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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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혜 스님 (下)
성운대사 법문 섬세하게 통역

자혜(慈惠) 스님을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성운 대사의 법문을 대만 말로 통역하는 데 있어 탁월했다는 점이다. 그 당시 대만의 시골은 대부분이 대만말인 민남어( 南語)를 쓰고 있었기에, 이들에게 법문을 들려주기 위해서는 대만말의 통역이 필수적이었다. 성운 대사도 “만약에 자혜 스님의 통역이 없었다면 대만에서의 포교가 불가능했을 것이다”고 말했을 정도다. 성운 대사의 법문을 일일이 알기 쉽게 절묘한 표현으로써 전달할 뿐만 아니라 감정과 정신까지도 섬세하게 표현하는 능력은 수많은 사람들의 찬탄을 자아낸다. 또한 자혜 스님은 일본어 통역도 매우 능숙해 일본 불교학자들로부터 칭찬받을 정도다.
자혜 스님의 이러한 능력은 스님의 천부적인 소질과 노력도 있었지만 성운 대사의 엄격한 훈련에 의한 결과이기도 하다. 성운 대사는 통역을 할 때 자리에 앉는 것은 물론 물도 마시지 못하게 했으며 필기도 못하게 하고 10여분을 연설한 뒤에야 통역을 하게 했다. 또한 통역하기 전에는 일체의 사전 자료도 주지 않고 즉석에서 소화해 내도록 했다. 이러한 훈련 덕분에 자혜 스님은 엄청난 주의력과 순발력으로 모든 통역을 무리 없이 소화해 낼 수 있었다.
대만 사회가 발전하면서 불자 수가 증가하고 이들의 신행이 활발해졌지만, 대만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기복이 아니라 신도들이 정지정견(正知正見)을 바로 세우고 사회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신행이 어느 정도 보편화되었을 때는 학술과 문화를 연계하여 신도들의 수준을 이끌어 올려주는 것이 필요했다. 이러한 작업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묵묵히 노력해 온 자혜 스님은 1982년부터 성운 대사의 지시로 국제불교학술회의를 비롯한 수많은 국제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1985년의 세계불교청년학술회의를 비롯하여 세계현밀학술회의, 국제불교학술회의, 불광산불교학술회의, 돈황학국제학술토론회 등 대규모의 학술회의를 해마다 개최해 불광산의 성가를 높이고 대만의 불교수준을 끌어 올렸다.
불광산에서 출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체로 여러 가지 소임을 동시에 맡고 있지만 자혜 스님만큼 다양한 소임을 맡고 있는 스님도 드물다. 자혜 스님은 일찍부터 수산불학원(壽山佛學院) 훈육주임을 비롯해 동방불교대학 학장, 보문중학교 교장, <보문(普門)>잡지 발행인, 불광출판사 사장, 까오슝 수산사(壽山寺) 주지, 보현사(普賢寺) 주지 중국불교연구원 원장, 국제불광회 수석비서장 등을 역임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불광산종무위원회 위원 겸 교육원 원장, 불광산문교기금회 집행장, 월간 <각세(覺世)> 발행인, 남화관리대학 이사, 세계불교도우의회 부회장, 동경별원 주지 등의 다양한 소임을 맡고 있다.
일에 대한 기획과 스텝들을 지휘하는 것이 능수능란 해 천수관음이란 별명을 얻은 자혜 스님은 일하는 표를 내지 않으면서도 큰 일들을 무난히 치러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지난 수년동안 불교계와 학술문화계의 교량역할을 해 온 것도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구사론>에 대해 석사논문을 쓴 스님은 대학에서 5년 동안강의를 했고 국내외의 저명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대만의 불교학 수준을 끌어올렸다. 그 중에서도 불광산문교기금회를 통한 교환교수의 지원, 미국 콜롬비아대학과 연계해 전자대장경을 발간한 것 등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누구나 처음 자혜 스님을 대하면 글만 아는 서생인 듯 느껴지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변하는 것이 있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본인의 말처럼 변하지 않는 불교의 진리로 사회를 변모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신세대의 사고를 이해하고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자혜스님은 출가자는 재능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덕이 있어야 세간, 출세간을 마음껏 드나들 수 있다고 여긴다.
김재경 기자
200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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