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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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향기를 훔친 사람
나쁜 행동 반복하면 수치심 못 느껴
옳지 않은 일 사소한 것도 멀리해야

깨끗하게 목욕하고 새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사람은 결코 더러운 진흙탕 물에 가까이 가려하지 않을 것이다. 한 방울의 진흙탕 물이 튀어 옷에 묻어도 속상해 하며 빨리 없애려고 한다. 하얀 웨딩 드레스를 예쁘게 차려입은 신부에겐 아주 조그마한 볼펜 자국도 아주 크게 보이며 부끄러움의 원인이 된다. 백색의 드레스엔 한 점의 얼룩도 눈에 잘 띠며 수치스럽게 여겨진다. 반면에 이미 얼룩이 많이 져 있는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더러운 진흙탕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 방울의 진흙탕 물이 옷에 튀어 묻어도 그것으로 인해 옷이 더 더러워졌다고 속상해 하지 않는다. 이미 더러운 옷에 더러운 오물이 좀 더 묻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어떤 잘못을 저질러 경찰서에 잡혀 있는 죄인을 보았다. 그 사람은 모자를 깊게 쓰고 고개를 아래로 많이 숙여 자신의 얼굴이 텔레비전 카메라에 잡혀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애쓰고 있었다. 이런 자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취해지는 것이다. 자신이 한 일이 옳지 않고 떳떳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이 저지른 나쁜 행위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면 자율적으로 선하게 살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에겐 엄격한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몇 십억, 몇 백억의 돈을 불법으로 모아 놓고도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발뺌하기에 급급한 사람들을 보면 다음의 경전이 생각난다. 잡아함경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붓다가 사위성의 기원정사에 머물고 있을 때 일어난 일이다. 한 비구가 눈병을 앓게 되자 스승이 연꽃의 향기를 맡으라고 하였다. 비구는 연꽃이 피어있는 연못가로 가서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었다. 바람을 타고 오는 꽃 향기를 맡으며 앉아 있을 때, 연못을 지키던 천신이 다가와 말했다. “그대는 왜 꽃을 훔치고 있느냐? 지금 꽃의 향기를 도둑질하고 있지 않는가?” 비구는 대답했다. “꽃을 꺽지도 않았고 다치게 하지도 아니하고 멀리서 향기만 맡았거늘 어째서 나를 향기를 훔치는 도둑이라고 하는가?” “스스로 일하지 않고 남의 것을 취하는 것을 도둑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그대는 주어지지 않았는데도 일방적으로 향기를 취하고 있으니 도둑이다.” 그때 마침 한 사나이가 연못에 와서 연꽃을 꺾고 연뿌리를 캐어 잔득 짊어지고 갔다. 이에 비구는 천신에게 말했다. “저 사내는 저렇게 연꽃을 해치고 연뿌리를 뽑아 가지고 가니, 저 사람이야말로 사악한 도적이다. 그런데 어찌해서 저 사람은 막지 아니하고 나 보고만 도둑이라고 하는가?”
천신은 타일렀다.“사악한 사람은 더러운 옷과 같다. 더러운 옷에 오물이 묻어도 표시가 나지 않는다. 검은 옷에 먹물이 묻은 것과 같다. 하얀 비단 위에 조그마한 파리 한 마리만 앉아도 눈에 잘 드러난다. 깨끗한 천엔 한 방울의 먹물도 잘 보인다. 이미 더러워진 인간에게 충고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그대와 같이 청정한 행위를 하려고 노력하는 자에게 말하는 것이다. 청정한 수행을 하는 자에겐 비록 털끝 만한 작은 허물도 태산과 같이 드러나 보이는 것이다.” 비구는 천신의 말에 감사하고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경전은 끝맺고 있다. 너무 허물이 많은 이에겐 꾸짖어도 소용이 없으므로 상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천신이 나의 잘못을 지적해 주니 비구는 감사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악행을 그만두고 선행을 할 수 있다. 나쁜 행동을 처음 저지를 땐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강하게 느끼다가 한번 두번 자꾸 반복하게 되면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결국엔 사악한 범죄 행위를 하더라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다. 얼굴 가죽이 두껍게 되어 무슨 일이든지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착한 마음을 잘 길러 사소한 것일지라도 옳지 않은 일을 멀리 해야 하는 것이다. 남이 보는 앞에서만 부끄러운 마음을 지닌다면 그것은 반쪽 양심이다. 남이 보든 안보든 그릇된 일에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온전한 양심이 될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생각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죽을 때까지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또한 조그마한 잘못에도 괴로워하였다고 고백하는 시인의 맑은 마음이 부럽다. 잘못에 대한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동국대 불교학과(경주)
200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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