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만상 서로 의지하면서 존재
우리는 살아가기 위하여 열심히 먹고 마신다. 만일 아무것도 섭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소멸될 것이다. 이 당연한 말을 과학적으로 말한다면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모든 반응은 진행된다는 열역학 법칙으로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뜨거운 물그릇을 차가운 방에 두면 점차 물의 열이 찬 방속으로 퍼져서 물은 식는다. 찬 방속의 대기가 더욱 차가워지면서 물이 더 뜨거워지는 그런 반대 현상은 안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확률적인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뜨겁고 찬 것이 있다는 것은 질서가 잡힌 상태이다. 한편 서로 똑 같은 온도로 되었다는 것은 그러한 질서가 없어진 것이고 상대적으로 무질서의 상태인 것이다. 여러 가능한 조건으로부터 특정 조건으로 질서가 잡히는 것은 확률적으로 매우 낮은 것이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로또의 여러 숫자 중에서 (무질서) 내가 어느 특정 숫자를 꺼내어 (질서) 당첨되는 것이 어려운 것과 같다.
이처럼 몇 개의 한정된 숫자에서 선택하여 질서를 만들어 당첨되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자연의 무수히 많은 가능성 속에서 찬 방 속의 물그릇이 저절로 뜨거워진다는 특정 질서가 생기기란 확률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자연은 무질서를 향해 가는 것이다.
한편, 호박(琥珀)속에서 3천5백만년 동안 들어있던 고대 벌의 장으로부터 분리한 세균이 다시 분열하였다는 보고가 있다. 3천5백만년 동안 그 세균은 물질로만 존재하였을 터인데 다시 살아 움직이다니. 또, 지금 막 숨을 거둔 사람을 보자. 숨 거두기 직전과 직후의 몸의 구성은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생과 사라는 커다란 차이는 분명 있지 않은가.
그러면 생명체는 어떻게 생겨나며 유지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마치 성냥개비가 성냥곽에 부딪히면 환한 불이 생기는 것과 같다. 환한 불을 만들기 위해 특별히 다른 것이 필요 없다. 오직 성냥개비의 유황과 그것에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 두가지만 있으면 그들과는 전혀 다른 모양의 불이 생긴다. 결국 불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나타나는 것은 유황과 그것에 대응하여 마찰을 일으킬 물질 두 가지만 있으면 가능하지만 단지 서로 상호 작용을 하게 될 때 가능한 것이다.
상호작용, 바로 모든 존재가 상의상존(相依相存) 하여 있음을 설파한 것이 부처님 아닌가. 삼라만상의 모든 모습은 이렇듯 오직 연기적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것이고,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고정되지 못하고 항상 변해가는 것으로서의 생명 현상이야말로 전형적인 그러한 모습이다.
또한 생명체의 탄생으로 무질서도가 증가했음을 유의해야 한다. 두개가 있을 때 보다 세 개가 있을 때 무질서도는 증가한 것이다. 자연은 확률적으로 무질서로 갈 수밖에 없기에 이렇듯 본래적으로 다양한 모양의 존재를 만들어 가도록 운명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화엄의 세계인 것이다.
수의과대학 면역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