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 종합 > 기사보기
<6>우리는 안전한가?
5-욕락에 사로잡힌 중생의 삶은 ‘불타는 집’

우리는 고통에 가득 찬 세계에 살지만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가끔 질병이나 사고와 같은 불행한 일이 있으면 인생이 고단하다라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그리곤 그때뿐이다. 그 고통을 이내 잊어버리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또 생활하는 것이다. 얼마 전 이란에서 커다란 지진이 일어나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지진만큼 많은 생명을 앗아가지 않았지만 작년 가을에 부산 등 남부 지방을 강타했던 태풍의 위력에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밤을 세우며 무사히 태풍이 지나가기만 바랬다. 지진과 같은 거대한 자연 재해 앞에 인간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이런 자연 재해뿐만 아니라 각종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갑자기 부모 형제를 잃는 경우도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평탄하게 보이던 인생이라는 것이 갑자기 들이닥친 불행한 사고로 눈물 바다가 된다. 이런 삶의 불안한 모습을 방지하기 위하여 각종 보험을 들고 있지만 보험 회사가 위험을 막아주고 생명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사람들은 보험을 들어 현실의 위험을 무시하고 있을 뿐이다.
붓다가 정각 후 얼마 되지 않을 때 설했다는 다음의 경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불로 비유하고 있다. 붓다는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생활이 화재의 현장이라고 단호하게 비유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고통으로 위협받고 있는지 실감나게 하는 가르침이다. 불은 인도인에게 있어 가장 가까이 있는 고통이다.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눈은 불타고 있다. 색채와 형태는 불타고 있다. 눈의 식별작용은 불타고 있다. 눈의 접촉은 불타고 있다. 눈의 접촉에 의해 생기는 감수는 좋거나 나쁘거나 혹은 그 어느 쪽도 아닐지라도 그것 역시 불타고 있다. 무엇에 의해서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로, 혐오의 불로, 미혹의 불로 모든 것은 타오르고 있다. 출생과 노쇠, 죽음과 근심, 슬픔과 고통, 번뇌와 번민에 의해서 불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불로 타고 있지만 그 고통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위험을 알지 못하지만 욕망 등의 불꽃은 죽음을 가져올 것이라는 경고다.
우리 감각기관은 불쾌감을 초래하는 대상은 피하고 쾌락을 안겨다 주는 것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눈은 보기에 좋은 것을 향해 달려나가고 귀는 듣기 좋은 소리를, 코는 좋은 향기를, 혀는 맛 나는 음식을, 몸(피부)은 부드러운 감촉을 향해 달리고 있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이 추구하는 쾌락을 오욕락이라고 한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우리들은 이런 물질적인 대상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그래서 붓다는 활활 타오르는 불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대승불교 경전 중 <법화경>에도 이와 유사한 비유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불타고 있는 집에 비유하고 있다. 집이 불타고 있는 줄도 모르고 헛된 즐거움에 빠져 살고 있다는 것이다.
중생은 위험한 삶을 영위하면서도 어리석게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경전을 하나 더 살펴보자.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불설비유경>은 널리 알려진 경전으로 우리나라 사찰의 벽면에 그 내용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붓다는 우리 삶의 모습을 이렇게 비유하고 있다. “어떤 청년이 광야에 놀다가 사나운 코끼리에게 쫓겨 황급히 달아나다가 한 우물이 있고 그 곁에 나무 뿌리 하나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곧 그 나무 뿌리를 잡고 우물 속으로 내려가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 때 마침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가 그 나무 뿌리를 번갈아 갉아먹고 있었고, 그 우물 사방에 그리고 우물 밑에는 독사가 있었다. 그는 그 독사가 몹시 두려웠고 나무 뿌리가 끊어질까 걱정이었다. 그런데 우물 옆 나무에 달려 있던 벌집에서 떨어지는 벌꿀을 즐기면서 청년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무 뿌리에 매달려 있는 청년은 바로 우리 중생을 대변하고 있다.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는 밤과 낮에 비유한 것으로, 나무 뿌리를 갉는 것은 순간순간 목숨이 줄어드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벌꿀은 5욕락에 비유한 것이다. 청년은 자신의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떨어지는 달콤한 꿀에 탐닉해서 위험에 처해 있는 상황을 망각하고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이런 청년의 모습이 우리 중생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쾌락을 추구하면서 생명이 위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5욕락에 사로잡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살고 있는 중생들에게 결국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어디가 안전한 곳일까? 어떻게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이상의 두 가지 비유는 먼저 인생이 고통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라고 대답하고 있다.
2004-02-11
 
 
   
   
2024. 11.2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