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5.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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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그리운 님 황금의 동상 <상>
제9회 현대불교 신행수기공모
특별상 (관음종총무원장상)
박길복 (제주시 용담3동)

밀가루 범벅으로 시작되는 하루…. 글자도 모르면서 오직 할머니, 할아버지의 가르침만으로 삶을 익힌 어머님의 일생. 그 속에서 너희들만이라도 글자를 알아야 한다는 아련한 일념을 키운 채 여자의 일생을 사시는 어머님, 오남매의 맏딸. 가난에 찌들고 배고픔에 익숙해지고…. 그러나 가장 큰 괴로움은 가진 것이 없다고 쳐다보는 친척들의 멸시와 눈총, 배가 너무 고파 밥이라도 얻어먹어 보려는 요량으로 눈칫밥. 하얀 이슬과 함께 삼키는 그 검은 눈망울….
그래도 가난의 대물림을 하지 않겠다고 10대의 작은 가슴에 새기고, 그것을 오직 충직한 삶의 철학으로 삼은 20대. 하늘에서 내려주신 영원한 동반자와의 만남에서 사랑하는 공주, 왕자님을 선물 받고, 어질고 지혜로운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아련한 본능으로 해가 지고 태양이 다시 뜨는 동안 너덜거리는 고무치마에 고무 신발을 신고 이 땅의 이치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세파! 세상의 이치가 그렇게 호락호락 쉬운 것은 아닌 것이었다. 어느 날 아침, 다섯 살 난 딸의 급작스런 아픔으로 비행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에 갔다. 생사의 기로에서 무엇이 삶인지도 모르고 그저 착함만을 나의 신조로 알고 살았는데…. 무서우리만큼 처절했던 외로움과의 싸움! 그래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께도, 목사님의 강연에도 매달려 봤지만 나의 영혼을 의지하기에는 그 자리가 너무 싸늘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어머님과 함께 대바구니에 무언가 가득 담아 등짐지고 산 속 오솔길을 올랐을 때 힘들다고 짜증냈던 기억, 무릎이 터지도록 절을 하라시는 어머님의 엄격한 엄포에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예쁜 바지 구김살이 못내 안타까워 손으로 다림질하며 꾸벅꾸벅 절을 하던 기억….
아련한 어린 시절의 정서를 내 안의 의식으로 외롭게 자리하고 있어서인지 드디어 황금으로 된 동상을 모신 둥지를 찾았다. 그 분은 나에게 따뜻한 미소와 저의 상처난 몸뚱이를 어루만져 주셨고 가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셨으며 울지 말라고 위로해 주셨다.
그래서 4월 초파일 전날은 하얀 고무신을 깨끗이 닦아 놓고 황금의 동상을 향한 그리움이 시작된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가지런히 현관 앞에 놓여있는 고무신을 신고 치맛자락 살포시 바람결에 날리며 부처님을 찾아갔다. 연등에 촛불 켜고 곱게 타오르는 불빛에 사랑하는 아들과 딸 건강을 빌며 앉아 있는 이웃의 모습…. 나 또한 그 모습과 바람이 같았을 것이다. 그 어느 곳이 상단이며 어느 쪽에 몇 번을 절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붉은 가사 수호하신 스님은 목탁치며 옹알옹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읽어 내려간다. 그 어떤 책을 보지도 않고 도란도란 앉아 노보살님, 잘도 따라 한다.
모든 의식이 끝난 후에 스님께서 모두 난데없이 동참하라 한다. 칠성기도 입제, 인등기도 입제, 동참하라신다. 무슨 말일까? 뜻을 알아야 하는데, 몇 번을 들어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고민에 고민을….
어느 날 용기를 내기로 했다. 무섭고 두려웠지만, “스님! 인등기도, 칠성기도 입제는 어떤 뜻입니까?” 간단한 설명을 해주셨다. 숙제를 풀어낸 기분이었다. 맛있는 절밥 욕심에 잘 먹고 그냥 돌아온다. 산 속 오솔길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어느날 스님께 “부처님! 과연 그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쭈어 보면 절을 하라신다. 그저 따라만 오시라고 한다.
붉은 가사 갈색 가사의 개념도, 신심이라는 개념도 모르는 불자의 호기심을 차근히 지도해주는 곳도 없었다. 혼자서 가슴만 애태웠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곧 부처님이라 하신다. 그러나 이것이 아니다. 무언가 확실히 알고 싶었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의 내면의 목소리는 ‘기가 막힌 메시지가 있을 거야!’ 라는 함성으로 내 안에서 요동치는 것을 느끼고 또 그것에 교감하고 있음을 희미하게 체험하면서도 또렷하게 할 말이 준비되지 않았다.
그러나 해마다 4월 초파일, 이웃 어른들과 하얀 고무신 예쁜 한복 차려 입고 그리운 님 찾아가는 행복감으로 가득했다.
어느 날, 학교동창이 놀러를 가잔다. 부처님 공부 6년을 마치고 오신 스님이 계신데 같이 친견하자고 한다. 친구와 드라이브할 생각이 나를 더욱 기쁘게 했다. 차창가로 쏜살같이 도망치는 바람결이 삶에 찌든 나를 행복하게 했다. 친구와 함께한 드라이브는 촌뜨기 철부지 40대 아녀자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며 황홀하게 했다.
해안가의 초라한 암자! 20명 정도의 불자와 스님의 경건하게 염불하는 뒷모습만이 잠시 내 눈 안에 비쳤을 뿐, 나는 별다른 행동없이 친구 따라서 삼배하고 돌부처처럼 앉아 있었다. 절밥 맛있게 먹고 친구 덕분에 스님께 생전 처음으로 차 대접을 받았다. 온통 어리둥절할 뿐만 아니라 이런 세계도 있구나. 스님의 한 평도 안돼 보이는 공간은 그 어느 대리석 저택보다도 웅장했다. 스님과의 담소는 나의 때묻은 귀를 열게 했고, 나의 눈을 바로 뜨게 해주었으며 마음의 눈으로 세상의 이치를 일깨워 줬다. 그리고 외롭고 삶에 지친 나에게 용기를 줬고 환희심과 희열을 주었다. 가슴이 벅차고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었기에, 담을 그릇이 없어 넘칠 세라 놓칠 세라 잊어버릴 세라 작은 노트를 꺼내 필기도 열심히 한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 황홀함이 세어 버릴 세라 침묵으로 가슴으로 흐르는 환희의 눈물을 삼키며 내 자리로 돌아왔다. 이미 불교를 스님들의 책으로 접하기는 했지만 내 안에서의 세계일 뿐, 그 세계 속에서 진리와 이치의 귀의함이 무엇인지도 모른 아낙네의 수행은 빗장이 열려있는 조건없는 외출이었다.
그 후 그 해안가 암자의 나들이는 친구와 함께 늘 미소로 함께 했으며, 그리운 님 기다리는 목이 긴 사슴처럼 파도가 출렁이는 그 작고 초라한 암자에 놀러가자며 친구에게 보채기까지 했다. 황금의 그 그리운 님을 향한 나의 영혼은 예쁜 꽃바구니 두 팔에 가지런히 안고 버스에 앉아 콧노래를 부른다.
온통 그 진리 속에서 차가운 나의 영혼은 위로 받고 있었다.
(계속)
200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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