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배아줄기 세포에 대한 연구가 뉴스에 회자되고 있다. 동일인의 난자에 체세포를 넣어 줄기세포를 만들었기에 앞으로의 적용범위가 무척 많은 연구이다. 특히 이러한 줄기세포를 특정 조직이나 장기로 분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 앞으로 개발된다면 특정 질환으로 고통과 불편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아주 유익한 치료 효과를 줄 수 있다. 이러한 연구는 가끔 이야기되는 이종간의 장기이식 같이 면역학적으로 거의 실현이 불가능에 가까운 연구를 대치할 것으로 예견되어 왔던 연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용 범위가 많다는 것은 활용하기에 따라 많은 윤리적 문제점을 야기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 복제나 다른 유전자 조작 기술과 함께 사용해 특정 유전자를 발현한 인간을 만들어,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는 일반인은 영원히 차별받고 피지배층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허울 속에서 정당화되고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마치 줄기세포 연구로 인간 복제의 가능성이 (복제된 인간의 안정성은 별도로 하고) 점차 커져 오듯이 결코 꿈과 같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이 지구상의 다양한 생명체의 모습을 이루게 하는 생에 대한 본능적 욕망은 결코 선악 판단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생명체의 끝없는 탐욕은 모든 고통의 원인이 되고 있다. 지식은 자연을 특정 방식으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이며, 우리의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왔다. 과학자란 어떻게 보면 단순한 지식(知識) 창출자에 불과하다. 이렇게 길들여진 과학자에게 연구를 통한 지식 창출을 막는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지식이라는 도구를 어떻게 쓰느냐는 전적으로 인간에 달려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지닌 지혜(智慧)에 의한 것이다. 도구가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좋다고 사용하려 한다면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불을 가지고 노는 것과 다름없다. 원자 폭탄의 기초를 이룬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연구가 대량 살상 무기 개발에 적용된 것에 대하여 평생 자책을 지니고 있었다. 그 역시 자신 연구의 의미에 대하여 긍정적으로만 생각했거나 어쩌면 스스로 그 의미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대장장이가 요리에 쓸 식칼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이 살인용으로도 활용될 수 있음을 알아 그 사용을 규제하는 것은 그 칼을 사용하게 되는 사람들의 몫일 것이다. 따라서 과학자가 만든 지식에 대한 의미와 활용에 대한 검증은 철저하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부처님 말씀처럼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고 좋고 싫음, 긍정과 부정, 선과 악은 항상 서로 상대적으로 같이 있음을 알아 사물이나 현상, 과학 지식에 대하여 무조건 한 면만 보기보다는 그러한 것들에 대하여 주인 될 수 있도록 욕망을 제대로 보는 지혜로서 항상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서울대 수의과대학 면역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