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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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의 직업윤리
독약·무기 등 생명살상 관련 직업 금지

원래 인도는 계급사회였기 때문에 사회적 신분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었다.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었던 것이다. 바라문교의 교리에 의하면 “성자는 베다를 학습하고, 임금은 토지를 영유하며, 서민들은 농경에 종사하고, 노예들은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직분”이었다. 때문에 신분에 걸맞지 않은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불문율 이었다. 천부적으로 직업의 선택권을 부여받았기에 태어나는 것 역시 신분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했다. 즉 바라문은 범천의 입으로 태어나는 것이며, 왕족이나 무사계급은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났다. 일반인은 우리들이 태어나듯이 태어났으며, 노예들은 엄지발톱 사이로 태어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신분제도를 인정하지 않았다. 태어나면서 인간의 신분이 구분된다는 것은 부당한 것이며, 어떠한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불평등하게 보이는 것은 각각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업에 의해 정해질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운명이나 삶의 형식은 각자가 만든 것이라 강조했다. 부처님의 사상이 이러했던 만큼 직업의 귀천을 구분하는 것 역시 허용되지 않았다. 출신성분에 관계없이 현명하고 지능이 있으면 베다를 학습하고 주문을 암송하더라도 관계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회적 기능이라는 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즉 사회의 안녕과 유기적 관계를 위해서도 직업의 귀천이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일을 하던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할 뿐이었다. 동시에 인간존재 내지 생명체는 너나없이 존귀할 뿐이라는 평등의식이 깔려있다. 현재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가치의 문제에 비중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직업을 구분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일이 사회에 필요한 일인가, 악영향은 미치지 않는가 하는 점에 문제의 초점이 있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행하는 것이 소중하다고 본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빈둥거리거나 직업의 우열을 가리는 행동은 온당한 불교도의 자세가 될 수 없었다. 사회적 역할이라는 점에서 각자가 맡은 일은 그 자체로 소중한 일이기 때문에 우열을 구분하는 일은 가당치 않은 일이라 보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렇다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인간들은 직업의 우열을 구분하고 있었다. 선호하는 직업이 있었으며, 멸시하는 직업이 있었다. 그러나 호오를 떠나 가급적 하지 말기를 권장하는 직업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금지했던 직업은 무기, 생명체, 술, 고기, 독약 등을 판매하는 일이었다. 물론 이들 중에서 술은 인간을 게으르게 하고 지혜의 종자를 말리므로 금지했다. 기타는 모두 생명체를 해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유기적인 인간세계 속에서 독약, 무기, 고기 등은 생명을 해치는 일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불교도들은 재판관이란 직업도 바람직한 직업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형집행인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대승불교의 등장은 이상과 같은 보수적인 직업관에 일대 전환을 야기시켰다.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내가 하겠다는 생각의 발로였다. 중국의 공자님도 <논어>에서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 대승불교의 직업윤리와 상통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대승불교도의 임무는 그 직업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사회적 안정과 중생의 행복이라는 점에서 방지와 제한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술이란 것이 사회의 필요악이라면 내가 그런 장사를 할 때는 도에 넘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과 그에 따른 실천이 병행되면 가능하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때문에 <화엄경> 입법계품에는 직업의 귀천을 구분하기 보다는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을 선지식이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유마경>에서는 번뇌가 바로 깨달음이며, 열반이라 말하면서 현실세계를 도외시한 별도의 불국정토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보적경>에서는 여성들이 보살도를 실천하기에 더 적합하므로 자원하여 여성의 몸을 받아 태어난다고 가르친다. 사회를 발전시키는 일, 사회의 안녕과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라면 규범을 초탈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며든 것이다. <본지 상임논설위원·불교학 박사>
※‘불교공부’ 코너는 금주에 마감됩니다. 그간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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