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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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평화
인간 존엄성 어떠한 가치보다 우월

세상이 혼란스럽다. 그런 만큼 심리적인 불안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떠한 명분이든 사람의 생명이 걸린 전쟁이 아직도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전쟁의 위협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죽이고 죽는 과정에도 명분은 필요한 것인가? 민족이니 인권이니 세계적 정의니 하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이러한 단어들은 결국 또다른 집단 이기주의의 산물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놓고 본다면 어떠한 이념이나 사상 보다 우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파병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한반도의 현실로 다가와 있는 이 마당에 인간 세상에 평화는 가능한 것인지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인간들의 노력에 의해 사랑도 평화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제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까? 필자는 이 상황에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한 아쇼카대왕을 떠올리고자 한다.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대왕(기원전 268-232)은 부왕의 뒤를 이어 전인도의 통일을 위해 정복 전쟁을 벌였다. 그는 왕위에 오른지 8년만에 인도의 동부지방에서 벌어진 칼링가 전쟁의 승리로 전인도를 통일하는 대업을 완수했다. 그러나 그는 이 전쟁에서 숱한 민간인들이 참혹하게 죽어간 모습과 폐허가 된 마을을 보면서 통탄하게 된다. 이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한 정법통치를 통해 인도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아쇼카왕은 왕과 귀족들이 오락으로 행하던 사냥을 금지시켰고, 인도 각 지방을 돌며 국민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했으며, 대대적인 자선사업을 벌여 각처에 고아원과 양로원, 병원 등을 세운다. 뿐만 아니라 길가 마다 우물을 파 지나가는 나그네와 동물들이 먹게 했으며, 국고를 풀어 가난한 사람들을 구휼하였다. 황무지를 개간하여 약초와 과일나무를 심어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도로에는 표지판을 세우고 가로수를 심거나 휴양소를 세워 여행자들의 편리를 도모 하였다. 칼과 전쟁 대신 부처님 말씀에 따른 정법정치를 시행한 결과 국민들이 태평세월을 노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국민을 위하는 길이 무엇이며, 진정한 평화를 찾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부처님의 말씀은 용서와 화해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예화는 파세나디 임금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부처님이 사위성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인데 코살라의 파세나디왕과 마가다의 아자타삿투왕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아자타삿투왕의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처음에 파세나디왕의 패배로 시작된다. 파세나디왕은 겨우 몸만 빠져 나와 사위성으로 돌아왔다.
이 전쟁이 있은 얼마 후 아자타삿투왕은 아예 코살라를 없앨 심산으로 다시 군사를 일으켰으며, 이 전투에서 파세나디왕은 마가다국의 군대를 궤멸시키고 아자타삿투왕까지 사로잡았다. 그러나 부처님의 독실한 신도였던 파세나디왕은 아자타삿투왕을 놓아주기로 작정하고 부처님을 찾아가 ‘아자타삿투왕은 나의 친구 빔비사라왕의 아들이므로 그를 놓아주겠다’고 밝혔다. 이긴다 한들 끝내는 원한만 더욱 커질 뿐이므로 차라리 그를 놓아주어 국가적인 평화를 도모하겠다는 것이 파세나디왕의 뜻이었던 것이다.
진정한 평화는 분노와 미움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그것은 백성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용서에서 가능하다. 파세나디왕과 아쇼카대왕이 그렇다. 그렇기에 부처님께서는 이들의 용기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정치의 본분은 백성을 안락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통해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희생되지 않으면 안될 숱한 중생들의 고귀한 삶과 생명의 존엄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법구경> 안락행품의 게송을 음미하는 것으로 잠든 우리들의 내면을 일깨우기로한다. “나의 삶은 이미 편안하거니 원한 지닌 그 속에서 성내지 안노라. 흔히들 모두 원한 있어도 나의 가는 길엔 원한 없도다./ 승리할 때는 원망을 사고 패배할 때는 열등감에 빠지나니, 승패에 매이는 마음 떠나야 다툼 없어 스스로 평안해지리다./ 열(熱)로는 애욕보다 더함이 없고, 독으로는 성냄보다 더함이 없다. 고(苦)로는 몸보다 더함이 없고 즐거움으로는 열반보다 더함 없도다./ 병없이 건강함은 더 없는 이익, 만족할 줄 아는 것은 더 없는 부귀, 두터운 신의는 더 없는 친구, 열반은 더 없는 행복이니라/ 법을 생각해 수지하는 그 맛을 알고 온갖 망상 그치는 뜻 생각한다면, 다시는 열도 없고 굶주림도 없으리니 진리의 음식을 먹도록 하라”
<본지 상임논설위원·불교학 박사>
200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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