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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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믿음·소망·사랑
믿음 근본으로 항상 내면 살펴라

생명과학의 발전으로 최신 의학기법이나 고가의 장비 개발에 의해 예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질환을 진단, 치료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종종 감탄과 더불어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잘 보면 그러한 최신 치료법들은 대개 고비용이어서 실제로 일반인들에게는 별로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대부분의 경우 한번 치료에 고액을 지불할 수 있는 부유층만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며칠전 모 일간지에 한국 선불교에서 대표적인 위치를 가진 한 스님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한국에는 틱낫한이나 달라이 라마와 같이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세계적 스님은 왜 없느냐”는 질문에 그 스님은 “그들 스님은 선의 진리를 모릅니다. 단지 자비의 보살행을 펼 뿐입니다. 맑은 가을 하늘처럼 하나의 티끌도 없는 부처님의 심인(心印, 깨달음)은 ‘참선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한편, 싯다르타는 왜 평생을 노상(路上)에서 보내야 했을까? 삶을 힘들어하며 갈구하는 이들과 함께 그들 속에서 삶을 보냈으면서도 스스로 아무 한 말이 없다고 부정하던 그 쓸데없는 짓을 왜 했을까? 역시 싯다르타는 선정(禪定)은 알았지만 참선을 하지 않았기에 부처의 깨달음을 알지 못했던 모양이다.
믿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는 옛 조사의 말과 더불어 불교에서는 자비를 말하고 있으며, 믿음, 소망,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에서도 특히 사랑이 제일이라 한다. 산을 움직일만한 믿음도 사랑이 없다면 소용없다는 성경 구절처럼 믿음이 사랑으로 꽃피지 않으면 결국 내안에 갇혀 죽은 믿음이 될 뿐이다.
믿음이 깨달음으로 나타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성경에서는 길게 참음이요, 오랜 기다림인 소망을 지적하고 있다. 불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다. 부처님 말씀에 대한 굳은 믿음이 바탕이 되어 끊임없는 기다림의 자세를 통해 깨달음이란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 주위의 힘들고 고통 받는 중생들과 함께 자신의 삶을 지어가게 된다.
따라서 불자에게 있어서 기다림이란 밖의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항상 깨어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다. 본래 면목이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에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향하여 항상 지금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이 우리 각자의 기다림의 자세다.
이런 간절히 기다리는 소망의 모습이 없다면 자신들의 믿음이 그리 깊어 산을 옮기고 그 깨달음이 하늘과 같은 맑음을 얻었다 한들 그것은 자신의 믿음이나 깨달음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일 뿐이다. 항상 깨어있음으로 기다림을 이루어 스스로를 되돌아보지 않는 한 그 무엇을 하더라도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중생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 깨달음이란 우리 중생과는 상관없이 많은 연구비가 투자되어 개발되어지는 몇몇 부유층만을 위한 고가의 최신 치료 기술이나 의료 장비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누가 부처와 보살이 다르다 했는가. 오직 기다림의 자세로 나는 부처를 원하지 않는다. 간절하고 길게 기다릴 수 있으니 진정 삶은 아름다울 뿐이다.
■서울대 수의과대학 면역학교실
200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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