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이야 말로 구원자 나는 단지 길을 가르쳐 줄 뿐”
흔히 불교를 기도와 신앙을 강조하는 유일신교와 구별하여 자력(自力) 종교라고 한다. 초기불교의 불타관(佛陀觀)을 살펴보면 붓다는 기도의 대상이나 의존의 대상이 아니다. 붓다는 믿기만 하면 구원해 주는 이른바 전능한 구제자가 아니다.
예를 들면, 담마파다(Dhammapada)에서 “자기 자신이야 말로 자신의 구세주이지, 다른 어떤 구원자가 있겠는가?”라고 붓다는 가르치고 있다. 그럼 과연 붓다는 우리 중생에게 어떠한 존재일까?
붓다는 중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당신의 역할을 “길을 가르쳐 주는 길잡이”로 밝히고 있다. 붓다는 고통에서 벗어난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붓다가 남겨놓은 약도를 가지고 열반이라는 보물섬을 찾아가야 하는 것은 우리 중생들의 몫이라는 것을 다음의 경전은 전하고 있다.
중부 니카야의 가나카 목갈라아나 경전(Ganakamoggallana-Sutta)에 나오는 내용을 살펴보자.
이교도인 가나카 목갈라아나(Ganaka Moggallana)는 붓다께 여쭈었다. “붓다는 모든 제자들에게 법을 가르치고 있는데, 모두들 구경의 지혜를 얻어 반드시 열반을 얻게 됩니까?” 목갈라아나의 질문에는 붓다의 교화 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 의도가 있다. 붓다가 위대한 능력이 있다면 제자들을 모두 열반에 이르게 할 수 있지 않느냐는 힐난이다. 붓다는 “제자들이 한결같이 다 얻지는 못하여 혹 얻는 자도 있고, 혹 얻지 못하는 자도 있다” 라고 대답한다.
붓다의 대답에 목갈라아나는 만족해 하며 붓다가 무능해서 그런 차이가 발생하지 않으냐고 다시 묻는다.
붓다는 반문한다. “그대는 왕사성이 어디에 있는 지를 알고, 또한 그곳으로 가는 길을 아느냐?”
“예, 저는 알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나는 왕사성으로 가려고 합니다. 당신이 왕사성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면 내게 말해 줄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너는 그 사람에게 ‘여기서 이 길을 따라 가면 어느 마을에 이르고, 그 어느 마을에서 더 가면 어느 읍에 이를 것이니, 이렇게 계속 가면 왕사성에 이를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네 말을 듣고 가르쳐 준 길을 따라가다가 얼마 안 가서 곧 바른 길을 버리고 나쁜 길에 헤맬 경우 그는 왕사성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어떤 사람이 와서 그대에게 왕사성에 가는 길을 묻는다면 너는 앞서 지시한 것처럼 정확하게 가르쳐줄 것이다. 이 사람은 그대의 말을 정확히 기억하고 지시한대로 걸어가면 왕사성에 도달할 것이다. 목갈라아나여!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왕사성에 이르지 못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왕사성에 도착하였다. 그대는 길잡이로 두 사람 모두에게 똑같이 가르쳐 주었다. 누구에게 허물이 있는가?”
“저에게는 전혀 허물이 없습니다. 제가 왕사성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지만 첫째 사람은 제가 가르쳐 준 것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잘못이 있습니다.”
붓다는 다음과 같이 당신과 제자의 관계에 대하여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나도 또한 제자들의 열반 성취에 책임이 없다. 내가 길잡이가 되어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열반으로 가는 길을 가르치지만, 혹은 구경의 열반을 얻기도 하고 혹은 얻지 못하기도 한다. 그것은 단지 각자 정진하는 수행자에 달려 있을 뿐이다. 나는 단지 길을 가르쳐 줄 뿐이다.”
붓다는 당신의 역할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단지 열반에 이르는 길을 제시할 뿐이므로 제자들은 정확하게 붓다의 지시를 이해하고 받들어 실천해야 한다. 길은 각자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붓다가 중생을 짊어지고 열반이라는 목적지에 데려다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쁜 꿈에 시달려 울고 있는 아이에게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잠을 깨우는 것이다. 아기의 꿈속으로 들어가 괴물을 퇴치할 수 없는 노릇이다.
붓다는 무지의 잠에서 꿈에 집착하고 있는 중생들에게 깨어나라고 가르치고 있다. 잠을 자고 있는 동안 사람들은 꿈을 꾸며 꿈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실재로 여긴다. 꿈속에서 울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깨어나면 꿈속에서의 일들은 모두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꿈에서 깨어날 것을 가르치는 붓다는 우리의 꿈속까지 들어와 악마를 퇴치하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깨어나야 한다.
<동국대 불교학과 전임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