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 씨의 불교 윤회론 왜곡 강의가 2월 23일 MBC-TV에서 방영되자 이에 대한 비판의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MBC 홈페이지에는 3일 동안 300여 편의 글이 이어졌다. 또 <인드라망의 세계> 저자 신용국 씨가 김용옥 씨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본지에 보내왔다. 이날 방영된 강의의 핵심 부분을 요약하고 신용국 씨의 반박문,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MBC 도올특강-우리는 누구인가(요약)
“불교의 윤회라는 것은
하나의 신화적 구성이다”
정도전은 <불씨잡변(佛氏雜辨)>에서 불교의 윤회설을 비판한 바 있다. 윤회설에 대해 정도전은 동양적 세계관(즉 유학)에 비춰 이를 비판했다.
동양적 세계관에서 인간은 혼(魂·무형적 부분)과 백(魄·유형적 부분)이 절묘하게 배합돼 있는 존재다.
이에 대해 정도전은 “우리가 호흡을 할 때 내가 뿜어낸 기운을 그대로 들이마실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 영혼의 윤회라는 것도 이런 수준의 것이다”라며 인간 영혼의 윤회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를 고려에 대입하면 고려의 체제도 자기욕심을 채우느라 윤회를 통해 자기 아(我)를 존속시키려는 고집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공적인 장으로 내가 흩어진다’라는 공적인 세계에 대한 새로운 믿음을 갖지 않으면 새로운 왕조는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은 불교의 윤회라는 것은 인도문명의 어떤 윤리적 요청에 의해서 나온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신화적’인 구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에 빠진 사람들이 그러한 신화적 체계를 사실로 믿고, 종교가 인간을 기만하고 인간을 우매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
원래 불교의 윤회는 카르마(업)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당시 윤리적 인과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인도의 상황에서 끊임없이 선한 일을 하라고 인간을 독려하기 위해서는 윤회 이상의 좋은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기독교의 천당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동양인의 윤리적 보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나 인간의 역사 속에서 받아야 한다. 역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면 굳이 형이상학적인 윤회나 천당 등을 만들지 않아도 얼마든지 윤회적으로 살수 있다는 것이 정도전의 생각이었다.
신용국씨의 긴급기고
윤회를 영혼불멸설로 해석…“광대의 경박함이여!”
김용옥 씨가 저술한 정도전 관련 출판물에 대한 MBC 공개특강에서 불교의 윤회론을 비판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논지인즉, 영혼이 윤회하는 불교의 윤회관은 음양의 기(氣)로 우주를 보는 동양의 전통적 우주관인 천지론(天地論)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김용옥 씨는 불교의 윤회론을 영혼불멸설로 이해하였다. 불멸하는 무수한 영혼이 윤회하기 위하여 우주에서 난리를 치는(?) 불교의 윤회론은 천지론적 우주관을 가진 동양의 정통 사상에 배치되는 것이며, 따라서 정도전은 동양의 사상을 바로 세우는 국가와 정치를 시도하였던 정치 철학자로 묘사되는 것이 그의 논리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러한 김용옥 씨의 논리가 광대의 경박함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우주관, 나아가 존재관을 다루는 중요한 문제에서 그가 보이는 말투며 몸짓의 경박함이다. 진실함이 결여된 경박함으로 대중의 웃음과 박수를 유도한다. 그가 그 경박함 속에서 대중의 박수를 이끌어 내는 무기는 중국의 한자 부수를 해체하면서 독창적인 뜻을 풀어내는 나름대로의 기발함이었다. 하지만 기발함 속에 의미의 진실함까지 함께 매도하는 것은 지식인의 광대 짓임에 틀림이 없다.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잘 알지 못하면서 일방적인 해석을 감행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윤회설을 영혼 불멸설로 해석하는 그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지 모르겠다. 역사 속에서 불멸하며 이어지는 종교를 성토하기 위해서는 그 종교에 대한 철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예의를 넘어서 지식인의 의무다. 하지만 김용옥 씨의 불교 해석에서는 그러한 의무나 예의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불교는 제법무아와 제행무상의 연기법을 근간으로 한다. 무아의 연기론을 이해한다면 어떻게 불교의 윤회설을 영혼불멸설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연기법에서의 존재관과 윤회관은 업식 연기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그 업식은 비존재(非存在)이다. 타(他)와 분리되어 ‘나는 이것이다’라고 구분될 개별 존재성을 가지지 못한 것이 무명(無明)의 업식이며, 따라서 업식 윤회론은 비존재론적 윤회관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김용옥 씨는 존재론적 윤회관으로 왜곡하였다.
김용옥 씨가 주장하는 음양 천지론에 따르면, 혼(魂)은 우주의 천지, 즉 음양의 기로 산화(散花)한다는 것이며, 인간이나 생명에게 개별적 윤회라고 할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인중무과(因中無果)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부처님이 연기법으로 척파하신 육사외도 중의 하나가 인중무과설인데, 이 인중무과설은 전생, 현생, 내생으로 이어지는 인과의 연속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인중무과의 논리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현생의 삶에서 행하는 업보의 과보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부처님이 설명한 우주의 진실은 영혼 불멸의 인중유과나 혼백 산화의 인중무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개체가 불멸하는 유(有)도 아니고 개체가 천지자연에 산화하는 무(無)도 아니라고 설했다. 그러한 부처님의 법문이 바로 연기법이다.
연기법의 업식 연기에서는 인간은 자신의 과보를 물려받게 된다. 지은 업보를 형상 그대로 물려받는 것은 아니지만, 어둡고 탁한 업식의 삶을 산 사람은 윤회에 있어 더욱 어두워지고 탁한 의식의 삶을 내생에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로 인한 내생의 고통 또한 크다고 하는 것이 업식 윤회의 과보이다.
김용옥 씨는 불교를 모르면서 불교를 폄하했다. 소위 논리 철학자로 자신을 지칭하면서도 자신의 말을 자신이 스스로 뒤집는 논리의 허구를 보여 주었다. 혼(魂)이나 백(魄)은 자신 스스로는 존재할 수 없는 비존재라 정의하면서도 몸인 백이 급작스러운 죽음을 당할 경우에 혼이 놀라 어쩔 줄 모른다는 식의 논리를 폈다. 백이 없는 혼은 비존재라고 정의하였으면서도 백과 무관한 혼의 존재를 주장하는 모순을 보인 것이다. 철저한 사유보다는 학문적 재변에 치중하는 김용옥 씨 같은 지식인들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논평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용옥 씨는 자신이 주장하는 유교를 강조하기 위하여 정도전과 조선의 성립을 필요 이상으로 미화하고, 그런 과정에서 고려라는 역사까지도 은연중에 매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식인이 자신의 주장이나 이익을 위해 논리를 왜곡하는 것은 부패 정치인이 국민을 기만하는 것과 하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재야 불교학자>
iMBC·붓다뉴스의 항의글
●…강의를 보고 혼란스러웠다. 강의 내용 중에는 설득력이 있는 내용도 많았지만 성급한 주장도 많았다. 특히 “내가 불교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라며 불교의 윤회사상을 단순하게 풀이하는 모습에서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김향숙(KP5000)
●…도올 선생의 윤회사상 비판은 도올의 불교관이라 보기 힘들다. 단지 정도전의 불교비판이 왜 필요했고 어떻게 이뤄졌는가를 설명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조선개국의 정당성을 세우기 위한 정도전의 정략을 간과했다.
유태성(ARYTS76)
●…훌륭한 비판이었다. 이런 비판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가 종교를 잘못 해석하고 있지는 않는지, 맹목적으로 믿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박임순(QUAWP)
●…도올의 강의는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는데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번 강의를 보면서 불쾌감이 일기도 했지만, 불자인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불자도 아니면서 불교를 저리 알려고 하는데, 나는 불경도 변변히 보지 못했구나’ 생각했다. 백현식(KIKA97)
●…강의내용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학문에 대해서 오만스러울 정도의 당당함이 묻어난다. 도올의 비판을 받아들일수 있어야 한다. 마름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