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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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 스님 (下)
불가능 모르는 대학승

성운 대사는 자이 스님의 자질을 일찍부터 알아보고 타이쫑에서 자이 스님을 처음 본 후 여러 가지 서적들을 보내줬는데, 특히 순간 잡지<각세>에 대해서는 자이 스님이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읽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당시에 성운대사는 자이 스님이 언젠가는 <각세>의 주필이 될 것이라 했는데, 과연 자이 스님은 불학원에서 공부하던 3년 동안 <각세>의 주필을 맡았다. 이 시기 동안 자이 스님은 성운 대사의 각별한 지도와 노력으로 원고 교정에서 출간까지 많은 일을 배웠으며, 이러한 것이 거름이 되어 훗날 <불광대사전>의 편찬까지 주관하게 되었던 것이다.
1969년, 성운 대사는 불광산의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자이 스님을 자혜(慈惠), 자가(慈嘉) 스님과 함께 일본 교토의 불교대학에 유학시켰다. 여기에서 자이 스님은 사학(史學)을 전공, 4년 뒤에는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에는 불학원에서 교육을 담당하며 대자유치원을 운영했다. 그 당시, 자이 스님의 가르침을 받던 어린이들이 이제는 30, 40대의 어엿한 사회의 중견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자이 스님은 그 후 짱화(彰化) 복산사(福山寺) 주지 겸 복산사불학원원장을 역임했으며, 이 때부터 <불광대장경>과 <불광대사전>의 편찬이라는 중임을 맡아 이 후 10여 년 동안 여기에 매진했다. 물론 이 중간에 <보문>지의 발간과 <불광산 소개> <성운대사 강연집>과 <불광학보> 등의 발간에 참여했다. 그러나 자이 스님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불교사를 정리한 <불교사 연표>, 그리고 <아함장>과 <불광대사전>이다. 1977년 성운 대사의 발원에 의해 ‘불광대장경 편수위원회’가 성립되면서 시작된 <불광대장경>의 편찬사업은 현재 <아함장> 16책, <선장(禪藏)> 51책, 그리고 <정토장>이 완성을 보았다. 지금까지의 모든 한문경전을 수집하여 정리하고 고증과 주석을 가하고 표점을 찍어 완성한 <불광대장경>은 여러 판본 가운데 가장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또한 <불교사연표>도 자이 스님이 주관한 것으로 수많은 자료를 조사해 완성한 것이어서 많은 불교학자들의 요긴한 지침서가 되고 있다.
<불광대장경>과 함께 동시에 진행된 <불광대사전>의 편찬은 장장 10년이 걸린 대역사였다. 총 2만2,608항목에 달하는 불교용어를 수록한 <불광대사전>은 참고자료만도 트럭으로 몇 대 분량이었다. 자료 수집을 위해 자이 스님은 인도 태국 홍콩 한국 일본 미국 등을 몇 차례나 오고 갔다. 한 번 교정에 최소한 6명 이상이 참여하여 4교까지 보았으며, 자이 스님이 끝까지 직접 교열한 것만도 3차례나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불광대사전>은 착수 10년만인 1988년에 완성을 보았으며, 그 해 대만의 최우수도서상인 ‘도서출판금정장’을 수상했다. 이 대작불사는 자이 스님의 능력과 강인한 의지에서 이루어 질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학자풍의 유순한 비구니로 보이나 불심으로 무장된 정신력은 어떠한 난관이라도 돌파하는 무서운 집중력을 보인것이다. 컴퓨터가 보편화되지 못했던 그 시절, 독학으로 컴퓨터를 배워 <불광대사전>의 편찬에 이용할 정도였다.
자이 스님은 사찰의 운영에 있어서도 한적한 복산사를 1회 법회에 3000여명이 모이는 규모로 발전시켰으며, 중부지역의 양대 불광산 사찰인 동해도량(東海道場)과 원림강당(圓林講堂)이 모두 복산사를 기반으로 발전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자이 스님은 항상 스스로를 불광산에서 가장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겸손해 한다.
김재경 기자
200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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