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귀 희/솟대문학 발행인, 방송작가
얼마 후면 엄마 일주기가 돌아온다. 벌써 돌아가신지 1년이 됐다. 엄마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았지만 난 1년을 거뜬히 살아냈다. 두 다리는 물론 두 팔도 자유스럽지 못했던 나는 47년 동안 엄마를 의지해서 살았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엄마 없으면 한(寒)데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네 살 궁리를 해라.”
지금 생각해보니 당신이 없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장애인 딸을 강하게 키우셨던 것이다.
철없던 시절 난 엄마의 헌신적인 보살핌이 당연하다고 믿었다. 다른 엄마들도 다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위에는 장애 때문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았다. 장애인 시설에 있는 아이들은 가족이 포기한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시설에서 산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지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 잘 보살피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텐데 버려진 장애인은 장애 속에 갇혀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장애인이 되고 만다. 장애 때문에 버림을 받은 순간 이미 한 번의 커다란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천륜을 끊어버리고 이 넓은 세상에 자기 혼자 남아 예전과 다르게 살아가야 하니 그것은 죽음에 다름 아니다.
그래도 운이 좋은 장애인은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시설에서 먹고 자는 것 걱정은 하지 않고 살고 있지만, 미인가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은 꽁꽁 언 몸으로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한다.
미인가 시설은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후원금으로 운영이 된다. 그런데 요즘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후원의 손길이 뚝 끊어졌다고 한다. 예전처럼 설날이라고 찾아오는 사람도 줄었다. 사회적 무관심이 장애인과 같이 불우한 이웃을 두 번 죽이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시설을 운영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원생이 50명이면 그 가운데 절반은 질병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원장은 원생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것이 가장 큰 일이란다.
호적이 없는 무호적자가 많아서 의료 보험이 안돼 병원비가 생활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미인가 시설에서 살고 있는 장애인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알게 되면, 자신이 잘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조금씩 나누면 세상은 살만한 세상이 된다. 우리는 흔히 남을 돕는 일을 좋은 일 이라고 하면서 착한 사람이거나 돈 많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을 돕는 일은 좋은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의무다.
부처님은 그것을 보은이라고 하였다. 은혜에 보답할 일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의 빚이다. 그 사람에게서 빌려온 것이니까 되돌려줘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또한 육바라밀의 첫 덕목인 보시의 가르침이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야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어려운 이들에게는 약간의 시간과 약간의 관심이 큰 보시가 되기 때문이다.
장애와 가난과 질병 때문에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묻혀 살고 있다. 사회의 무관심에 괴로워하는 불우한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다. 이제 그들과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자. 그래야 작은 행복도 큰 행복이 될 수 있다. 부처님이 꿈꾸는 세상도 이런 더 큰 행복이 있는 세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