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인 스님
보인 스님은 입이 유난히 큰 것만큼 입담 또한 유별나다. 그는 말을 할 때 거의 쉬는 법이 없다.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 수록 재미가 난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할 때에는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말이 빠르기도 하지만 말을 하다가 워낙 웃기를 잘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좋아지면 다 좋아 보인다고 보인 스님이 내게는 꼭 그런 사람이다. 그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험담을 해도 그것이 내게는 험담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로 들리는 것은 아마도 내가 스님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스님들은 보인 스님에게 한번 걸리면 그의 ‘왕이빨’에 끝장난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나는 그의 ‘왕이빨’ 에 걸려도 무사할 것만 같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내가 있는 절에 찾아왔다. 공양 때가 되어 공양을 하는데 그는 생식(生食)을 한다며 야채를 좀 잘게 썰어 달라고 했다. 그의 식사는 참으로 간단했다. 그가 늘 가지고 다니는 쌀가루와 우리 후원에서 내놓은 야채 썬 것이 전부였다. 예전에 골고루 잘 먹던 그가 아니었다. 그렇게 식생활이 달라진 것이 궁금했다.
“왜 식생활 습관을 바꾸었어요? 전에는 익힌 것도 잘 드시더니 왜 오늘은 영 안 드세요? 말수도 아주 적어지고…. 그 연유가 뭐예요?”
보인 스님은 씨익 웃으며,
“나 임파선 암이래요.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약을 쓰느니 생채식을 하자고 마음먹었지요. 꽤 여러 달 됐는데 건강이 많이 좋아진 걸 느껴요. 암이라고 뭐 별거 있나요. 이렇게 생활습관을 바꾸면 암도 저절로 낫는 것 아니겠어요. 요즘은 그래서 즐거워요.” 스님의 말을 듣고, 임파선 암에 걸려 말도 못하는 스님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나 말 못하는 보인 스님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죽을 때까지 만나야 하는데 말 못하는 보인스님과의 만남은 얼마나 싱거울까 생각하니 끔찍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건강관리 잘 하라는 내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어디 암자로 간다고 길을 떠났다. 그 후 나는 풍문으로 그의 근황을 접하며 그가 건강하기만을 빌었다. 몇 달이 지나 스님이 다시 우리 절을 찾았다. 그런데 이번의 그의 모습은 전의 모습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아주 활기 차고 기쁨에 들떠 있었다. 나는 아마도 생채식으로 건강을 많이 회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기뻤다.
“어, 오늘은 정말 좋아 보이는 데요. 분명히 생채식으로 건강이 많이 좋아진 거지요.”
스님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생채식으로 좋아진 거라면 나도 좋게. 그게 아니야. 얼마 전에 다른 병원에 가 다시 검사를 해보았는데 임파선 암이 아니래. 그래서 다른 병원에 가서 또 검사를 해 보았지. 그 병원에서도 역시 암이 아니래잖아.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 나도 반신반의하며 처음 진료를 받았던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에 다시 갔지. 가서 다른 병원의 검사결과를 이야기했지. 그랬더니 그 병원에서 다시 촬영을 해보자는 거야. 그래서 찍고 판독해 보니까 역시 임파선 암이 아니라는 거야. 전에는 임파선 암이었는데 지금은 임파선 암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글쎄 그때는 판독을 잘못 했다는 거야.”
그 이야기를 듣고 그래 그냥 왔냐고 물었다. 지난 육개월간 마음 고생한 것에 대해서 무슨 보상이라도 받았어야지 하며 내가 더 열이 나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나도 그러고 싶었지. 정말 지난 육 개월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그래야 하는 것이 맞겠지만 암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의사 선생님이 너무나 고맙게 보이는 거야. 고생은 이미 지나간 시간의 것이고 암이 아니라는 이 기쁨은 내게 다가온 선물과 같은 것이잖아. 의사 선생님이 그 순간 산타 할아버지 같더라니까.”
보인 스님은 정말 부처님 같은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암에서 해방된 그의 심정을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오진한 병원에 대해서 그토록 관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스님은 어쩌면 그의 거침없는 입담만큼 넒은 마음의 소유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냥 있는 사실을 실감나게 전한 것뿐인데 속좁은 우리가 씹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입담의 재미가 그의 넓은 마음에 있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스님은 이제 다시 살아났다. 스님은 아마 무지하게 오래 살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입담도 다시 불을 뿜을 것이다. 만나면 즐거운 그 입담을 다시 듣게될 해제의 그 날을 기다린다.
■월간 <해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