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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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크게 재물을 모은 다음 한꺼번에 보시를 하겠다.” 그러나 크게 모으기도 전에 임금이나 수화(水火)나 도둑에게 빼앗기든가, 그런 화를 면한대도 문득 죽게 되어 기회를 놓치고 만다. 이런 사람은 우유를 한꺼번에 짜려는 사람과 같다.
<백유경 >

대보름을 맞는 마음이 몹시도 불편했다. 아무 죄 없이 태어난 아이들이 길거리에 버려지고,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켰다가 일가족이 변을 당하고, 저녁 운동을 나갔던 아이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이 삭막한 세상에,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따위는 가당찮은 일이다.
농경사회에 뿌리를 둔 대보름의 풍속이 오늘날처럼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에도 본래 모습으로 전승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 본래 의미는 오늘날 말하는 ‘시민의식’과 일맥상통한다. 핵심은 ‘공동체 의식’이다.
대보름 세시풍속의 일관된 정신은 공동체의 번영과 결속이다. 동제(洞祭), 달집태우기, 줄다리기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다. 액운을 떨치고 복을 받기 위해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밥을 얻어먹는다는 ‘백가반(百家飯)’도 타인에 대한 배려와 연대의 행위다. 흔히 아홉 집을 도는데, 세 집 이상의 타성바지 집의 밥을 얻어먹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떤가. 이구동성으로 경제난을 말하면서도, 해고된 동료를 걱정하는 듯하면서도, 내 월급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공교육의 붕괴를 개탄하면서도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상식 밖의 고액 과외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허위의식을 걷어내지 않는 한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야만은 계속된다. 연기의 가르침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다.
■윤제학(아동문학가 / 본지 논설위원)
200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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