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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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스님의 스님이야기
오성 스님(1)

오성 스님은 바다 곁에 산다. 스님의 절에 가 있으면 어디서나 바다를 볼 수 있고 바다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의 방에서 문을 열면 바다의 내음과 바다의 모습, 소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 절의 해우소에서도 바다는 작은 창을 넘어 아름답게 들어온다. 방에서도 해우소에서도 바다가 보이는 스님의 절은 바다가 절이 되고 절이 바다가 되는 아름다움이 있다.
바다 곁에 오래 산 오성 스님에게서도 나는 바다의 소리와 내음을 맡는다. 그에게서는 아주 깊은 곳에서 나오는 울림이 있다. 그것은 슬픔일 수도 있고 때로는 외로움일 수도 있다. 그 울림은 물결이 들고 나는 것처럼 마음을 밟고 와 긴 여운을 남기며 사라져 간다.
그러나 바다가 지혜로운 것처럼 스님 역시 지혜롭게 시간의 빛 가까이 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의 그 깊은 울림 그리고 가끔씩 쓸쓸해 보이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모든 일에 있어서 정말 진지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내가 해인사에 처음 방부를 들이러 갔을 때 오성 스님을 처음 만났다. 스님은 그 때 내가 방부를 들이려고 하는 치문반의 반장 소임을 살고 있었다.
한 학기가 끝나고 또 한 학기가 시작된 가을 어느 날, 방부를 들이기 위해서 그의 앞에 서 있는 내게 스님은 대단히 위대해 보였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그냥 어리벙벙해 있는 내게 스님은 자상하게 방부에 관한 모든 절차와 방법을 하나하나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내게 기다리라고 하며 말했다.
“스님이 해인사 강원에 살고 못살고는 오늘 우리 반 스님들이 대중공사를 해보아야만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반 스님들이 찬성을 하면 해인사에서 살 수 있는 것이고 반대한다면 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스님이 우리 반에서 사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나는 문득 겁이 났다. 방부는 무조건 되는 것으로 알고 온 내게 반장인 오성 스님의 그 얘기는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방부가 안되면 당장 어디로 갈 것이며, 그토록 위세 좋게 은사스님의 절에 더 있으라는 부탁도 뿌리치고 온 순간들이 갑자기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초조하게 밤이 오기까지 대중공사의 결과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 초조한 기다림 속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반장 스님의 얘기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밤 늦게서야 그는 방부 합격 소식을 가지고 왔다. 방부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그 한마디에 은사스님에 대한 생각과 거처에 대한 걱정을 모두 날려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알게 됐는데, 방부 결과는 다음 날 아침에 알려 주는 것이 통례였지만 오성 스님은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미리 알려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나의 방부를 통과시키기 위해 그의 말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스님과 만났다. 만약 스님의 친절함이 없었더라면 나는 해인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그저 밋밋하게 중노릇의 초년시절을 보냈을런지도 모른다. 스님과 함께 공부를 하면서 그의 사람에 대한 애정과 진지함이 얼마나 큰 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때의 그 친절 역시 그런 삶의 자세에서 나온 자연스럽게 결과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러나 스님은 그 후 일년 정도를 함께 공부했을 뿐이다. 사집반이 되고 어느 날 은사 스님이 부른다면서 제주도 절로 떠나고야 말았다.
나는 방학을 하면 도반들과 함께 스님이 계신 절을 찾아가곤 했다. 스님은 우리에게 제주의 명소만을 안내해 준 것만은 아니다. 제주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에 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마치 향토 사학자가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해 주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그는 제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과 이해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닷가에 홀로 앉아 있거나 바다를 거닐 때 얼핏얼핏 보이던 잡히지 않는 그의 외로움이었다. 출가한 수행자 치고 외로움의 기억 하나 없는 이 없지만은, 스님곁에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던 그 외로움의 모습은 유독 짙고 크게만 다가와 내 가슴 한 편을 쓸쓸하게 물들여 나갔다. 외로움을 안고 있으나 외로움을 말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 그런 모습의 사람 속내는 얼마나 깊을까.
문득 스님의 깊은 세월의 얘기를 들을 날이 언제인지를 헤아려 보곤 했다.
■월간 <해인> 편집위원
200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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