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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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허상과 믿음-우희종(서울대 수의과대학 면역학교실)
믿음 중요해도 ‘맹목적’이면 미신

세상은 이미지(image, 相)로 이루어져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발전할수록 사람이 접하는 상(相)은 그 양적 증대와 더불어 질적인 면에서도 변화한다. 과거에는 먹고 자고 농사지으면서 구체적인 대상 속에서 살아왔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수많은 정보와 더불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TV 화면 속의 상과 같은 또 다른 의미의 허상(虛相)이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나게 된다.
TV에서 아무리 열띤 경기가 한창일지라도 그것은 얇은 TV 화면 속에서 경기의 표면만을 재구성한 빛의 변화일 뿐이다. 필자 역시 어릴 적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그 속에 작은 사람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난번 월드컵 경기 때 수만 명이 광장에 모여 얇은 유리판에 비춰지는 빛을 보고 열광하고 낙담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한편으로 참으로 괴기스러운 장면일 수도 있다. 만일 누가 실제와는 다른 거짓 화면(相)을 비춰준다 해도 우리는 그 내용을 믿어 울고 웃고 할 것 아닌가?
이 세상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정보화 시대에서 정보라는 것도 하나의 상(相)이다. 엄청난 양의 정보 속에 우리들 각자는 나름대로 취사선택하여 받아들이고 그 정보에 따라 울고 웃으며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스스로 받아들이게 되는 정보도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대부분 우리가 의미부여한 허상인 경우가 많다. 허상에 흥분하는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추어 또 다른 허상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재생산하는 구조가 대중매체에 의한 정보(相) 전달인 경우도 많다.
최근 뇌 연구의 발달로 전기적 자극을 통해 환자가 보고 받아들이는 이 세상에 대한 느낌을 실험자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그것을 모르는 환자는 세상이 그렇게 생겼다고 믿는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상(相)이란 실체 없이 허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나를 둘러싼 상(相)을 믿고 받아들여 그것에 울고 웃을 수밖에 없을까? 한편 믿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진정한 불자(佛子)라면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 믿음이 중요하다고 하여 맹목적으로 믿으면 그것은 미신에 불과한 것이고, 어리석은 자로서 매(昧)한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포함해서 이 세상 모든 것은 상(相)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부처님 말씀처럼 모든 것을 허망하게 보아야 한다. 부처님이라는 것도 우리가 지닌 상이기에 그것마저 허망한 것이니 어찌 부처와 조사를 죽이지 않을 손가.
굳이 말하라 한다면 믿을 것이 없음을 믿어야 하고, 깨달을 것이 없음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뱀처럼 지혜롭고 무소의 뿔처럼 홀로 걸어가면, 삼계유상(三界唯相)이요, 곧 삼계유심(三界唯心)이니 상과 마음이 다르지 않거늘 스스로 허공 꽃을 지어서 자신의 삶 속에서 허상(虛相)에 휘둘려 살지 않도록 늘 깨어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200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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