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음해 주야신의 법문
선재동자가 다음으로 찾아가는 선지식은 ‘고요한 음성바다(寂靜音海) 주야신’이다. 주야신을 찾아가 예배하고 나서, 보살행을 배우고 보살도를 닦는 법을 묻자, 그 주야신은 자기는 ‘보살의 생각 생각마다 광대한 기쁨을 내는 장엄해탈문(念念出生廣大歡喜莊嚴解脫門)’을 얻었다고 하였다.
선재동자가 그 해탈문은 무슨 사업을 지으며, 무슨 경계를 행하며, 무슨 방편을 일으키며, 무슨 관찰을 하는 것인지를 묻자, 주야신이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모든 중생의 앞에 두루 나타나서 구호하는 마음을 내었다. 나는 모든 부처님 바다를 보아 싫어함이 없는 마음을 내었다. 나는 모든 보살의 청정한 서원의 힘을 구하는 마음을 내었다. 나는 큰 지혜의 광명바다에 머무는 마음을 내었다. 나는 모든 중생이 근심과 괴로움을 여의게 하려는 마음을 내었다. 나는 모든 중생이 여래의 위없는 법의 즐거움을 성취케 하려는 마음을 내었다.
이와 같은 마음을 내고는 다시 법을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차츰차츰 온갖 지혜의 지위에 이르게 하니, 어떤 중생이 경계에 물듦을 보면 나는 그에게 법을 말하여 여래의 경계에 들어가게 한다. 또한 어떤 중생이 성내는 일이 많음을 보면 나는 그에게 법을 말하여 여래의 참는 바라밀다에 머물게 한다. 어떤 중생이 게으름을 보면 나는 그에게 법을 말하여 청정하게 꾸준히 노력하는 바라밀다를 얻게 한다. 어떤 중생의 마음이 산란함을 보면 나는 그에게 법을 말하여 여래의 선정바라밀다를 얻게 한다. 어떤 중생이 지혜가 없음을 보면 나는 그에게 법을 말하여 반야바라밀다를 얻게 한다. 어떤 중생이 저를 이롭게 하는 행에 머무른 이를 보면 나는 그에게 법을 말하여 모든 중생을 이익케 하려는 소원을 내게 한다. 어떤 중생의 마음이 교만한 이를 보면 나는 그에게 평등한 법의 지혜를 말한다.
선남자여, 나는 이러한 한량 없는 법보시로 중생들을 거두어 주되 갖가지 방편으로 교화하고 조복시켜 나쁜 길을 여의고 인간이나 천상의 낙을 받게 하며 삼계의 속박을 벗어나 온갖 지혜에 머물게 하고는, 그때에 나는 엄청난 즐거움과 법의 광명바다를 얻고 마음이 화창하여 편안하고 희열하는 것이다.
또한 선남자여, 나는 모든 도량에 모인 보살대중을 항상 관찰하여 그들이 갖가지 원과 행을 닦으며, 갖가지 깨끗한 몸을 나투며, 갖가지 항상한 광명이 있으며, 갖가지 광명을 놓으며, 갖가지 방편으로 온갖 지혜의 문에 들어가며, 갖가지 삼매에 들어 갖가지 신통변화를 나타내며, 갖가지 부처님 세계에 들어가며, 갖가지 장엄한 자리에 앉았음을 안다.
선남자여, 나는 이 도량에 모인 대중을 이와 같이 관찰하여 부처님의 신통한 힘이 한량없고 그지 없음을 알고 크게 환희한다. 선남자여, 나는 비로자나 여래께서 잠깐잠깐마다 부사의하게 청정한 몸을 나타내심을 관찰하나니 이것을 보고는 크게 환희한다. 또한 여래께서 잠깐잠깐마다 큰 광명을 놓아 법계에 가득함을 관찰하나니 이것을 보고는 크게 환희한다. 또한 여래께서 낱낱 털구멍에서 잠간잠깐마다 한량없는 세계의 티끌수 광명바다를 내는데, 낱낱 광명이 한량없는 세계의 티끌수 광명을 권속을 삼고, 낱낱이 모든 법계에 두루하여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소멸시킴을 관찰하나니 이것을 보고는 크게 환희한다.
나는 이것을 보고는 잠깐잠깐 동안에 매우 환희함을 내고 매우 믿고 좋아함을 내었으니, 예전에 얻지 못한 것을 지금 얻었고, 예전에 보지 못한 것을 지금 보았고,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을 지금 듣게 되었다.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법계의 모양을 능히 분명하게 아는 까닭이며, 온갖 법이 오직 한 모양임을 아는 까닭이며, 삼세(三世)의 도에 평등하게 들어간 까닭이다. 선남자여, 나는 이 보살이 생각생각마다 크게 기뻐하는 장엄을 내는 해탈의 광명바다에 들어갔다.”
주야신의 명칭이 ‘고요한 음성바다[寂靜音海]’인 것은 세속으로 들어가서 널리 중생을 교화하고 법을 설할 수 있는 것이 모두 선정(禪定)에 바탕을 둔 지혜의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바다처럼 광대함을 나타낸 것이다. 주야신이 설하고 있는 법문의 내용은 발심과 설법에 의해서 중생을 이롭게 하고 교화하는 것에 한없는 환희를 느끼고, 여래와 보살의 거룩한 덕을 관찰함으로써 예전에 보고 듣고 얻지 못했던 것을 보고 듣고 얻게 됨으로써 불도를 구하려고 하는 생각을 새롭게 가지게 되어 생각 생각마다 한없는 기쁨을 느끼는 도(道)를 체득하는 것이다.
부처님과 보살의 거룩한 경계를 관찰하고, 그것에 공감하여 그 법을 받들어서 그 자신도 중생교화에 매진하려고 하는 생각생각마다 일으키게 되는 기쁨이야말로 바로 해탈의 경지인 것이다. 이러한 마음을 일으키고 이러한 행을 실천함이 없이 부처님 법을 어렵기만 하다고 넋빠진 소리만 늘어놓는 사람은 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