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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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원칙
이희재/광주대 철학과 교수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회에 ‘한류’열풍을 이끈 견인차는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였다. 그것은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를 비롯한 서구의 대중문화는 물론 일본의 만화까지도 감히 넘볼 수 없는 한국문화의 강력한 콘텐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인기절정의 드라마 ‘대장금’ 또한 ‘한류’ 연기자들의 열연과 신선한 소재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 드라마는 독특한 타이틀곡은 물론, 아름다운 한국의상과 감칠맛 나는 음식과 요리, 전통주거공간의 문화를 볼거리로 제공하기도 하려니와, 천한 신분에서 궁전의 의녀에 이르는 성공신화를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한국사회는 월드컵 축구 등을 통해 ‘아시아의 자존심’을 드높였을 뿐만 아니라 이웃나라의 노동자들이 ‘코리안 드림’의 꿈을 안고 일자리를 찾아 들어오는 나라인 반면, 내적으로는 쉬임 없이 치열한 경쟁과 승부가 펼쳐지는 역동적인 나라중의 하나일 것이다.
‘대장금’에서 보여주는 ‘조선최고의 수라간 궁녀’의 상징성은 자신들의 영역에서 최고를 갈망하는 한국인들의 꿈과 겹쳐있으며, 가치없는 집안 일로 치부되던 요리 등에도 대대로 내려오는 법통과 격식의 진지함이 있음을 보여준다. 최고궁녀 정 상궁이 한 상궁에게 비전의 책을 전해주면서 ‘포기하지 말라’ ‘원칙을 지키라’하는 등의 가르침을 전하는 한 장면은 마치 선사가 깨달음의 진수를 전해주는 모습처럼 중후함이 전해진다.
최고를 겨루는 궁녀들의 경쟁 속에서 드라마는 선악과 희비가 엇갈리는데, 시청자들은 원리원칙의 정당한 절차를 견지하려는 선의 편과, 권모술수와 비행을 마다하지 않는 악의 편,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두리뭉실하고 어중간한 이들과 더불어 드라마 속에 몰입하며 감정을 공유해 일약 시청률 50%를 넘는 일종의 신드롬을 형성하고 있다. 거기에는 바로 현대 한국인이 고뇌하고 있는 원칙과 권모술수 그리고 선악의 모순과 분열 가운데 허덕이는 삶의 고뇌가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그리고 급속하게 정보화 사회로 변하면서 탈권위주의와 다원주의로 치닫고 있다. 그에 따른 병리현상 또한 심각하며, 상호 모순된 가치관이 충돌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과 예측불허로 인해 혼란 속에 허덕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혼란이란 다름 아닌 전통적인 인정과 의리의 따뜻한 사회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 대해 경쟁하고 승부를 겨루는 차갑고 비정한 음모와 권모술수 등의 야비함이 이 시대 안에 공존하는데서 기인할 것이다.
드라마 ‘대장금’이 보여주는 것은 단지 조선 중종 때 의녀의 성공신화가 아니라, 오히려 여기서는 최고 권력자 왕이 주인공이 아닌 자기분야의 전문가가 주인공이 되는 역전현상을 볼 수 있다.
흔히 조선조 유교사회의 특징을 가부장적 남성위주의 사회라고 규정한다면, ‘대장금’이 보여주는 것은 주어진 신분과 여성의 열악함을 뛰어넘는 인간승리를 그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는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즘이거나 적당히 권력자와 야합한 부정부패가 아닌 정당한 원칙이 승리하는 가치를 제시함으로써 다가오는 한국사회의 미래를 엿보게 하는 일면도 있다.
지금의 현실은 비록 악의 세력이 판을 치고 있고, 그 모순된 현실속에서 우리는 타협하지 않을 수 없을 지라도, 한국인의 변함없는 이상은 진정 아름다운 원칙의 편에 있음을 드라마‘대장금’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200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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