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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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붓다의 자유로운 탐구정신
종교와 철학적 요소 모두 갖춘 불교

불교를 철학으로 분류하는 사람도 있다. 서양에서 처음으로 불교를 학문의 대상으로 접근하였을 때 유럽의 불교학자들 중에는 불교를 철학 내지 사상으로 이해하였다. 서구의 위대한 철학자 야스퍼스 등은 불교의 사상에 깊이 매료되어 연구하였으며 가톨릭 신부인 라모트와 같은 위대한 불교학자가 배출되기도 하였다. 이들은 불교를 신앙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철학 내지 사상으로 여겼기 때문에 불교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물론 불교는 단순히 철학이 아니다. 그렇다고 종교도 아니다. 불교는 종교적인 측면과 철학적인 요소를 모두 안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선 불교를 철학으로 이해하였던 사람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붓다의 가르침을 경전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철학이 다른 학문과 구별되는 것은 자유로운 비판과 사색을 생명으로 하고 있는 점이다. 철학은 일반적으로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전통이나 가치 체계에 대한 비판적인 질문을 던진다. 특히 먼 과거로부터 진실이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는 사상이나 신앙 대상에 회의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철학이 던지는 비판적인 질문은 단지 기존의 가치체계나 사상체계를 무조건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관념체계를 자유롭게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끊임없는 질문과 검토를 통해 진실과 허위를 판별해 내자는 것이다. 철학의 이런 자유로운 탐구 정신이 붓다의 가르침의 주요한 흐름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불교를 철학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맛지마 니카야의 우팔리 경전(Up?li-Sutta)에선 자유로운 탐구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우팔리(Up?li)는 자이나교의 유력한 신자였는데 붓다와의 대론을 통해 불교에 귀의한다. 신업, 구업, 의업 삼업 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가라는 문제를 두고 우팔리는 붓다와 대론을 벌였다. 자이나교는 신업을 가장 중요시하였고 붓다는 의업을 가장 중시하였다. 대론 끝에 우팔리는 자신의 견해가 잘못된 것임을 시인하고 붓다에게 자신을 재가신자로 받아달라고 간청한다. 붓다는 그의 개종 의사를 즉각 받아들이지 않고 “재가자여! 철저히 조사하라. 그대처럼 영향력 있는 사람이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라고 권고한다. 이러한 권고에 우팔리는 더욱 감동 받고 재차 불제자가 되기를 원한다.
이 소식을 접한 자이나교 교주는 우팔리를 찾아 그의 개종 여부를 확인한다. 대화 중 우팔리는 붓다의 가르침과 자이나교의 가르침의 특성을 비교한다. “어리석은 니간타 나타풋타의 가르침은 어리석은 자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현자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은 테스트나 조사에 견딜 수 없다. 그러나 세존의 가르침은 현자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어리석은 자에게는 그렇지 아니한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은 테스트나 조사에 견딜 수 있다.” 우팔리는 비유로 비교한다. 원숭이를 빨간색이나 노란색 등으로 염색할 수 있지만 두들겨서 평평하게 할 수 없듯이 니간타 나타풋타의 가르침도 그와 같다. 두들긴다는 것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사하고 테스트한다는 것이다. 원숭이를 몽둥이로 두들기면 죽듯이 니간타 나타풋타의 가르침도 질문해 보면 결국 허위로 판명된다. 옷감은 염색도 할 수 있고 두들겨 평평하게 할 수 있듯이 붓다의 가르침도 그와 같아 자유로운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의 가르침마저도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서는 안되고 스스로 검증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한다. 붓다는 연기의 교리를 가르치고 나서 제자들에게 묻는다.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이와 같이 알고 보았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하겠는가? ‘우리의 스승은 존경할 만한 분이니 우리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에서 그와 같이 말한다’고.” 붓다는 자신의 가르침마저도 검토되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단지 위대한 스승이 말했다고 해서 그대로 진실이라고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탐구와 비판적인 이성은 불교를 떠받치는 토대이다. 이런 토대를 무시하고 불교 경전을 공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신앙 중심의 종교와는 달리 불교의 진리관은 신앙보다는 지혜를 강조한다. 믿음 중심의 종교의 교리 즉 도그마는 신앙을 전제로 하는 교설이다. 검토나 비판을 용납하지 않으므로 독단적이다. 반면에 붓다의 가르침은 비판적 검토나 사색을 중시한다. 따라서 불교에는 다양한 교리가 전개되고 발달되었다. 불교의 역사를 보면 새로운 경전과 논서가 제작되어 새로운 시대 상황과 문화에 부응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기독교의 성경이 닫혀진 데 비해 불전(佛典)은 개방되어 있다고 하겠다. 이런 열린 자세는 경직된 교주주의(dogmatism)나 권위주의를 막아 준다.
<동국대 불교학과 전임강사>
200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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