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스님(3)
길은 달빛을 따라 살아난다. 달빛을 받으며 걷는 사람은 언제나 길을 만난다. 그래서 달빛이 비추인 길은 언제나 행복을 의미한다.
수계를 한 천호 스님은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백일기도를 입재했다. 살을 에는 듯한 오대산의 바람, 그리고 무릎을 덮는 오대산의 눈은 언제나 기도를 위해 보궁에 오르는 스님에게는 큰 장애였다. 그중에서도 새벽기도를 나서는 길의 어려움은 가장 큰 장애였을 것이다. 그 길은 언제나 첫 길이었다. 눈이 내려 인적(人跡)을 지운 그 첫 길을 스님은 걸어 새벽기도를 다녔다. 새벽기도를 나서는 천호 스님의 모습을 보며 첫 길을 걷는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했다.
‘눈 길을 걸을 때 함부로 걷지말라. 그대가 낸 발자욱은 뒷 사람의 길이 된다.’ 는 말은 스님을 두고 한 말인 것만 같았다. 첫 길을 걷는 사람, 그 의미를 알고 있다는 듯이 그의 발자욱은 정연했다. 난분분하게 쌓인 눈 길에 발자국 하나 하나를 가지런하게 찍으면서 그는 보궁에 올랐다.
그가 남긴 발자욱을 보면 누구나 새벽기도를 나선 수행자의 발자욱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눈 위에 남긴 발자욱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그의 자세 또한 마찬가지였다. 원칙과 진실과 순수를 그는 인생이라는 시간의 길 위에 정연하게 찍으며 살아가고 있다. 단 한번도 어지러운 발자욱으로 남겨진 길을 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발을 뻗으면 벽에 닿을 것만 같은 작은 방에서 그는 동상에 언 귀를 비비면서 손에 책을 들었다. 기도를 하면서 어록과 경전을 열심히 읽었다. 행자때는 시집을 읽고 기도를 하면서는 경전을 보는 그는 이미 책이 바뀌었듯이 변해가고 있었다. 그 변화는 단절이 아니라 존재의 심화와 확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전히 친절하고 따뜻했지만 그 친절과 따뜻함은 행자때와는 다른 것이었다. 친절과 따뜻함의 이유를 이제는 알아버린 사람만 같았다.
스님의 백일기도는 백일을 넘고 삼백일을 넘어서야 끝났다. 그리고 그 후 그는 단기사병으로 대관령에 있는 군부대에 입대했다. 그가 군에 간 소식을 나는 한참을 지나서야 알았다.
그를 찾아갔다. 그는 출퇴근하는 병사였다. 아침에는 부대에 나가고 저녁이면 퇴근하는 군인같지 않은 군생활을 하고 있었다.
촌가의 창고에 벽지를 바르고 불을 들인 방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저녁이면 문틈으로 바람이 새고 밤이면 별이 보이는 방이었다. 방에는 수십권의 책과 휴대용 가스렌지, 그리고 코펠과 도마, 수저 한 벌이 전부였다. 그것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단출한 살림살이일지 몰랐다. 나는 스님의 자취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기분이 좋았다. 그가 나보다 더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난뱅이가 가난뱅이의 살림속에 머문다는 사실이 내게는 이유없는 기쁨이 되었다.
낮이면 책을 읽고 저녁이면 스님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쌀을 씻고 저녁을 준비했다. 반찬이란 김과 감자찌개, 김치가 전부였다. 단출한 반찬의 그 밥이 내게는 꿀맛이었다. 그것은 함께 마주보며 밥을 먹는 사람이 무척이나 좋았기 때문이리라.
맑은 심성을 가진 사람과 마주 앉아 먹는 밥이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라는 것이 그 후에 밥에 대한 나의 생각으로 굳어졌다.
저녁을 먹고나면 차를 한 잔 마시고 황톳길을 걸어 용평휴게소까지 포행에 나섰다. 차도 다니지 않고 길 양쪽으로 감자밭이 도열해 있는 그 길을 때로는 달빛을 받으며, 때로는 비를 맞으며 날마다 걸었다. 그 때 우리의 산책길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자그마한 카세트 라디오와 정태춘 박은옥의 노래가 담긴 카세트 테이프였다. 민요조의 그들의 노래는 황톳길 위에서 우리를 춤추게 했고 또 다른 풍의 그들의 노래는 우리들을 삶의 애환에 머물게 했다. 달빛 비치는 황톳길을 걸으며 어깨춤을 추면 그 순간 뭉쿨 행복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것은 실로 가난한 자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었다. 그래서 또한 낭만적인 수행자들의 행복이기도 했다. 작은 카세트와 테이프에 담긴 노래가 주는 행복은 황톳길과 달빛, 가난한 낭만적 수행자들이 함께 엮어낸 것이었다. 그때 만약 우리가 부유했더라면 그 행복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가난했기에 그런 마음을 지닐 수 있었고 젊었기에 낭만적일 수 있었던 그 시절, 달빛이 비추는 황톳길은 바로 행복 자체였다. 그래서 행복은 언제나 가난이 주는 선물로 내게 기억되고 있다.
■월간 <해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