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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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생명, 우주 그리고 불교
연기적 인과 초월한 세계는 없나?

지금까지 말했듯이 우리가 보고 느끼고 있는 연기적 세상이란 ‘부증불감’이라는 닫힌 세계 내에서만 성립되는 모습이다. 한편, 닫혀있다는 것은 특정 조건이 성립되는 한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연기적 인과가 성립되지 않는 그런 열린 세상은 없는가?
천체 물리학자들은 이 우주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으로 빅뱅(Big Bang)을 들고 있다. 태초에 무한 질량의 작은 한 점에서 시작된 큰 폭발로 우주가 생겨나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마치 손전등을 켰을 때 작은 전구로부터 빛이 양쪽으로 널리 퍼져가듯이 말이다. 이 팽창으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역사가 탄생하고, 빛의 속도라는 제한 요소 안에서 팽창하는 우주의 범위가 형성되고 있음은 영국의 호킹 박사가 쉽게 설명해 주었다.
다시 말하면 빛의 속도라는 경계로 만들어진 이 한정된 우주 속에서 성립되는 연기적 세상은 인과적이고 논리적이며 그래서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세계이다.
그러면 이 빛의 속도를 뛰어 넘어 펼쳐질 수 있는 우리의 우주 밖의 세상은 어떨까? 그 세계는 말로 이루어진 우리의 닫힌 연기적 세계도 포용하고 있을 커다란 우주일 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인가? 불행히도 합리적 이성과 논리에 의거한 과학은 결코 그것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곳은 인과가 떨어지고, 과거 현재 미래도 없기에 논리가 성립되지 않으며 따라서 말로 정리될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말씀과 선사들의 표현을 보면 닫힌 세계를 뛰어 넘어 넓은 열린 세계를 전해주고자 얼마나 열심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닫혀있다는 것은 그 상태를 규정하는 조건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빛의 속도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연기적인 세계 속에서는 ‘없다’는 말이 ‘있다’의 반대말이다. 하지만 열린 세계에서는 그 세계를 규정하는 조건 자체가 없기에 ‘있다’, ‘없다’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경이나 이러한 세계를 알아차린 선사들은 굳이 우리의 말을 이용해 ‘있다’는 것을 뛰어넘은 무언가를 표현할 때 ‘없다’가 아니라 ‘있지 않다’라고 표현한다. 깨어있는 자는 이 뜻을 알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있지 않다’라는 표현을 ‘없다’라는 말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 옛날 양무제도 달마대사의 그 넓은 ‘알지 못한다(磨云, 不識)’를 오직 연기적 작용만 아는 길들여진 자신의 좁은 안목으로 받아들여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듯 알고 보면 ‘모른다’와 ‘알지 못한다’는 하늘과 땅의 차이인 것이다.
이 세계를 선사(禪師)들은 말을 떠난 자리라 굳이 표현했다. 아니 말로 갈 수없다 했다. 그것은 생명(生命)의 자리이다. 비록 생명체(生命體)는 연기적 작용이 성립하는 닫힌 세계 속에서 펼쳐지기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 속에서 윤회를 거듭하지만, 이 몸이라는 사대(四大), 육근(六根)에 길들여지지 않은 생명의 본 자리(本面目)는 중중무진 끝없이 펼쳐진 열린 세계 속에 있는 것이다. 그 맛을 알아야 한다.
■서울대 수의과대학 면역학교실
200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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