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원 스님
나는 월정사에 자주 간다. 전나무 숲길과 유장한 계곡이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는 승원 스님이 있기 때문이다. 키가 훤출하고 인물 또한 배우 뺨치는 그의 외모는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도량에서 쉽게 그를 만날 수 있다. 항상 불사를 감독하느라 방에 있는 시간 보다는 도량에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승원 스님” 하고 부르면 그는 인부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양 입가를 귀에 걸고 아주 멋진 웃음으로 반겨준다. 그의 웃음을 보며 나는 반가운 도반 하나 있는 자리가 얼마나 따뜻한 가를 새삼 느낀다.
승원 스님이 월정사에서 산 지는 10년이 된다. 강산이 한번 변할 시간만큼 오대산에 산 것이다. 스님이 월정사에 산 10년 세월 동안 변한 것은 강산만이 아니다. 월정사 도량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지난 10년 동안 그는 하루도 쉬지 않고 불사를 해왔다. 지금 일신되어 있는 월정사에는 그의 원력과 발원이 선명하게 배어 있다.
승원 스님은 이제 목수 뺨치는 이론과 눈을 갖고 있다. 집을 하나 지으면 그 집에 소요되는 자재와 비용, 그리고 인력까지도 계산할 만큼 일에 밝아졌다. 그래서 웬만한 업자들도 스님 앞에서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야 만다. 어느 날 업자 한 분이 “스님, 이제 건설회사 하나 차려도 되겠어요.”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스님 앞에서는 공사비를 더 부를 수가 없다며 웃으며 건네던 업자의 말 속에서 승원 스님이 10년 동안 어떤 자세로 불사를 해왔는가를 분명하게 알 수가 있었다.
스님은 불사를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자세와 마음으로 해왔다. 도반들과 함께 있다가도 중요한 공사가 있는 날이면 비가 오거나 어둠이 깊은 것을 가리지 않고 서둘러 절에 돌아가곤 했다.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스님을 향해 도반 스님들은 그럴 거 뭐 있느냐며 만류하지만 그때마다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알아요. 제가 없어도 불사는 해나갈 수는 있어요. 하지만 제가 가서 눈으로 보고 그 자리에 서서 제 마음을 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 있을 때는 목수도 인부도 일하는 자세가 달라져요. 그것은 제가 소리를 지르고 고압적인 자세로 그들에게 지시하기 때문은 아닐 거예요. 불사를 정말 지극 정성으로 하고자 하는 내 마음이 그들의 마음에 가 닿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좀 우습게 말하자면 제가 불사 현장에 없는 것은 공양주 보살이 마지 올리고 마는 것 하고 똑같아요. 마지는 올리고 염불은 없는 사시기도란 너무 썰렁하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가는 거예요.”
그런 말을 남기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월정사를 향해 달려가고는 했다. 그가 떠나고 나면 우리는 언제나 그가 지닌 진실한 삶의 자세에 대해 얘기하며 그런 도반이 있다는 사실을 흐뭇해 했다.
그런 그가 불사를 해서 그런지 월정사에 들어서면 누구라도 도량이 참으로 조화롭게 정돈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디 하나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벗어난 곳이 없다. 웅장하지만 단아하고 편리하지만 아늑한 도량의 정취가 그대로 살아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그가 얼마나 건축에 대해서 빼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고 얼마나 도량에 대해서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애정과 진실 없이는 불가능 하다. 애정과 진실 없이는 일의 지속적인 추진 또한 가능할 수 없다, 한 분야의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심지의 곧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승원 스님은 월정사의 상징인 전나무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일을 통해서 본 그의 모습이나 평상시 삶을 통해서 본 그의 모습은 전나무와 무척이나 닮아 있다. 스님의 삶의 향기와 곧음은 그가 먼 전생 어느 시간 월정사를 지키고선 전나무 숲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지니게 한다. 곧아 하늘을 찌를 듯하고 푸르러 쉬이 변하지 않는 전나무처럼 그는 그렇게 월정사를 지키며 살고 있다.
가끔 나는 스님을 바라보면 목이 아프다. 그가 키가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키 보다는 그가 쉬이 타협하지 않는 순수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에 별로 아랑곳 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할 뿐이다. 평가는 자신의 마음으로 한다. 스님 입가의 웃음은 오늘도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오늘도 나는 그 순수한 웃음을 만나러 월정사에 간다. ■월간 <해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