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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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많이 아는 것이 중요할까?
많은 경전 외워도 깨닫지 못하면 소용 없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들 중엔 주위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고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있다. 그의 학식은 너무나 심오하여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만 그의 행동은 탐욕에 얼룩져 사람들이 존경하지 않는 것이다. 많이 배우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친절한 언행을 하면 사람들이 사랑하고 존경한다. 요컨대 지식의 양이 아니라 바른 실천이다. 바르게 알고 바르게 실천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것이다.
<법구비유경>의 ‘술천품’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부처님의 제자들 중 반특(般特)이라는 비구가 있었는데 머리가 좋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많은 아라한들을 시켜 날마다 가르쳤으나 1년 동안에 게송 하나도 외우지 못하였다. 그의 머리 나쁨은 4부대중 사이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부처님은 그를 가엾게 여겨 몸소 한 구의 게송을 가르쳐 주셨다. “말을 조심하고 마음을 다스리고 몸으로 나쁜 일을 하지 말라. 이와 같이 실천하는 자는 이 세상을 잘 지낼 수 있다.”
그 때 반특은 부처님의 보살핌에 감동되어 그 게송을 그대로 외웠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나이 늙어서야 겨우 게송 하나를 외웠을 뿐이다. 남들은 다 알고 있는 것이니 그리 신기한 일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지금 너를 위해 그 이치를 해설할 것이니 주의해서 잘 들어라.” 반특은 분부대로 경청하였고,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해 몸으로 짓는 세 가지 행위(살생, 투도, 사음)와 입으로 짓는 네 가지 행위(악구, 양설, 기어, 망어)와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행위(탐욕, 분노, 사견)에 대한 것과 그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이유를 관찰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자 반특은 그 마음이 밝아져서 곧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뒷날 바사닉왕은 부처님과 대중을 왕궁에 초청하였다. 문지기가 반특을 알아보고 막아서서 말하였다. “그대는 사문으로서 한 구의 게송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초청에 응하려고 하는가? 나는 속인인데도 오히려 게송을 아는데, 아무런 지혜도 없는 그대에게는 보시한다 해도 아무런 이익이 없을 것이다. 이 문 안에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반특은 문 밖에 서 있었다. 부처님께서 이 일을 알고 왕에게 반특이 아라한임을 말했다. 왕은 곧 반특을 청해 들이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반특은 본래 성품이 우둔하여 겨우 게송 하나를 외운다는 말을 들었는데, 무슨 인연으로 도를 얻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 많이 배워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반특은 겨우 한 게송의 이치를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이해하여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는 고요해지고 깨끗해져서 마치 순금과 같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이 알아도 그 뜻을 체득하지 못하고 또 실천하지 못하면 한낱 정신만 해치는 것이니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많이 알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정확하게 알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행동이 착하지 아니하면 팔만대장경을 다 외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난다는 부처님의 시자로 항상 부처님 곁에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의 설법을 모두 듣고 암기하였다. 그렇지만 부처님 살아 계실 때 아라한이 되지 못하였다. 부처님의 입멸 직후에 아라한들이 모여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하였다. 처음에 아난다는 이 모임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알고 기억할 수 있었지만 아라한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난다는 불법을 머리로만 알고 있는 자신을 반성하고 몸소 실천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어 결집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법구경>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비록 천 마디 말을 외우더라도 그 말귀의 뜻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단 한 마디의 법을 듣고서 온갖 악한 생각 멸함만 못하다. 비록 천 마디 말을 외우더라도 그 의미를 모르면 무슨 이익 있으리. 단 하나의 이치라도 듣고 실천하여 해탈하느니만 못하느니라. 아무리 많은 경전을 외우더라도 깨닫지 못하면 무슨 이익 있으리. 단 한 구의 법 구절이라도 깨달아 그대로 실천하여 도를 얻음만 못하느니라.”
팔만대장경을 다 외우더라도 방종하여 실천하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어떠한 이익도 없다. 마치 목동이 다른 사람의 소를 헤아리는 것과 같다. 남의 집에 소가 몇 마리 있는지 아는 것이 목동에겐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아니한다. 그러나 하나의 경전을 외울지라도 탐욕, 분노, 사견을 없앨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진정으로 해탈한 아라한이다. 따라서 우리는 쇼핑하듯이 이 경전 저 경전을 대하지 말고 자신의 근기에 가장 잘 맞는 붓다의 말씀을 새겨 몸과 마음이 나쁜 행위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할 것이다. 머리 나쁘다고 핑계삼을 일이 아닌 것이다.
200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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