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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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입법계품 <51>
보덕정광 주야신의 법문

바산바연저 주야신은 염부제 마가다국의 보리도량에 있는 보덕정광(普德淨光)이라고 하는 주야신(主夜神)을 선재동자에게 소개하면서 자기는 본래 그에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고, 그가 항상 묘한 법으로 자기를 깨우쳐 주었다고 말하였다. 선재동자가 보덕정광 주야신을 찾아가서 보살의 경지를 출생하고 성취하는 법을 묻자, 주야신이 대답하였다.
“좋다, 좋다. 선남자여, 그대는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고 이제 또 보살의 지위를 수행하고 성취함을 묻는구나.
선남자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능히 보살의 행을 원만히 할 수 있다. 보살행을 원만하게 하는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하나는 청정한 삼매를 얻어 모든 부처님을 항상 봄이요, 둘은 청정한 눈을 얻어 모든 부처님의 잘생긴 모습으로 장엄함을 관찰함이요, 셋은 모든 여래의 한량없고 그지없는 공덕의 큰 바다를 앎이요, 넷은 법계와 평등한 한량없는 부처님의 법의 광명바다를 앎이요, 다섯은 모든 여래의 털구멍마다 중생의 수효와 같은 큰 광명바다를 놓아 한량없는 중생을 이익케 함이다.
여섯은 모든 여래의 털구멍마다 모든 보배빛 광명불꽃 내는 것을 봄이요, 일곱은 생각마다 모든 부처님의 변화하는 바다를 나타내어 법계에 가득하고 모든 부처의 경계에 끝까지 이르러 중생을 조복시킴이요, 여덟은 부처님의 음성을 얻어 모든 중생의 말에 상당하는 세상 온갖 부처님의 법륜을 굴림이요, 아홉은 모든 부처님의 그지없는 이름바다를 앎이요, 열은 모든 부처님께서 중생을 조복시키는 부사의하고 자재한 힘을 앎이다. 선남자여,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보살의 모든 행을 원만케 할 수 있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니 이름이 ‘고요한 선정의 낙으로 두루 다님(寂靜禪定樂普遊步)’이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두루 보고 그 부처님들의 청정한 국토와 도량에 모인 대중을 보며, 신통과 이름과 법을 말함과 수명과 말씀과 모습이 각각 같지 아니함을 모두 보면서도 집착함이 없다.
선남자여, 내가 이렇게 모든 여래를 아는 때에 보살의 고요한 선정의 낙으로 두루 다니는 해탈문도 분명하게 알아 성취하고 자라게 하였다. 또한 생각하고 관찰하여 견고하게 장엄하며, 모든 허망한 생각과 분별을 일으키지 않고 크게 가엾이 여김으로 모든 중생을 구호하며, 한결같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초선(初禪)을 닦았다. 뜻으로 짓는 모든 업을 쉬고 모든 중생을 거두어 주며 지혜의 힘이 용맹하고 기쁜 마음이 매우 즐거워 제2선(第二禪)을 닦았다. 모든 중생의 성품을 생각하며 생사를 여의어 제3선(第三禪)을 닦았으며, 모든 중생의 온갖 고통과 번뇌를 모두 멸하여 제4선(第四禪)을 닦았다. 그래서 모든 지혜와 서원을 증장케 하고 원만케 하며, 모든 삼매바다를 내고, 보살들의 해탈바다의 문에 들어가며, 모든 신통에 유희하고 모든 변화를 성취하여 청정한 지혜로 법계에 두루 들어갈 수 있었다.”
먼저 주야신이 설하고 있는 보살의 경지를 출생하고 성취시키는 열 가지의 법을 보면, 주야신이 이 법문을 통해서 널리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그 국토와 도량의 온갖 회상을 보고 아울러 일체중생을 구원하고 수호함을 설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부처님의 덕(德)과 행(行) 등 부처님의 경계를 여러가지로 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선재동자가 보살의 경지를 출생하고 성취시키는 법을 물었는데, 대답으로서 부처님의 경계를 여러 가지로 설하고 있는 것은 보살행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부처님의 경계를 배우고 본받아서 그것을 성취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경문에서 “이 열가지 법을 성취하면 보살의 모든 행을 원만하게 할 수 있다”고 설하고 있는 데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보덕정광 주야신이 설하고 있는 ‘보살의 적멸하고 고요한 선정의 즐거움으로 널리 노닐면서 걷는 해탈문’의 법문은 이처럼 보살이 부처님의 경계를 보고 알게 됨으로써 어떠한 오염이나 동요됨도 없이 항상 고요한 즐거움 속에서 두루 널리 보살의 진실한 삶을 열어가는 법을 설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덕정광 주야신은 항상 생사의 세속 세계에 처하고 있으면서도 대자비를 행하여 법계에 두루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해탈문의 경계가 초선(初禪)에서부터 제4선(第四禪)에 이르기까지의 선정(禪定)의 경지로써 설해지고 있다.
주야신의 이름이 보덕정광인 것은 지혜와 자비가 두루하면서 중생의 어두운 긴 밤을 비추기 때문인데, 특히 보덕(普德)이라 하는 것은 그 자비가 세속을 두루 널리 양육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보덕이라고 하는 것은 고요하면서도 깨끗한 적정(寂靜)의 지혜에서 스스로 작용해 나오는 한없는 보살의 활동을 상징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200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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