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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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법수사지
세모(歲暮)에 더 운치있는 절터


가야산에 겨울이 찾아들면 철새들은 백운동 자락 법수사지(法水寺址)로 모여든다. 겨울 폐사지는 철새들의 안거(安居) 터이다. 철새들은 폐사지에 모여 탑돌이를 하거나, 농부가 무심히 떨구고 간 낟알들을 쪼며 저들만의 비밀스런 언어로 법담을 나누는 것이다. 석축이나 풀 섶에 숨어 깊고 추운 밤을 품는 수행자들도 있다. 그런 밤 세상에는 흰눈이 내려 적멸보궁을 연출하기도 한다.

경북 성주군 수륜면에 소재한 법수사지는 세모(歲暮)에 찾아가야 제격인 사지이다. 폐사지라고 하여 아무 때나 불쑥 찾아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설악산 진전사지 같은 곳은 세상이 얼어붙었을 때 헛발을 딛으며 찾아가야 제 맛이 나고, 원주 부론 법천사지 같은 곳은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찾아가야 운치가 있다.
또한 강화도 선원사지 같은 곳은 짙은 해무(海霧)로 물봉선화들이 화장을 지우는 10월쯤에 찾아가야 제대로 보이고, 무안 총지사터는 상사화가 만발할 때 찾아가야 폐허의 향기를 온전히 맡을 수 있다. 그런가하면 성주 법수사지는 가야산의 회갈색 암봉들이 두꺼운 산 그림자를 장삼처럼 갈아입을 때, 시장기를 느끼며 찾아가야 그 진면목을 대면할 수 있는 것이다.
가야산은 성주의 진산이다. 경남 합천군, 거창군, 경북 성주군에 걸쳐 경상남북도의 도계를 이루는 가야산은 주봉인 상왕봉(1,450m)과 그 주변에 두리봉, 깃대봉, 단지봉 등 해발 1천m 이상의 산들로 연봉을 이루고 있다. 가야산은 옛부터 조선 8경의 하나로 불리었고, 1972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해인사, 청량사, 법수사지, 심원사지 같은 불교 사적지를 보듬고 있어 이름 그대로 불교의 명산이다.
성산가야(星山伽倻)의 옛 터전인 성주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수박과 참외의 산지이다. 백운동 골짜기를 흘러내린 맑은 물로 옛날에는 성산가야의 진품인 토기를 빚었고, 오늘에 와서는 잘생긴 수박과 참외의 단물이 되어 입맛 까다로운 사람들의 혀끝을 녹이는 것이다.
가야산 순환도로 옆 옛 절터인 법수사지 또한 되새김질할수록 단맛이 나는 폐사지이다. 천년의 시공을 거슬러 영원과 교신을 하는 듯한 삼층석탑(경북 유형문화재 제86호)은 멀리 중기마을 산 너울 아래서 바라보면 송전탑처럼 보일지 몰라도 세모의 땅거미가 짙을 무렵 허기를 안고 찾아가면 그 의젓한 품새에 남 몰래 슬쩍 건당(建幢)이라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신라 애장왕 3년(802) 창건된 법수사는 같은 해 세워진 고개 넘어 해인사와 더불어 가야불교를 활짝 꽃피웠던 거찰이었다. 한 때 전각만도 구금당, 팔종각 등 1천여 간이 넘던 대가람이었으나 지금은 삼층석탑과 주춧돌, 그리고 거대한 석축과 당간지주만이 남아있다. 해인사가 법보 사찰로 국가와 민족의 융숭한 대접을 받는데 비하면 법수사의 운명은 가야산 산 그림자만큼이나 침침하다.
가야산의 동쪽을 뒤덮던 낙락장송이 한껏 일월성신을 어우르다가 인연이 되어 관솔로 남은 것이다. 도은암, 보현암, 백운암 등 그 딸린 암자만도 100여 개가 넘었으나 지금은 솔방울 떨구듯 그 전설만 남아 사래 긴 밭이랑에 밑거름이 된 것이다.
법수사지 삼층석탑은 그 빼어난 조망권으로 하여 폐사지 답사의 또 다른 미학을 맛보게 하지만, 탑 그 자체로도 알맞은 크기와 의연한 자태로 하여 세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법수사지 삼층석탑이 빈 절 터의 주인으로 홀로 남아 천년을 버티는 것은 옛사람들이 그저 돌멩이를 깎고 다듬은 것이 아니라 저토록 탁월한 안목의 택지 선정과 그것에 비례한 신심이 균형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철새들도 그런 연고로 탑 그림자에 빠져 수없이 철이 바뀌어도 탑돌이를 하며, 콩꼬투리, 팥꼬투리를 탁발하는 것이다.
법수사지 답사는 삼층석탑 주변을 맴돌다 끝마쳐도 하나도 섭섭하지 않지만 근처 묵은 밭 뚝에 넘어지고 엎어진 불상 대좌나 배례석을 참배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대충 둘러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석물들이 농작물 경작을 위해 애물단지인냥 취급을 받는 것은 선인들의 수고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고, 역사에 대한 범죄인 듯하기도 하다. 다시 떨리는 발길을 금당 터 아래 경사를 따라 내려놓으면 성벽같은 엄청난 석축이 희부듬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그 이끼 낀 돌들의 장탄식에도 귀 기울이는 끈기가 있어야 한다. 동서로 100m, 남북으로 10m 가량 이어진 이 돌축대는 창건 당시에 쌓아 올린 것으로 보이는데, 틈새마다 관목과 풀들이 엉켜 과거와 현재가 한 덩어리가 된 모습이다. 땅의 굴곡을 따라 5m 높이로 수평을 맞춘 석축은 등 뒤의 가야산 암봉에 단을 맞춘 듯 그 장대함에 폐부까지 시원함을 느낀다.
옛날에는 사하촌이나 부속 전각들로 빼곡했을 석축 아래 중기마을은 주련 대신 집집마다 간판만이 즐비하다. ‘백운산장여관’ ‘가야파크장 모텔’ ‘솔밭장여관’ 형형색색의 상호들이 세월의 경사면인냥 가파르기 만한 백운리 언덕 아래 자본주의의 주련으로 걸려있다. 마을의 끝 지점, 미나리꽝 옆의 당간지주(경북 유형문화재 제87호)는 당산 나무와 어울리다 못해 이제는 본업을 잃고 서낭당이 되어 허리에 금줄을 두르고 있다. 특별한 장식은 없으나 두 지주 사이에 당간을 올려 세웠던 간대가 원추형으로 그대로 남아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있음을 단번에 알아 볼수 있을 것 같다. 동네사람들이 ‘장군젓가락’이라 부르는 당간지주는 요즘엔 제주(祭酒)로 막걸리 공양까지 받는지 배례석엔 술병이 뒹굴고 있다.
법수사지 답사는 이렇듯 절의 안쪽이었을 금당 터 삼층석탑 자리에서 시작하여 절의 입구 쪽인 당간지주 방향으로 걸어 나와 끝을 맺는다. ‘잊혀진 가람 탐험’은 때로 세월의 담을 훌쩍 넘어 안에서부터 거꾸로 시작하는데 그 묘미가 있다. 장대한 석축으로도 막지 못한 세월의 격랑. 그것이 법수(法水)일지, 홍수일지 또 다시 저무는 한해를 가야산 자락에서 배웅한다. <시인, 진각복지재단 사무처장><사진 고영배><다음은 청도 장연사지 편>

법수사지 가는 길
법수사지는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김천 나들목에서 내려 59호 국도인 가야산 순환도로를 따라가다가 백운동 고개에서 내리는 방법이 있고, 88고속도로 해인사 나들목에서 내려 1084번 지방도 해인사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59호 국도와 만나 5,8㎞정도 직진하면 된다.
200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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