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 다 바쳐 귀의하고 공경을
남을 가르치는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을 선생 혹은 스승이라고 합니다. 선생과 스승의 어원적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선생 보다는 스승이라는 말이 무게가 더 있게 들립니다.
요즈음 시대에는 배울 거리도 다양하고 배우는 이도 많아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많지만, 일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삶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 주는 스승을 두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스승을 선지식(善知識)이라고 하는데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올바른 선지식을 먼저 찾아야만 된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원각경> ‘보각보살장’에서 부처님은 올바른 선지식을 찾을 것을 권하면서 어떠한 선지식이 올바른 선지식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보각보살에게 당부하신 내용은 첫째, 올바른 선지식은 상(相)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이 없다는 것은 마음 가운데 일체의 번뇌와 망상이 끊어져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높다는 생각, 낮다는 생각, 깨쳤다는 생각 등이 없이 그 마음이 허공처럼 걸림 없고 평등한 경지를 말합니다. 특히 올바른 선지식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깨달았다고 말하거나 부처의 경지에 오른 것처럼 행세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올바른 선지식은 겉으로는 보통사람과 같은 허물이 있는 듯이 보이지만 항상 범행(梵行)을 찬탄하고 행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범행은 청정한 행으로 몸과 입과 뜻이 항상 맑고 깨끗하여 일체의 행위가 그릇됨이 없음을 뜻합니다.
셋째, 올바른 선지식은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과 같은 소승의 경지에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 성문과 연각은 깨달음의 경지가 완전치 못하고 치우쳐 있기 때문입니다. 즉, 생사와 열반을 나누어 보고 중생과 부처를 별개로 여기며 지옥과 정토를 다르게 생각하는 등의 온갖 차별상을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중생을 제도하는 원력이 부족하여 수행하는 이들을 진정한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지 못합니다.
넷째, 올바른 선지식은 작(作), 지(止), 임(任), 멸(滅)의 방법으로 수행을 지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원각경>에서는 이를 선병(禪病)이라 하는데, 선병이란 잘못된 수행 방법이나 그 경지를 의미합니다. 작, 지, 임, 멸의 병폐에 관한 자세한 언급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이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작은 마음으로 자꾸 분별하거나 꾸며내어 깨달음을 이루려는 방법이고, 지는 마음을 억지로 억누르고 그쳐서 깨달음을 이루려는 방법이며, 임은 마음을 되는대로 놓아두거나 어딘가에 (예컨대, 자성이나 불성 등) 맡겨서 깨달음을 이루려는 방법이고, 멸은 마음을 아주 끊어 없애는 것으로 깨달음을 이루려는 방법입니다.
부처님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스승께 귀의하고 공경, 공양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모습이 거룩한 수행자이건, 평범한 속인이건 구애받지 말고 오직 가르침만을 따르고 실천하셨습니다.
수행은 홀로 가는 길이지만 올바른 인도자 없이는 깨달음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수행을 한다는 마음을 먹었으면 훌륭한 스승을 찾고, 온갖 정성으로써 가르침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