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는 생명과학이 발달하면서 사람도 복제 할 수 있고, 인간의 모든 질병을 다 고칠듯 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러나 암(癌)을 포함한 수많은 병들은 여전히 ‘난치병’으로 남아 있으며, 이들 질환을 잘 들여다보면 대부분 면역과 관계된 질병들이다.
사람의 유전자 지도가 다 밝혀지고 유전자와 세포조작을 통해 인간복제도 가능하다면서, 어째서 아직도 면역학적인 질병은 완치하기가 어려워 많은 사람들을 여전히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일까.
나(我)를 외부 이물(異物)로부터 보호하여 지켜주는 면역현상은 다시 말하여 신체적인 면에서 나를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나를 규정하고 있는 면역현상을 공부하다보면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나라고 하는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은 수많은 요소들이 단지 ‘서로 균형을 이루며 계속 변화하는 관계’가 나를 나타내고 있음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하여 개체로서의 나는 단지 수많은 요소들이 계속 변화하는 관계의 모양새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서로 상의상존(相依相存)하고 있는 관계성이란 단순히 그 구성 요소만을 밝혀서는 전체 모습을 알 수 없다. 즉 바퀴, 핸들, 휘발유, 유리창 등을 각각 아무리 잘 연구해 놓아도 그것들의 관계를 잘 설정해 자동차라는 것을 이루게 했을 때 비로소 우리가 타고 다닐 수 있듯이 말이다. 면역 현상은 이렇듯 관계의 모습이기에 요즈음 유행하는 서양의 환원론적 방법에 의거, 단순히 특정 유전자나 생체 단백질을 밝히는 분자생물학적 접근 방법으로는 결코 그 전체적 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
현재 우리가 유전자 몇 개를 조작하고 세포를 조작해 복제하는 것은 특정 물질/대상을 조작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에 불과하다. 결코 나라는 개체를 포함해 생명 현상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관계라는 것을 아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즉 현대 생명과학도 관계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수단이 제한되어 있기에, 사람의 유전자 지도 완성 등 겉보기에는 대단히 발전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 시대의 생명과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난치병, 불치병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모든 존재라고 하는 것은 실체 없는 관계에 불과함을 설파한 부처님 말씀처럼 단순한 물질 위주의 생명과학의 방향과 접근 방식을 사물의 관계에 대하여 중점을 두고 풀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생명과학의 발전 자체가 인간 사회와 맺어가는 관계에 대해서도 좀 더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결코 지금의 생명과학은 인간을, 더 나아가 자연속의 수많은 생명체들의 모습을 결코 알지 못할뿐더러 이들의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질지도 모른다.
■서울대 수의과대학 면역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