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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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5 )
황룡사 9층탑 신라의 중심

층층 계단은 빙 둘러 허공을 나는 듯
일만 산과 일천 물이 한 눈에 잡히네.
몸은 노오(盧敖) 되어 바깥을 오르내리고
눈은 수해(竪亥) 되어 가운데를 가고 오네.
별 그림자 처마 앞에 비되어 떨어지고
월계수 향기 난간 밑을 바람 되어 나부낀다.
굽어보니 경주의 집들이 참으로 많은데
벌집이나 개미구멍처럼 아득히 보이네.
(<신증동국여지승람> 중에서)

이 시는 고려의 문신 김극기(金克己, 생몰년 미상)가 지은 황룡사9층목탑에 관한 시이다. 김극기는 생몰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명종(재위기간 1170~1197) 때 활약하였다. 황룡사9층목탑은 1235년 몽고가 경주까지 침입한 3차 몽고의 난 때 불타 없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김극기가 이 시를 읊은 때는 황룡사9층목탑이 불타 없어진 시기보다 100년을 넘지 않는다. 김극기가 황룡사9층목탑을 보고 놀란 것은 높이 솟은 탑의 위용으로 시 전반에 그에 대한 감동이 깔려 있다. 그 감동 속에 차분히 살펴본다면 탑 안에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게 계단을 설치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응현의 불궁사목탑, 서안의 대안탑, 낙양의 대화탑 등 중국의 탑들은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김극기는 황룡사9층목탑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 개미구멍 같은 경주의 집들을 본 것이다.
탑은 사찰의 중심이자 도시의 지표이다. 중국의 탑을 찾아가노라면 중소도시인 경우 멀리서부터 도시 한가운데 탑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일 아파트 20여 층 높이에 해당하는 약 80m의 황룡사9층목탑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더라면, 경주를 찾는 이들은 경주 시내 어디에서나 이 탑을 보고 그곳을 향했을 것이다. 이 거대한 목탑의 스케일에 압도당한 뒤 불국사와 석굴암을 찾는다면 그 감동은 더욱 가슴 깊숙이 파고들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황룡사는 중앙을 상징하는 황룡(黃龍)이 의미하듯이 경주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허허벌판이 되어버린 황룡사 터에서 주위를 돌아보면, 동쪽에는 명활산, 남쪽에는 낭산과 남산, 서쪽에는 선도산과 단석산, 북쪽에는 소금강산으로 빙 둘러싸인 분지의 중심에 황룡사가 자리 잡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곳에 황룡사9층목탑이 허공을 나는 듯이 솟아올랐으니, 황룡사9층목탑은 경주의 중심이자 신라의 중심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경주대 문화재학부
200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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