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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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용(慈容) 스님 (上)
세간과 함께 하는 ‘인간불교’실천

대만 타이페이의 국부기념관(國父紀念館)에서는 매년 수많은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불광산 성운 대사의 불학강좌가 열린다. 1965년도부터 시작된 이 불학강좌는 1967년부터 중국의 국부인 손문 선생을 기념해서 세운 국부기념관에서 매년 대규모로 개최되었다.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황색과 흑색의 가사를 수한 스님들이 무대의 양쪽을 채운 가운데, 장대한 의식에 따라 향과 꽃이 불전에 바쳐지고 나면 성운 대사가 등장해 대중을 향한 법문을 시작한다.
이 불학강좌에 참석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 강연장의 분위기에 압도되면서 성운 대사의 강연에 감동된다. 이 불학강좌는 불광산의 역량을 한 눈에 평가할 수 있는 법회로서,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이 거대한 행사를 누가 기획하고 진행하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갖기 마련이다.
이 불학강좌를 비롯해 막후에서 보이지 않게 불광산의 위용을 드러내는 주인공이 바로 자용 스님이다. 1936년 대만 이란(宜蘭)에서 태어난 자용 스님은 현재 국제불광회세계총회비서장과 불광산 신도대학 학장이며 <인간 위성TV>의 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자용 스님을 만나는 이들은 대형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능숙함에 놀라기도 하지만, 환갑을 넘긴 세수에도 깨끗하고 수려한 용모를 지닌 채 친절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는 데 감복하게 된다.
자용 스님은 성운 대사의 유명한 제자들인 자장(慈莊), 자혜(慈慧), 자가(慈嘉), 심평(心平) 스님 등과 같은 고향 출신으로서 속성은 오(吳) 씨이다. 어려서부터 개성이 강하고 주관이 뚜렷했으며 품행이 방정하고 학업이 뛰어났다. 또한 초등학교 시절부터 온갖 행사를 주도했으며 학교를 대표해 무용, 체육, 웅변 등의 전국대회 등에 참가하기도 했다. 부모가 18세 때 이란의 뇌음사(雷音寺)에 데려간 것이 인연이 되어 불교청년회의 합창단과 독서회 등에 가입하게 되었고, 다음 해에 성운 대사를 따라 대장경 영인(大藏經影印) 홍보를 위해 전국일주를 했다.
원래는 동문 사형인 자장, 자혜, 자가 스님들 보다 먼저 출가하려 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늦어졌다. 특히 자장 스님과는 같은 날 출가하기로 약속까지 했으나 가족을 설득하느라 5년이 지난 뒤에야 출가하게 되었다. 주관이 뚜렷하고 영민했던 자용 스님은 그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난 어려서부터 운명에 순응하는 여자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스스로 선택하는 인생을 살고 싶었죠. 고등교육을 받고 이상을 크게 품은 여자라도 일단 결혼하게 되면 교육도 소용없고 꿈도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럴 바에는 출가하여 걸림 없이 살면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굳힌 자용 스님은 내색을 하지 않고 불교를 공부하면서 한편으로는 뇌음사유치원에서 일을 하며 서서히 가족들의 양해를 구했다. 그러다가 인연이 무르익어 1969년, 드디어 불광산에서 득도함으로써 오랫동안의 소원을 이루었다.
불광사가 창건된 지 몇 년 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성운 대사는 자용 스님을 일본의 교토불교대학에 유학시켜 사회복지를 전공하게 했으며 주로 청소년문제에 대해 연구하도록 했다.
‘불법은 세간을 떠나지 않는다’는 인간불교의 이념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계속)
김재경 기자
200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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