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재보살의 법문
지금까지 선재동자가 찾아갔던 여러 선지식들은 인간세계의 선지식들이었다. 이들을 방문하고 나서 다시 신(神)이나 하늘 세계의 선지식들을 찾아 나서게 되는데, 그 사이에 나타나는 선지식이 관자재보살과 정취(正趣)보살이다.
선재동자는 다시 남쪽의 보달락가(Potalaka)산에 있는 관자재(觀自在)보살을 찾아간다. 그 산에 이르러 이곳저곳으로 이 보살을 찾아다니다가 문득 바라보니 서쪽 골짜기에 시냇물이 굽이쳐 흐르고 수목이 우거져 있으며 부드럽고 향기로운 풀이 깔려 있었다. 관자재보살이 금강보좌 위에 가부좌하고 있고, 한량없는 보살들에게 둘러싸이어서 그들에게 대자대비한 법을 설하여 모든 중생을 거두어 주도록 하고 있었다.
선재동자가 관자재보살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니, 관자재보살은 선재동자를 기쁘게 맞이하면서 그가 대승의 마음을 내어 중생들을 널리 거두어주고 정직한 마음으로 불법을 구하는 것을 칭찬하였다. 선재동자가 예배드리고 나서 보살행을 배우고 보살도를 닦는 법을 가르쳐 주기를 청하자, 관자재보살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크게 가엾이 여기는 행의 해탈문을 성취하였다. 나는 이 보살의 크게 가엾이 여기는 행의 문으로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교화하여 끊이지 아니한다. 나는 이 크게 가엾이 여기는 행의 문에 머물렀으므로 모든 여래의 처소에 항상 있으며 모든 중생의 앞에 항상 나타나서 보시, 사랑하는 말, 이롭게 하는 행, 같이 일함 등으로써 중생을 거두어 주기도 한다. 육신을 나투어 중생을 거두어 주기도 하고, 갖가지 부사의한 빛과 깨끗한 광명을 나타내어 중생을 거두어 주기도 하며, 음성으로써 하기도 하고 위의(威儀)로써 하기도 하며, 법을 말하기도 하고 신통변화를 나타내기도 하며, 그의 마음을 깨닫게 하여 성숙케 하기도 하고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함께 있으면서 성숙케 하기도 한다.
선남자여, 나는 이 크게 가엾이 여기는 행의 문을 수행하여 모든 중생을 구호하려 하노니 모든 중생이 험난한 길에서 공포를 여의며 번뇌의 공포, 미혹한 공포, 속박될 공포, 살해될 공포, 빈궁할 공포, 생활하지 못할 공포, 나쁜 이름을 얻을 공포, 죽을 공포, 여러 사람 앞에서의 공포, 나쁜 길에 태어날 공포, 캄캄한 속에서의 공포, 옮겨 다닐 공포, 사랑하는 이와 이별할 공포, 원수를 만나는 공포, 몸을 핍박하는 공포, 마음을 핍박하는 공포, 근심 걱정의 공포 등을 여의기를 원한다. 또한 나는 여러 중생이 나를 생각하거나 나의 이름을 일컫거나 나의 몸을 보거나 하면, 다 모든 공포가 면해지기를 원한다.
나는 이런 방편으로써 중생들을 다시 가르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고 영원히 물러가지 않게 한다. 선남자여, 나는 다만 이 보살의 크게 가엾이 여기는 행의 문을 얻었을 뿐이다.”
관자재보살이 설하고 있는 ‘크게 가엾이 여기는 행의 해탈문(大悲行解脫門)’은 세간 속에 머무르면서 평등하게 일체중생을 수순(隨順)하며 자비행을 성취하는 것이다.
관자재보살이 이 해탈문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항상 모든 여래가 계신 곳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의 앞에 언제나 나타나 그들을 거두어준다고 하는 것은 여래의 마음은 대비심이기 때문에 보살이 대비심을 가지면 여래와 함께 있는 것이며, 이 대비심으로 말미암아 고통에 빠진 중생의 앞에 항상 나타나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관자재보살은 일체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여러 모양으로 몸을 변화해서 나타내 보이기도 하고, 동류(同類)의 몸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일체중생을 거두어주려는 커다란 서원(誓願)을 일으켜서 그들이 겪는 여러 가지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한다.
인생의 행로(行路)는 참으로 험난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수많은 공포(두려움)가 중생들을 편안치 못하게 하고 괴롭힌다.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생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절실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관자재보살은 우선 고통 속에 빠져 있는 중생들을 구호하려고 하여 심지어는 어떠한 중생이든지 그를 생각하거나 그의 이름을 일컫거나 그의 몸을 보거나 하면 모든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원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관자재보살은 이렇게 여러가지 방편으로써 중생들의 공포를 여의게 하고 나서는, 다시 그들에게 불법을 가르쳐서 보리심을 내어 영원히 퇴전하지 않도록 한다.
중생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이 있는 것이고, 중생과 부처님을 연결시키는 고리가 바로 대비심이다. 대비심이야말로 중생세계 속에 부처님을 출현시키는 거룩한 생명이다.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