 살기 위해서 세세생생을 끄달려야만 하는 그런 이치가 있는가 하면, 자기 묵은 빚을 갚을 것도 못 갚고 그 묵은 빚 갚을, 자기 육을 낳아준 부모까지도 해를 입게 하고, 자식까지도 해를 입게 된다는 그 사실을 여러분이 자세히는 모르실 겁니다. 지금부터라도 바로 아십시오. 우리가 밥을 얻어먹고 돈벌이를 해서 살 양으로 머릴 깎고, 이 중 옷을 입은 게 아닙니다. 이거 보세요. 하루 한 끼니 두 끼니 아무거라도 배 채우면 살 것을 왜 구태여 그렇게 해서 삽니까! 왜 속이고 부처님의 이름을 속이고, 부처님의 뼈다귀를 팔아서 이렇게 해서 먹고 살아야 되겠습니까! 부처님이 여기 와도 부처님의 고깃덩어리를 믿으라는 게 아닙니다. 일체 조사들의 고깃덩어리를 믿는 게 아닙니다. 부처님의 그 아리따운 마음을 꿰뚫어서 내 마음과 둘이 아닌 마음을 만들어서 내가 그렇게 베풀라는 겁니다.
오신통이라는 불바퀴가, 그 불바퀴 속에서 정신과의 논문도 나올 수 있고 공과의 논문도 나올 수 있고, 천문학과의 논문도 나올 수 있고, 즉 말하자면 심리학과의 논문도 나올 수 있고 과학자의 논문도 나올 수 있고, 천체 물리학자의 논문도 나올 수 있습니다. 의학의 논문도 나오고 말입니다. 전체예요. 그게 다 이 속에서 나오는 거니 이것만 터득한다면 여러분이 어떠한 거든지 다 해결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나이가 먹었으면 자식들한테라도 줄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이라고 할 건 없지만 불가사의한 것도 아닙니다. 모두 갖추어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겁니다. 발견해서 쓸 수 있다면, 앞으로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는 점차적으로 노력을 해서 연구를 하고, 배우는 것도 너무 어지럽게 과목을 두고 배우고 이러기 때문에 모든 것이 기가 빠지죠. 이게 기(氣)가 없어지면 기를 자꾸 넣어가면서 써야 될 텐데 기를 넣을 줄을 모른다면, 꼭 차에 기름 넣을 줄 모르듯이 그렇게 된다면 차가 굴러갑니까? 지구도 유지하려면 타의에서 그 모든 것을, 광력이나 전력 자력을 또 끌어들여서 우리가 그 모두를 지탱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한마음이란 말입니다. 물도 생명이 있고 불도 생명이 있고 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 생명과 둘이 아닐 때에 바로 한마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 능력을 계시할 수가 있는 거죠.
여러분 마음이 체가 없기 때문에 물 한 그릇에다가, 바다가 물 한 그릇이라고 한다면, 더러운 거든 깨끗한 거든 거기다 다 부어 보십시오, 두드러지나. 콩 한 알캥이에다가 우주 삼라만상 대천세계의 전부를 넣는다 하더라도, 부처님 세계를 다 넣는다 하더라도 그릇이 모자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줄지도 않고 늘지도 않고 샘물 나오는 거와 같아서 여러분 마음속에 주인공, 안(內)의 안테나가 바로 샘물이 나오는 수도꼭지와 같은 겁니다. 내가 깨달을 때까지는 그 수도꼭지가 필요합니다. 나중에 그 수도꼭지는 자연적으로 그대로 물이 있는 거기 때문에 수도꼭지다 아니다 할 것 없이 그냥 자기가 먹고 싶으면 퍼먹고 주고 싶으면 퍼주고 이러는 거지, 여기 수도꼭지를 꼭 좨야 된다, 이런 것도 없는 거죠.
알고 보면 그렇지만 처음부터 아는 척하고, 처음부터 ‘이거면 족하지’ 처음부터 ‘이것이 없다는데 뭘 쥘 게 있어?’ 아주 시험도 안 해보고 자기가 지혜도 넓히지 못한 사람이, 고개가 숙여지지 않고 항상 그러니까, 여기 와서 절을 하는 것도 누구한테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익어서, 무르익어서 고개가 숙여져서 참 두루, 자기 나무에서 자기 실과가 무르익어서 만 가지 맛을 낼 수 있는 그런 요소, 또 씨앗이 내년을 바라볼 수 있는, 영원한 내년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씨앗이 돼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를 하심시키기 위해서 절을 시키는 거지 누가 절을 받기 위해서 시키는 게 아닙니다. 얼마나 귀찮은지 아십니까, 그것도? 사실은 그게 내가 받는 건 아니지만 그 목표로 대상이 된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줄 아세요? 그렇지만 마다하지 않고 그냥 심부름을 하는 겁니다. 그 절 받는 것도 일종의 심부름이에요, 여러분 심부름요. 그게 소홀한 일인 줄 아십니까? 제때에 여러분처럼, 배고파서 먹고 싶을 때 가서 턱 사서 갖다 끓여서 해 먹는 이런 사람들이 아니에요. 주는 대로 그저 맛있는 걸 주면 맛있는 대로 그걸 나눠 먹고, 맛이 없는 거 주면 맛이 없는 거대로 나눠 먹고, 맛이 있는 거는 그분들이 오면 더 하나씩 나눠 주고 싶어서 하는 그런 마음이에요. 나는 이런 말을 할 때 때로는 이 가슴에서 흘러요, 그냥.
진실한 것은 자기만이 알지 누가 알아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알아달라는 것도 그건 습이죠. 그것도 인과가 되는 거죠. 알아달라고 할 게 뭐 있습니까. 내가 아는 것이 우주법계에서 아는 건데 뭘 알아달라고 합니까? 부처님이 내 마음에 있는데 뭣 때문에 바깥에서 그렇게 허우적허우적하고 찾습니까? 내가 내 안에 있다는 걸 믿고 있는데, 그리고 사실이 그런데 어떻게 바깥에서 허우적거립니까? 그것은 부처님에 누가 되는 일이죠.
그래서 나는 그럽니다. “나는 일생을 통해서도 아니, 영원히 죽고 죽고 또 죽어서 가루가 된들 누가 되지 않게 꼭 당신이 해야 한다.”라고요. 날더러, 돌아다보고 날더러 내가 그럽니다. 누가 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입니다. 사람이 살면 이 껍데기 가지고 얼마나 살기에 헛한 말을 하고 살겠습니까. 내가 만약에 무지랭이가 아니고, 어저께도 얘기했죠. 만약에 상식이나 학식을 많이 배워서 그렇게 사는 사람 같다면, 그리고 잘났다면 얼마나 남한테 가증스럽게 거짓말을 잘하고 얼마나 사기짓을 잘했을까 하는 생각에서 몸서리가 쳐진다고요. 내가 이렇게 난 게 잘됐고, 못 배운 게 잘됐고 정말이지, 차라리 어디 가서 한 그릇 얻어먹는 게 낫지 그럴 수가 없죠.
여러분, 한 철 살기에 우리 사람답게 삽시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교(敎)를 가지고 있든 우리 한마음 한뜻으로서 누구를 미워하지 맙시다. 그리고 경계하지 말고, 적어도 마음으로는 그렇게 가짐 가짐을 갖고 언제나 항상 말조심하고요.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말 한마디 잘못하면 그게 업보가 얼마나 큰지 모를 겁니다, 아마. 그냥 추측으로 생각하고 그냥 막 생각하고 말하고 이런다면 그건 업보가 큽니다. 그러니 어떠한 잘못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 생각이니 나하고는 상관 없이 생각하십시오, 각자. 남이 칼로 찔러 죽인다, “너 이놈, 내 오늘 저녁에 너를 칼로 찔러 죽인다.” 그러더라도 허허허 빙긋이 웃을 수 있는, 그리고 그 사람을 탓 안 하고 겁내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주인공만이, ‘내가 있으니깐 찔러 죽이러 온다지 내가 없다면 찔러 죽일 게 뭐 있어서 오겠나.’ 하구선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대도 칼을 들지 못해요.
여러분! 이 세상 살아나가면서 우리가 실질적으로 경험하면서, 부처님법이 어디 있나, 내가 부처님 법이고 내가 부처님 법을 행하고 있고, 내 가정이 다 살아나가는 게 부처님 법 아니고 무엇인가. 내가 한 걸음 걷고 말하고 움죽거리는 게 다 부처님 법이니 이것이 참선이 아니고 무엇이며 이것이 바로 나를 발견하는 재료라는 걸 믿어야 합니다. 부딪치는 게 다 재료구나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사월 팔일이 다가오는데도 우리가 사월 팔일이, 꼭 사월 팔일 날만 부처님 오신 날이 아니라 부처님 오신 날은 바로 영원한 오늘입니다. 항상 내가 있을 때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은 열반했다 안 했다 이런 게 없습니다. 열반이라는 것은 죽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통달해서 여여함을 열반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살아계시면서,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 도리를 좀 아셨으면 합니다. 그러니 우리 열심히 합시다. 앞으로 젊은 사람들이 더 할 겁니다.
저기 오하이오 주 주립대학에서는 석사학위나 박사학위 따는 분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 법을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배우다 보니까 논문을 쓸 때 거기서 다 나옵디다.” 하고요. 그러니까 앨 쓰지 않고 논문을 써도 아주 슬기롭게 으뜸으로 쓸 수 있게 되어서 참 감사하다구요. 거기는 생물학자니 누구니 누구니, 여러 사람들이 아주 고르게 있더군요. 그런데 나는 참 놀란 것이 있죠. 예전에 거기 가서 설법을 하다 그걸 느꼈습니다. ‘야, 이 속에서 당신네들은 다 논문을 쓸 수 있고, 현실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구나. 이 속에서 다 나가는 것인데 뭣이 어려울 게 있겠는가!’ 이렇게 말입니다. 외쳤죠!
하여튼 여러분이 계시니까 내가 있고 내가 있으니까 여러분이 계시니, 우리는 둘이 아니게 모두 같이 공부할 수 있는 도반들입니다. 누가 높고 누가 얕고 이런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같이 앉았으면 그냥 도반이죠. 그러나 여러분의 심부름을 하기에는 너무 좀 무식한 듯 하고 못생긴 듯 하지만, 못생겼다고 나무라지 마시고 또 무식하다고 나무라지 마세요. 마음 하나는 진실하다는 것을, 우리가 서로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만나면 서로 웃고 이렇게 서로 벗이 돼서 얘기하다가 또 헤어지고 이럽니다.
여기 젊은 스님네들이 말은 잘 못합니다만, 몇 해를 그래도 마음공부를 해서 여러분이 정히 괴로울 때 어디까지나 “스님, 난 이러이러 합니다.” 할 때 저 스님네들이 여러분한테 약장사처럼 말은 잘 못해도 “알았습니다” 그럴 때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진실히 믿고 가십시오. 그리고 열심히 공부를 하십시오. 스님네들이 그렇게 심부름을 해줄 동안에 말입니다. 그러면 이것으로서 그치고, 내 엊그저께 말입니다. 문득 저 창문을 내다보면서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이렇게 생각난 것도 그냥 허탕한 생각은 아닙니다.
어제 밤에 눈 오더니 날이 밝아 동이 트고
가지마다 백 송이 피고 뿌리마다 이어가니
천상 저 높은 산 위에는 하얀 눈이 덮히고
골짜기마다 칡뿌리 이어가고 칡꽃이 만발했으니
길을 걷던 나그네의 대피리 소리는 온 누리에
임의 소식 전달하니
만 꽃이여!
임의 소식 들었는가 하노라.
하는 것 말입니다. 이런 생각이 문득 들어서 그냥 한번 이렇게 해보았습니다.
그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