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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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생산윤리
재산 형성 욕망에 적절한 절제 요구

생산의 문제에 대한 불교의 입장은 무엇인가. 생산이 없이는 인간의 생활이 유지될 수 없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초기불경에서는 두 가지의 생산 방식을 역설하고 있다. 정신적인 생산과 물질적인 생산이 그것이다. 정신적인 생산은 주로 출가자들에게 위임된 일이었다. 반면에 물질적인 재화의 창출은 재가자들의 몫이었다. 재가자가 재화를 보시하여 교단의 경제적인 측면을 담당하고 있었다면 출가자는 법답게 수행하여 얻어진 정신적 경작물을 신도들에게 제공하는 상호호혜적인 관계를 설정했던 것이다. 따라서 출가자는 육체노동에 전념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우선 출가자들의 정신적 경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물질적인 생산이 아닌 정신적 생산에 전념해야한다는 점에서 부처님은 출가 제자들에게 재산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가르쳤다. 출가수행자는 감각의 문을 굳게 닫고, 음식의 양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며, 나아가 금은 등 재물의 소유를 철저하게 배제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이러한 가르침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어간 이후 100여년 지나 발생하게 되는 열 가지 비법의 논쟁 이전까지 철저하게 지켜졌다. 현재까지도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있다고 자처하는 남방불교권 즉 테라바다불교에서는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그러나 대승불교권의 전통은 초기불교의 가르침과 달리 물질적 생산과 소유를 인정한다. 이것은 교리의 재해석과 환경의 변화에 따른 필연적 결과이다. 활동공간과 인적교류의 확대는 인도사회를 넘어 주변 국가로 불교가 전파되는 결과를 초래하며, 이에 수반하여 적절한 교리의 재해석, 계율의 개편이 필요했던 것이다.
근본불교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물질적인 생산과 소유를 금지시켰던 부처님의 계율이 존재하는 한 출가자들은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없었다. 즉 상업과 농업, 목축업에 종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만일 본인이나 누구를 시켜서 땅을 파거나 초목을 베는 일은 사타죄에 해당하므로 교단의 처벌을 받아야 했다.
재가신도들에게 부처님은 어떠한 가르침을 남기셨을까. 일반적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이나 일본 등의 불교신도들은 돈이나 재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재물을 천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제법 괜찮은 경지에 올라간 불교도로 착각하고 있는 분들도 많다. 그런 사고의 이면에는 유교적인 계급의식이 전제되어 있다. 위진남북조 이후 중국불교는 상류층을 중심으로 토착화되며, 사농공상의 사회계급 속에서 물질적인 생산 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층민이었던 점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본생경>에 의하면 당시의 인도사람들은 대단한 향락생활을 탐닉하고 있었던것 같다. “황금과 재산이 있는 집은 즐겁다. 여기서 먹고 마시고 편하게 눕게나”라는 구절이 있다. 당시의 시대상황 묘사는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들의 심리를 말하는 것이다.
필자는 불교가 욕망의 절제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본생경>에서는 “돈이 비오듯 쏟아져도 인간들의 욕심을 채울 수는 없다”고 선언하면서 욕망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처럼 적당한 절제를 말하고 싶을 뿐이다. 욕망의 절제가 재물에 대한 경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역설적으로 무의미하게 재산을 낭비하는 것이야말로 천박한 사람들의 행위라 말한다.
재가자에겐 재산의 축적을 인생의 바람직한 목적 중의 하나라고도 말한다. <비나야잡사>에 의하면 “아침이나 낮이나 저녁에도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사람들은 아직 얻지 못한 재산을 얻고, 이미 얻은 재산을 증식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부지런하게 일하는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평범한 진리다. 나아가 재산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무절제한 소비의 방지를 가르친다. 그것이 재산을 지키는 가장 훌륭한 방법의 하나라는 것이다. 사치나 향락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 노름, 여자, 술, 춤과 노래, 낮잠, 인색함 등에 탐닉하는 사람들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게으르지 않고, 방탕하지 않도록 늘 자신을 경계하는 일은 인생사에서 중요한 일이 분명하다. 돈을 모아 부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철저하게 재물을 모우기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금욕적 생활은 자비를 실천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불교도의 소비, 내지 지출 방안 속에는 자비를 실천하기 위한 공동선의 추구라는 의무조항이 들어있다. 바로 이런 점이 자본주의와 불교가 다른 점이다.
<본지 상임논설위원·불교학 박사>
200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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