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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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입법계품 <47>
정취보살의 법문

선재동자가 관자재보살로부터 법문을 듣고 있는 장소에 한 선지식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정취(正趣)보살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한 선지식의 법문이 끝나면 그 선지식의 소개로 다른 선지식을 찾아가는 것이지만, 관자재보살의 다음 선지식인 정취보살은 선재동자가 있는 곳에 스스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정취보살은 동방(東方)에 있던 보살로서 공중으로부터 사바세계에 온다. 정취보살이 몸에서 광명을 놓으니 그 광명이 모든 지옥·축생·아귀·염라왕의 세계를 두루 비추어 모든 나쁜 길의 고통을 소멸시켜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근심 걱정을 여의게 하였다. 또한 모든 부처님 국토에서 여러 가지 장엄거리로 부처님께 공양하고, 또 중생의 좋아함을 따라 모든 궁전에서 몸을 나타내어 보는 이들을 모두 기쁘게 하였다. 그런 뒤에 관자재보살이 있는 데로 오니, 관자재보살이 선재동자에게 가서 보살행을 배우고 보살도를 닦는 법을 물으라고 말하였다.
선재동자가 그 보살이 계신 데 나아가 절하고 가르쳐 주기를 청하자 정취보살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니 이름이 ‘넓은 문으로 빨리 이르는 행(普門速疾行)’이다. 선남자여, 이 일은 알기 어렵다. 모든 세간의 하늘·사람·아수라·사문·바라문들은 알지 못한다. 오직 용맹하게 정진하여 물러나지 않고 겁이 없는 보살들이라야 능히 듣고 능히 지니고 능히 알고 능히 할 수 있다.”
선재동자가 반드시 믿고 받아들일 것을 약속하면서 말해주기를 청하자 정취보살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동방 묘장(妙藏)세계의 보승생(普勝生) 부처님 계신 데로부터 이 세계에 왔으며, 그 부처님 처소에서 이 법문을 얻었고, 거기서 떠난 지는 불가설 불가설 부처 세계의 티끌수 겁을 지냈다.
또한 낱낱 찰나마다 불가설 불가설 세계의 티끌 수 걸음을 걸었고, 낱낱 걸음마다 불가설 불가설 세계의 티끌수 부처의 세계를 지나왔는데, 낱낱 부처님 세계마다 내가 모두 들어가서 그 부처님께 아름다운 공양거리로 공양하였다. 그 공양거리는 모두 위없는 마음으로 이룬 것이며, 지음이 없는 법으로 된 것이다.
나는 또 저 세계의 모든 중생을 보고 그 마음을 다 알며 그 근성을 다 알고, 그들의 욕망과 이해를 따라서 몸을 나타내어 법을 말하였다. 또한 광명을 놓기도 하고 재물을 보시하기도 하여 갖가지 방편으로 교화하고 조복시켜 조금도 쉬지 아니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다만 이 보살의 넓은 문으로 빨리 이르는 행의 해탈을 얻었을 뿐이다.”
정취보살이 설하고 있는 ‘넓은 문으로 빨리 이르는 행’의 법문은 생각 생각마다 항상 부처님 세계에 이르러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법에 관한 것이다. 그가 설하고 있는 경문의 내용을 통해서 본다면 그의 법문은 분명히 ‘보문시현(普門示現)’에 관한 것이다.
그 ‘보문시현’이라고 하는 것이 일념일시(一念一時)에 시방세계에서 행해지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이 법문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취보살은 관자재보살의 덕(德)을 다시 밝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선재동자가 찾아간 대부분의 선지식은 항상 남쪽에 있었지만, 정취보살만은 동방에서 관자재보살이 있는 곳으로 오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도 그러한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취보살은 동방의 보살로서 동방으로부터 온 보살이다. 그러므로 이 보살은 지혜를 증득하여 밝음을 열어주는 보살이다. ‘정취(正趣)’라고 이름하는 것은 지혜가 삿됨이 없이 항상 올바른 데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이 보살은 신비한 힘(神力)으로써 속히 시방의 모든 세계에 이르러 오직 깨달음의 도(佛道)를 행하기만 하는 것이다.
정취보살이 설하고 있는 ‘넓은 문으로 빨리 이르는 행’의 해탈법문이 발생한 곳은 미묘하고 훌륭한 덕을 무량하게 간직하고 있는 묘장(妙藏)세계이며, 그것을 가르쳐 준 부처님은 그 묘장세계로부터 가지가지 모양과 방법으로 훌륭한 덕을 무량하게 출생시키는 보승생(普勝生)부처님이다.
이 법문이 일체중생에게 해당될 수 있는 것은 모든 중생의 근원이 묘장세계이며, 누구나 일념일시에 보승생의 부처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부처님을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공양하면서 중생들의 욕망과 근기에 따라 갖가지 방편으로 교화하여 자비행을 펼치는 것이다.
깨달음의 세계, 부처님의 세계는 이와 같이 해서 누구든지 가지가지 모양과 방법으로 순간 순간 갈 수 있다. 정취보살의 법문에서 언급하고 있는대로 보통의 중생들은 알기 어렵겠지만, 용맹하게 정진하여 퇴전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보살들이라면 누구나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깨달음의 세계는 일체중생이 진실한 생명을 일으켜 자비행을 행함으로써 바로 바로 열리는 세계이다.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200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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