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대사전 펴낸 주역
대만의 불광대사전을 편찬한 주역인 자이(慈怡) 스님이 불문에 인연을 맺은 것은 조모의 덕택이었다. 타이쫑 왕전(王田)이란 곳에 선왕사(善王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조모는 늘 가장 총애하는 맏손녀인 자이 스님을 데리고 절에 갔다. 스님의 기억에 의하면 5, 6세 되던 그 무렵에 할머니를 따라 절에 가면 한쪽에 얌전히 앉아있으라고 하고는 할머니는 예불드리곤 했다.
자이 스님은 1943년 생으로 속성이 양(楊)씨이고 타이쫑 오일향(烏日鄕)에서 태어났다. 증조부, 조부 그리고 부친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모두 문사(文士) 집안이어서 딸이라고 해서 소홀히 하지 않았다. 덕분에 스님도 그 시절에는 드물게 타이쫑에서 여고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이 스님은 뛰어난 성적과 용모 등으로 공로국(公路局 도로공사)에 선발되어 요즘의 스튜어디스에 해당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한창의 나이에 남부러울 것 없이 청춘을 구가하던 자이 스님은 우연히 접하게 된 책 한 권에 의해 운명이 바뀌게 된다.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던 자이 스님에게 한 친구가 <석가모니불전>이라는 책을 빌려주었다. 너무 재미있게 읽은 자이 스님은 저자인 성운 대사가 옛날 사람인 줄 알고 있었는데, 어느날 친구에게서 그 성운 대사가 타이쫑 신제당(愼齊堂)이라는 곳에 와서 <관세음보살보문품>을 강의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이 스님은 몇 명의 친구들과 그곳에 갔는데 법문을 듣기 위해서라기 보다 저자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서였다.
그러나 성운 대사를 처음 본 순간 자상하고 장엄한 모습에 감동된 데다 대사가 직접 <십대제자전>과 <옥림국사(玉琳國師)> 등의 책이 있으니 더 읽어보라고 일러주었고, 그 후에 순간(旬刊)잡지인 <각세(覺世)>도 보내주었다. 이러한 일이 계기가 되어 혼자서 열심히 불교공부를 했으나 알 듯 모를 듯 지적 욕구만 더 강렬하게 일어났다.
그러던 차에 <각세>에서 홍콩 동련대학(東蓮大學)이 불교를 공부할 학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즉시 서신으로 신청서를 냈다. 입학 허가서는 곧바로 보내져 왔고 자이 스님은 마음이 들떠 있었으나, 당시에는 출가자에 한해서 출국허가를 내어준다는 규정이 있어 재가자인 자이 스님은 허가를 얻지 못했다. 낙심한 자이 스님이 이를 성운 대사에게 알렸더니 성운 대사는 당신이 지금 수산사(壽山寺)라는 절을 짓고 있으니 공부가 하고 싶으면 수산사불학원에 와서 공부해도 좋다고 했다.
자이 스님에 의하면 그 당시에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무조건 수산사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가족들에게 선포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절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출가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결사 반대를 했고 스님은 할 수 없이 몰래 집을 빠져나와 수산사로 갔다. 집안은 발칵 뒤집어졌고 가족들이 모두 수산사로 찾아가 스님을 잡아오려 했으나, 가족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스님은 뒷문으로 도망해 수산공원 안에 숨어버렸다. 이러한 일이 몇 번이나 계속되었고 급기야는 부친이 경찰을 대동해 잡으러오기까지 했지만, 진리를 향한 소녀의 불같은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수산사불학원이 온갖 어려움 끝에 마침내 개원했을 때 스님은 더욱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출가를 결심했다. 삭발하는 그 순간 자이 스님은 반야의 지혜로 들어가는 통행증을 얻은 셈이라 느꼈고, 성운 대사를 은사로 출가한 수산사의 첫 번째 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후 법호를 의명(依明)으로 하고 내호를 심의(心儀)라고 했다. 자이는 귀의법명이다. (계속)
김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