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정성 두루 쌓인 이 공양을 부족한 덕행으로 감히 받노니
탐심을 여의어서 허물을 막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도업 이루고자 이제 먹노라.
<오관게(五觀偈)>
밥 : 곡류 따위를 익혀 끼니로 먹는 음식. 주로 쌀밥을 일컬음.(이희승 감수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한국인에 있어 밥의 의미는 이런 사전적 의미로는 포착되지 않는다. 한국인에게 밥은 단순히 음식의 한 가지가 아니다. 생명 또는 가장 숭고한 노동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밥숟가락을 놓았다’는 말은 죽음을 뜻한다. 태아에게 탯줄과 같은 것이 밥이라는 얘기다. ‘밥줄’이라는 말은 직업 또는 생계 수단의 의미를 훌쩍 뛰어넘는다. ‘밥’의 의미 반경은 ‘빵’의 그것으로 갈음될 수 없다.
종교적 희생의례(犧牲儀禮)의 문화인류학적 의미는 누구도 단언하기 힘들다. 하지만 보통 희생양으로 대표되는 희생수(犧牲獸)가 그것을 행하던 당시 가장 귀한 제물이었음은 분명하다. 우리 민족에게도 밥은 그런 것이었다. 밥이 제상이나 수라상에 오르면 ‘메’가 되고, 쌀이 부처님 전에 바쳐지면 공양미가 된다. 한국인에 있어 밥(쌀)은 생명의 등가물이자 가장 귀한 것의 상징이었다.
이런 밥의 요즘 형편이 말이 아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안달하는 정부로부터는 숫제 국가 발전의 걸림돌 취급을 당하고 있다. 농업개방 불가론자들이 말하는 벼농사의 비교역적 가치 이전에, 모두를 살리는 공양물로서 쌀의 생명성에 주목할 때다.
사스, 광우병, 조류 독감이 증언하는 세계화의 허약한 면역 체계를 보라. 우리에게 쌀의 중요성은 세계화·반세계화라는 양극을 넘어선 지점에 있다.
■윤제학(아동문학가 / 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