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부일체수화 주야신의 법문
선재동자가 다음으로 찾아가는 선지식은 ‘모든 나무의 꽃을 피우는 주야신(開敷一切樹華主夜神)’이다. 이 선지식에게 선재동자는 보살행을 배우고 온갖 지혜를 얻는 법을 묻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주야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이 사바세계에서 해가 지고 연꽃이 오므리어 사람들이 구경하던 일을 파할 적에, 여러가지 산이나 물이나 성읍이나 벌판 둥지에 있던 여러가지 중생들이 모두 그들의 있던 데로 돌아가려는 것을 보면, 내가 가만히 보호하여 바른 길을 찾게 하며 가려는 곳에 가서 밤을 편안히 지내게 한다. 선남자여, 어떤 중생이 한창 나이에 혈기가 충실해서 교만하고 방탕하여 다섯 가지 욕락을 마음껏 즐기려 하면, 나는 그에게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을 보이어 두려운 생각을 내고 나쁜 짓을 버리게 하며, 다시 갖가지 선근을 칭찬하여 닦아 익히게 한다. 인색한 이에게는 보시를 찬탄하고, 파계하는 이에게는 청정한 계율을 칭찬하고, 성 잘내는 이에게는 인자한 데 머물게 하고, 해칠 마음을 가진 이에게는 참는 일을 하게 한다. 게으른 이에게는 정진하게 하고, 산란한 이에게는 선정을 닦게 하고, 나쁜 꾀를 가진 이에게는 반야를 배우게 하고, 소승을 좋아하는 이는 대승에 머물게 하고, 삼계(三界)의 여러 길을 좋아하는 이는 보살의 서원바라밀다에 머물게 한다. 만일 중생이 복과 지혜가 미약하여 번뇌와 업의 핍박으로 걸림이 많은 이는 보살의 힘바라밀다에 머물게 하며, 중생의 마음이 어두워 지혜가 없으면 보살의 지혜바라밀다에 머물게 한다. 선남자여, 나는 이미 보살의 ‘큰 기쁨을 내는 광명의 해탈문’을 성취하였다.”
이 주야신이 설하고 있는 ‘보살의 큰 기쁨을 내는 광명 해탈문’의 법문은 어두운 밤이 되어 여러 곳의 갖가지 중생들이 각각 있던 곳으로 편안히 갈 수 있도록 그들을 보호하여 바른 길을 가도록 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삼고 있는 경지이다. 이것은 갖가지의 모습으로 밝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생들에게 각각 알맞은 지혜의 빛을 비추어서, 인생의 여러가지 질곡에서 구원해 주고 일체지(一切智)의 도(道)를 구하게 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하여 구체적으로 십바라밀의 도로써 중생의 그릇됨을 바로잡아 그들을 이익되게 하는 행(行)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법문을 듣고 나서, 선재동자가 이 해탈문의 경계가 어떠한가를 묻자, 주야신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이 해탈에 들어가면 여래께서 중생들을 두루 거두어 주는 교묘한 방편 지혜를 알 수 있다. 어떤 것이 두루 거두어 줌이냐 하면, 모든 중생이 받는 여러가지 낙은 모두 여래의 위덕의 힘이니, 여래의 가르침을 순종하기 때문이며, 여래의 말씀을 실행하기 때문이며, 여래의 행을 배우기 때문이며, 여래의 두호하는 힘을 얻기 때문이며, 여래의 인가하는 도를 닦기 때문이며, 여래의 행하던 착한 일을 심기 때문이며, 여래가 말씀한 법을 의지하기 때문이며, 여래의 성품이 깨끗한 업의 힘으로 거두어 주시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줄을 아는가 하면, 내가 이 큰 기쁨을 내는 광명의 해탈에 들어가서 비로자나 여래·응공·정등각께서 과거에 닦으시던 보살의 수행바다를 기억하여 분명하게 보았던 것이다.”
이 법문을 통해서 주야신이 설하고 있는 ‘큰 기쁨을 내는 광명 해탈문’의 법문은 바로 여래께서 중생들을 두루 거두어 주는 교묘한 방편 지혜를 설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중생들이 받는 여러가지의 진정한 낙은 모두 여래의 위덕(威德)의 힘이라고 하는 점이다. 즉 여래의 가르침에 따라 그 가르침을 실행하여 여래가 실행하던 훌륭한 일을 하게 되면 참된 즐거움이나 행복은 자연히 얻어진다고 하는 점이다. 그러므로 주야신은 이 법문에 들어가서 “비로자나 여래·응공·정득각께서 과거에 닦으시던 보살의 수행바다를 분명하게 본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주야신은 여래의 과거의 보살행의 세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여래의 과거의 보살행을 깊이 사유해서 분명하게 보는 것이 보살의 큰 기쁨을 내는 광명 해탈의 법문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과거의 보살행을 생각하고 분명하게 보는 것에 의해서만 어두운 밤에 광명을 발해서 바른 길을 비출 수 있기 때문이고, 그것에 대해 비추어진 생사의 현실세계에서 비로소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살행은 부처님의 뜻을 이어받아 환희심을 가지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분이 하시던 거룩행을 본받아 스스로의 참생명을 꽃피우고 또한 일체중생의 참생명도 꽃피우게 하는 행이다. ‘모든 나무의 꽃을 피운다(開敷一切樹華)’고 하는 선지식의 명칭도 결국은 여래의 근본 뜻[本願]을 열어 모든 행을 꽃피워서 방편바라밀을 성취하여 두루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