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불교미술을 찾아서
불교미술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구성, 비례, 색채 등 피상적인 차원에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리와 역사와 인간의 삼각구도 속에서 조명된 총체적인 조형세계여야 한다. 불교미술은 불경에 근거하여 그 의미를 파악하고, 역사적인 사실로서 그 위상을 해석하며, 그 속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파헤쳐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불교미술의 연구는 교리와 역사적 해석에 치우쳐 왔고, 인간적인 측면은 거의 도외시되어 왔다. 종교미술이라 하여 지나치게 거창한 면만을 주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 역시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이 칼럼을 연재하면서 늘 부각시키고 싶었던 부분이 불교미술의 인간적인 측면이었다. 예를 들어 황룡사 9층목탑을 설명하면서 아비지가 조국인 백제와 신라의 관계 속에서 고뇌하는 흔적을 살피고, 7세기 불상에서 여러 가지 인간상을 드러내며, 화엄사의 역사를 보면서 불교적인 교리보다는 효와 충으로 해석한 것들이 그러한 고민의 흔적이다.
불교미술은 왜 그렇게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은 분명히 경전에 근거하고 있지만, 어느 불상도 똑같은 것이 없고 어느 불화도 일치되는 것이 없다. 그것은 교리와 더불어 역사와 개인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교리는 불상이나 불화에서 똑같이 표현되는 도상에 대한 설명에 유용하다. 역사는 그 시대에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양식에 대한 해석에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보다도 더 다양하게 펼쳐지는 양상은 결국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설명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엄한 교리와 도도한 역사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그 속에 담긴 인간적인 면모를 파헤쳐 보는 것이 이 칼럼의 목적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심성을 그대로 닮았다. 어렸을 적에 절에 가면 편안한 마음은 아니었다. 우선 여러 상들이 무서웠고 단청조차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1985년 호암 미술관에서 중국, 티베트의 불교미술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불교미술을 함께 비교하는 전시회인 만다라대전을 간 적이 있다. 여기서 필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무섭게만 생각되어 왔던 불상이 중국이나 티베트의 불상과 비교하여 보니 그렇게 푸근하고 따뜻하게 보일 수 없었다. 중국이나 일본인에 비하여 부드럽고 인간적인 우리의 심성이 불상에도 그대로 녹아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점차 확신으로 변해갔다. 예전에 정치학자이며 한국회화사를 연구한 이동주 선생이 우리나라 회화는 중국이나 일본 회화에 비하여 ‘싱겁다’라는 표현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성과 취향을 떠올려 보면,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특징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필자가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美’를 연재하면서 늘 인간의 삶에 시선이 머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경주대 문화재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