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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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스님의 스님이야기
형공 스님

“가르친 도리를 잘 터득하자. 자유의 경지를 얻은 후에 할 일은 이것이다. 유능하고 솔직하며 그리고 단정할 것, 좋은 말을 하고 온화하고, 교만하지 않을 것, 족함을 알고 편안한 마음으로, 잡스러운 일에 구애받지 않고 간소하게 살아 갈 것, 오근이 청정하고 겸허할 것, 단월의 집에 있는 것을 탐하지 말 것, 비천한 짓을 하여 식자의 비난을 받지 말라. 다만 이런 자비심을 닦을 지니, 태어나 살아가는 모든 생명에게 행복과 평화와 안락함이 있을지니.“
<자경>이라 명명한 경전의 일부다. 비구들은 조용한 장소에서 명상할 때 이 글귀를 생각 하면서 앉아 있었다고 한다. 나는 이 경을 음악으로 들으면서 명상에 잠긴다. 같은 음률이 반복되는 음악 자비경은 나를 깊은 명상에 빠지게 한다.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고 있으면 편안하다. 이런 이완은 삶의 행복 가운데 하나다. 생각도 몸도 모든 활동을 쉬고 그냥 편안하게 있으면 모든 것이 족하다. 구할 때 부족하고 쉬면 편한 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다. 자경이라는 음악 안에서 나는 비로소 편안한 쉼을 얻는다.
‘자경’이라는 제목의 음악은 지금 지리산 국사암에 머물고 있는 형공 스님이 보내 주었다.
스님은 내게 음악만을 보낸 것이 아니라 편안함도 함께 보낸 것이다. 내가 주지직을 그만 두었을 때 스님은 내게 명상음악을 좀 들으라고 했다. 편한 시간에 음악을 들으면 마치 마른 땅에 비가 고이듯 음악이 영혼을 적시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며 음악 듣기를 권했다. 그리고 스님은 그 말을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좋은 음악들을 CD로 구워 음악의 문외한인 내게 보내주었다. 처음에는 성의가 고마워 들었던 것이 이제는 좋아서 듣는 경지가 되었다. 대단한 발전인 셈이다.
형공 스님은, 모르긴 몰라도 음악에 대단한 경지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음악의 선곡이 신비롭고 또한 빼어나다. 문외한인 나를 음악의 세계로 이끌 만큼 그 마음 또한 섬세하다. 스님의 생활 또한 음악처럼 조용하고 감미롭다. 해제 때는 홀로 토굴에 살고 결제 때는 선방에 다닌다. 그 생활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그리던 생활이다.
나는 스님이 사는 토굴에 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가보지 않았어도 토굴에서의 스님의 생활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스님의 어투나 자세로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좌선을 하고 밤이면 별을 보며 음악을 듣고, 생활은 언제나 고요와 평온을 떠나지 않으리라. 마치 <자경>의 말씀처럼 조용한 자리에 앉아 족함을 알고 편안한 마음으로 잡스러운 일에 구애 받지 않고 간소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태어나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행복과 평화와 안락함을 위해 기원할 것이다.
스님과 가끔 만나면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신다. 대화는 거의 없다. 조용한 가운데 나누는 차와 침묵 속에 듣는 음악이 이토록 깊게 다가온다는 것을 새삼 만날 때마다 느끼게 된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말을 너무 많이 해 만남이 번잡하고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형공 스님과의 만남은 언제나 편안하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만나면 결코 어색하거나 서먹하지 않은 것은 그런 만남의 편안함을 서로 공유했기 때문일 것이다.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고 편안한 관계야말로 가장 좋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자꾸 할 말을 찾아야 하는 것만큼 불편한 일은 없다. 할 말이 없어 멋쩍게 앉아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힘든 일이겠는가. 그런 관계의 사람들은 침묵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상대방의 침묵이 따뜻하게 다가 올 때 그 관계는 편하다.
형공 스님은 그런 의미에서 편한 사람이다.
언젠가 한번은 도반 스님의 암자에서 함께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그때도 우리는 밤새도록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고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고 가끔 밖에 나가 별을 헤었을 뿐 잡다한 대화는 삼갔다. 그럼에도 그 밤의 기억은 아직 내게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 밤, 말없는 말 속에서 가장 많은 말을 나누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의 얘기는 우리를 넘쳐 하늘과 바람에게도 이르렀던 것은 아닐까. 말이 없어도 가장 많은 대화를 건네는 스님의 침묵 화술을 나도 배우고 싶다.
긴 여행에서 돌아와 그가 보낸, 구운 CD를 만나는 일이 이제 내게는 큰 기쁨이 되고 있다. 다음에는 어떤 음악을 구워 보내줄까. 그가 보낸 CD를 받을 때 마다 나는 다음에 받게 될 음악이 궁금해진다. 음악같이 감미로운 스님, 문득 형공스님이 안거를 나고 있는 국사암이 그립다.
■월간 <해인> 편집위원
200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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