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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맞고 있는 역사
강문호/동국대 국사학과 교수

최근 중국에서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프로젝트로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고구려는 중국 변방의 소수민족 정권이며, 중원정부를 대신해 동북 지역을 통치했던 할거정권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1980년대부터 중국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동북공정’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평양천도 이후의 고구려사도 중국사라 주장하고 있다. 당연한 우리의 역사라 생각했던 고구려사가 중국의 역사로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경악케 한다.
중국측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한국고대사학회 등 관련 학회들은 12월 9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고구려사 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채택했다. 나아가 정부의 유관 부처에 적절한 조처를 취할 것을 주문하는 동시에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한중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구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분명한 사실은 고구려는 중원 왕조들과는 대립적 위치에 있던 독립왕조였다는 점이다. 중국과는 종족·언어·습속·전통을 달리하는 나라였으며, 중국의 책봉을 받은 적도 없었다. 고구려가 중원왕조와 종속관계였음을 주장하기 위해 중국측이 강조하는 ‘조공(朝貢)’ 또한 중국과 주변국가가 공존하는 외교수단에 불과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고구려사를 확실한 우리 역사로 자리매김시키는 것은 우리의 시대적 소명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감정적으로 다룰 사안은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중국인들의 대외인식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이 그들의 대외인식을 극명히 보여주는 황제(皇帝)제도이다. 중국의 군주인 황제는 중국 민중의 군주인 동시에 천하(天下)의 군주라는 개념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중국인들의 민족의식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를 때 ‘민족’이란 같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생활함으로써 언어나 풍습 등의 문화내용을 함께 하는 인간 집단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민족 개념은 공통의 조상인 단군의 자손이라는 전제 하에 혈통과 문화적 동질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중국인들은 중국을 구성하는 55개 민족의 역사와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서 이뤄진 역사는 모두 중국사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그들의 주장에 대한 감정적 대응보다는 상호 연구와 이해 증진을 위해 연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병행하여 우리 역사학계에서는 중국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중국측 자료를 구입하고, 체계적으로 정리·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무너지고 있는 역사 교육을 재정립하는 것도 시급하다. 현재, 대부분 대학들은 역사를 교양선택 과목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중등학교에서는 우리의 역사를 사회과목의 일부분으로 교육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사를 강조함이 반세계화적 행동, 편협한 민족주의라는 의식은 버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당면과제는 내년 6월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북한의 고구려 고분벽화가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북한을 돕는 일이다. 이를 위해 남북한 학자들은 북한의 고구려 고분벽화를 공동 답사, 연구하여 그 결과를 세계에 알려야 한다. 고구려사 지키기는 남북이 공동 대응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200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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