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륜 스님

걸망을 메되 언제나 깔끔하고 옷을 입되 언제나 단정하다. 세수할 때는 언제나 윗도리를 벗고 얼굴을 씻고 방을 치울 때는 구석 구석까지 걸레질을 꼼꼼히 한다. 불같지만 냉정하고 냉정하지만 정이 많은 사람이 보륜 스님이다. 혼자 휘파람 불기를 좋아해 아무도 없는 산길을 걸을 때면 유유히 부는 휘파람 소리는 참 듣기 좋았다.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고 보륜 스님은 선방을 다녔다. 해제 때 이따금 보는 그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 멋쟁이 수좌의 위의를 갖추고 있었다. 선객의 풍모가 더해진 그의 모습은 그 깔끔함의 이유마저 찾은 듯 깊이가 있어 보였다. 그의 어투도 잡다한 설명을 떠나 있었다.
내가 서울서 주지를 살고 있을 때 그는 몇 번 나를 찾아왔다. 와서 한결같이 하는 말이, 주지 그만 하고 선방에나 가자는 말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 말이 고마웠었다. 그러나 그 얘기를 몇 번 듣게 되자 은근히 화가 났다. 사람이란 모두 각자 사는 것이고 각자 삶의 방향에 대해 최선이라는 확신이 있는 것인데 그는 그것을 미처 읽지 못했던 것 같다. 무엇이 최선이고 무엇이 최상인지는 결코 객관의 문제가 아니라 주관의 문제라는 것을 그에게 말해 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스님, 선방에 다니는 것은 정당하고 주지를 사는 것은 그른 것인가? 선객은 최상이고 주지는 최하라고 생각하는 것 아니야? 무엇이 옳고 그르고, 무엇이 최상이고 최하인 것은 각자의 삶의 문제이지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선방에 다녀도 그 마음이 그리고 그의 삶이 그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면 선방은 하나의 형식에 그치는 것이고, 설사 도심에 있어 주지를 할지라도 그의 삶이 부처님의 삶의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 진실과 진리를 찾아 떠나는 선객의 삶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보륜 스님은 내게 더 이상 아무 말도 건네지 않고 날이 새기를 기다려 길을 떠났다.
그가 떠나고 나서 나는 비로소 내가 얼마나 시건방진 소리를 했는가 하고 후회했다. 그가 내게 얼마나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던 가를 그가 말없이 떠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그가 보기에 나는 불안했던 것이다. 그가 보기에 어쩌면 내가 다시는 공부 길에 오르지 못할 것만 같았던 것이다.
주지를 살고 선방을 다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절대로 중심을 잡고 그 내용을 담아 낼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예리하게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내게 선방에 가자고 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후회는 늘 늦게 찾아와 사람을 쓸쓸하게 한다.
어느 날 그가 다시 찾아와 내게 다시 선방에 가자고 조를지 기약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도반을 마음 아프게 보냈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했다. 도반의 마음도 읽지 못하고 자기 자신도 보지 못한 어리석음이 어둠이 내리도록 묻히지 않았다.
나는 태안사 선방에서 그와 함께 겨울 안거를 보낸 적이 있다. 그 때 그는 내게 참으로 세심하게 배려해 주었다. 옷에 풀을 할 때면 더딘 나를 대신해 옷에 풀을 해주었고, 선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었다. 방선시간이면 함께 포행을 다니고 자유정진 시간이면 동리산을 종주하고는 했다. 그는 아마도 도반 하나가 선객이 되어 선방에 그와 함께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좋았던 것 같다.
나는 그와 한 철을 같이 살았을 뿐이다. 그 후 잘 만나지 못했다. 그는 산으로 산으로 걸망을 메고 다녔고 나는 서울을 떠나지 않고 오랫동안 살았다. 서울에 살다 산이 그리울 때면 그가 떠오르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는데 하고 반성할 때면 그와 함께 공부하던 선방 시절이 그리워지고는 했다. 서울서 주지를 살 때 내가 그에게 했던 말도 어쩌면 영원한 선객의 기풍으로 살아가는 그의 멋진 삶에 대한 시샘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 철도 선방에서 성성하게 화두를 참구하고 있을 것이다. 화두가 곧 삶이고 삶이 곧 화두라고 생각하며 사는 그의 모습이 문득 문득 그리워지는 것은 선객의 길이 내게 끝내 그리움으로 남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삭발을 하고 나면 유난히 반짝이던 그의 머리. 해인사 강원 시절 삭발하는 날 반짝반짝 대머리 노래 부르다 분노해 쫓아오던 그를 피해 도망치던 일들이 아름답게 떠오른다.
영원한 선객, 보륜스님. 달랑 걸망 하나를 메고 다니지만 그가 당당해 보이는 것은 그가 걷고 있는 길이 무척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월간 <해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