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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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입법계품 <52>
희목관찰중생 주야신의 법문

선재동자는 보덕정광 주야신으로부터 마가다국 보리도량의 오른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희목관찰중생(喜目觀察衆生) 주야신을 찾아가 보살행을 배우고 닦는 법을 물으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선재동자는 선지식에 대한 공경심을 가지고 만나보게 되면 한없는 공덕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는 기대를 품고 선지식을 친근하여 힘차게 정진 수행해서 불도를 성취하려는 생각을 내었다.
선재동자는 이렇게 생각하고 희목관찰중생 주야신에게 나아가니 그 신은 여래의 대중이 모인 도량에서 연화장 사자좌에 앉아 ‘큰 세력으로 널리 기쁘게 함을 표방하는 해탈(大勢力普喜幢解脫)’에 들어갔다. 이렇게 하여 희목관찰 주야신은 그 몸에 있는 털구멍마다 한량없는 몸구름을 나타내게 하여 그들에게 알맞은 묘한 음성으로 법을 말하여 한량없는 중생들이 이익을 얻게 하였다.
이를테면 한량없는 몸구름을 나타내어 보살의 열(十) 바라밀과 한량없는 종류의 중생 세계의 모습 등을 보이었다. 이것은 바로 경문에서 말하고 있는 ‘큰 세력으로 널리 기쁘게 함을 표방하는 해탈’을 구체적으로 설한 것으로서, 하나하나가 모두 보살이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십바라밀을 행함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는 법을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희목관찰중생 주야신의 법문은 보살이 십바라밀로써 중생을 섭화해서 그들을 성숙케 하는 법을 설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때에 잠깐씩 시방으로 각각 불가설 불가설 부처님 국토들을 깨끗하게 하며, 한량없는 악도의 중생을 제도하며, 한량없는 중생을 인간과 천상에 나서 부귀하고 자재하게 하며, 한량없는 중생을 생사의 바다에서 벗어나게 하며, 한량없는 중생을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머물게 하며, 한량없는 중생을 여래의 지위에 머물게 하였다.
주야신의 하나 하나의 털구멍에서 무량한 변화신운과 십바라밀 등을 나타내 보인 것은 바로 몸과 마음을 다하여 중생들을 위해서 보살행을 닦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희목관찰중생주야신이 ‘큰 세력으로 널리 기쁘게 함을 표방하는 해탈문’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불도수행에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되어 중생들이 윤회하는 삼계에 속박되지 않게 되어 세간 속에 처할 때에 항상 인욕행과 자비행을 행할 수 있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야신은 비로소 일체의 선악 중생에 대해서 늘 환희하면서 싫어하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다.
주야신의 명칭이 ‘기쁜 눈으로 중생을 관찰하는 밤을 주관하는 신(희목관찰중생주야신)’인 것도 삼계의 오염된 세계와 청정한 세계의 어디에도 걸림이 없게 되어 선악의 중생들에게 조금이라도 싫어해서 버리지 않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기쁜 눈으로 중생을 관찰한다고 하는 것은 그러한 보살행을 수행하는 마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선재동자는 위의 모든 희유한 일을 보고 듣고는 생각생각에 관찰하고 생각하고 이해하여 깊이 들어가 편안하게 머물렀으며, 부처님의 위신의 힘과 해탈의 힘을 받잡고, 보살의 부사의한 큰 세력으로 널리 기쁘게 함을 표방하는 당기의 자재한 힘을 내는 해탈을 얻게 되었다.
선재동자는 주야신이 펼쳐 보이는 훌륭한 경계에 깊이 공감하여 자신도 세간 속에 머무르며 인욕행과 자비행을 적극적으로 행하고 일체의 선악 중생을 항상 기쁜 눈으로 관찰하면서 교화하여 성숙시키려고 하는 강한 의지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선재동자는 어떻게 해서 주야신이 나타낸 여러가지 희유한 일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써 주야신이 갖추고 있는 해탈을 터득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경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무슨 까닭인가. 기쁜 눈으로 ‘중생을 관찰하는 밤 맡는 신’과 더불어 옛날에 함께 수행한 연고며, 여래의 신통한 힘으로 가피한 연고며, 부사의한 선근으로 도와주는 연고며, 보살의 모든 근성을 얻은 연고며, 선지식의 힘으로 거두어 주는 연고며, 저러한 선근이 이미 성숙한 연고며, 보현보살의 행을 닦을 만한 연고이니라.”
경문에서는 이어서 주야신의 오랜 과거 세상의 본생을 설하고 있다.
희목관찰중생 주야신의 법문을 통해서 불법을 기뻐하고 진정으로 보살의 삶을 지향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미 아득한 과거의 생애로부터 불법과 인연을 맺어 오면서 부처님의 신력의 가피를 입고 선지식의 지도를 받으면서 선근 공덕을 쌓아온 사람으로서 부처님의 온전한 덕행인 보현행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종교생활은 이러한 신념을 확고히 가짐으로써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부처님 신력의 가피와 선지식의 지도에 의해 성스러운 사람들과 함께 가던 그 거룩한 옛길을 금생에서 또 다시 걸어간다고 하는 신념이 선재동자로 하여금 보다 적극적으로 ‘큰 세력으로 널리 기쁘게 함을 표방하는 해탈’에 들어가도록 할 것이다.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200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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