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정원광대 정치행정언론학부 교수
말로써 말이 많다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이다. 내가 뽑은 대통령의 말이 가십거리가 되는 현실에 목이 메인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대의제 아래서의 민주정치는 말로 시작하여 말로 끝나는 정치라고 할 만큼 말은 정치행위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며 동시에 정책결정의 자원이고 결단의 상징이다. 따라서 말이란 그 자체로서 정치적 생명력을 갖는다. 다만 정치과정에 투입되는 모든 말은 국민의 말과 동일시되고 국민을 위한 것으로 구현될 때 일정한 생명력, 즉 정당성이 주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마당에서는 안 될 말이 될 말을 구축하는 현상이 지배적이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정치인 가운데는 우리의 정부 제도를 의원내각제로 착각하고 있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복잡한 정치 구조와 문화의 틀 안에서 대통령에게 주어진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못해먹겠다”는 말이 나올 만큼 힘들다는데 공감한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인식해야 될 사실은 우리의 제도는 단임의 대통령중심제라는 점이다. 대통령에게는 실험기간이 없으며 시행착오가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원래 말에 대한 책임은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일정비율로 나누어 지는 것이 옳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말을 놓고 듣는 이의 책임으로 돌려야 하는 데는 의문이 간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책임의 중심은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은 권력 동기에 사로잡힌 의회정치와 개혁동기에 미숙한 대통령 정치 간의 충돌현상으로 보인다. 이 같은 혼란기라는 점을 감안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본의에 관계없이 많은 국민을 당혹케 할 때가 많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째, 대통령의 말에는 부정적이고 도발적 표현이 적지 않다. 어떤 경우에도 국민을 불안케 하는 언사는 삼가야 마땅하다. 지도자의 말에는 비전이 살아있고, 호소력이 있어 감동을 주어야 한다. 대통령은 제도이지 개인이 아니다. 국민의 합의를 무시하고 스스로 물러날 수는 없는 것이다. 대통령의 언행은 국가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다. 일단 발설된 말은 사회내의 각 부분들이 분석하고 대응하기 마련이므로 결정적인 사회 정책적 환경요인을 구성하게 된다.
둘째, 대통령의 말은 온라인상에서의 치밀한 정제과정을 거쳐서 나와야하며 오프라인에서 급히 챙긴 것 같은 인상을 주어서도 안 될 일이라 생각된다.
셋째, 국정의 홍보는 사안별, 분야별로 직제와 직급에 맞추어 적절히 대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답답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통령의 말이 다다익선일 수만은 없을 것이며 반드시 필요한 경우 외에는 절제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해명성 발언의 동기는 가급적 피해야 한다. 대통령의 말은 해명되기 위해서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 말의 참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떠나서 우선 국민들에 의하여 납득되고 공감될 수 있는 공간 안에 머물러야 한다고 믿는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말이 갖춰야 할 조건 가운데 신뢰성이 우선이다.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안정제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가능성이며 희망이어야 한다. 그 다음 권위성이 답보되어야 한다. 중심이 확고하여 흔들리지 않을 때 설득력이 생기지 않겠는가. 또한 책임성을 갖추어야 한다. 행위인과의 일관성이 지켜질 때 비로소 말의 책임은 인정되는 것이다. 신뢰와 권위는 결국 책임으로 평가되는 것이므로 정치지도자는 무릇 말하기를 무서워하고 듣기를 즐겨해야하는 공리가 성립된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은 역사를 만드는 권능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직분이다. 지금 대다수 국민은 대통령이 하루 속히 정치력을 발휘하여 이 위기를 개혁의 기회로 돌리어 부패와 낭비가 만연된 이 모순된 정치 사회구조를 혁파해주기를 염원하고 있음을 확실히 인식해 주기를 바란다. 검찰과 특검수사를 앞두고 이른바 ‘대선자금 1/10설’로 차별화를 주장하는 말은 대통령의 덕목에 부합되기 어려운 부분이다. 본인이 직접 “지금처럼 흔들리는 대통령이 오래가서는 안 된다.”고 말할 때 듣는 이에 따라서는 “나는 지금 흔들리고 있으니 오래 못 간다.”로 곡해할 사람도 생길 수 있다.
어느 때보다도 정통성이 확보된 대통령으로서 휘둘리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대통령으로 평가 받게 되기를 기원한다. 민족적 지도자의 어록이 후대를 위한 고귀한 교본이 된 예가 많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