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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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돕는 일
드러내지 않는 따뜻함

나뭇잎이 하나둘씩 떨어질 때마다 조금씩 추워지는 요즘, 선재는 훈훈한 이야기 하나를 들었다. 전철역에서 노인이 발을 헛디뎌 선로로 떨어져 의식을 잃자 한 청년이 뛰어내렸다. 노인을 승강장 위로 밀어올리려던 청년은 열차가 역에 들어서자 선로 옆 배수구로 몸을 피해 두 사람 다 무사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선재도 가끔씩 듣는 이야기와 별다르지 않다. 진짜 이야기는 그 다음이다. 그 청년은 경찰에서 “나 아닌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라는 말만 남기고는 취재 요청이나 감사 전화까지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선재는 이 청년이야말로 남을 돕는 일이란 이렇게 해야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남을 도우면서 무슨 희망이나 갚음을 바라지 말라는 가르침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유명하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서는, 오른손의 선행을 그 오른손 자신도 몰라야 한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이다.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 선여인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킨 사람은, 마땅히 일체 중생을 제도하리라. 일체 중생을 제도했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도 제도한 적이 없다. 무슨 까닭이겠느냐?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과 인상과 중생상이 있으면 실로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행여 내가 남을 도운 사실을 알면 아예 남들에게 그 모든 것을 돌리라고 가르친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든지 조그마한 보시를 하고라도 증상심(增上心)으로 널리 일체중생을 위하는 가장 수승한 선심을 내어, 얻은 공덕을 일체중생에게 회향할 줄 알면, 그 이익이 다할 때가 없느니라.” <방등경>의 말씀이다.
“나 아닌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라거나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말은 하기 쉽다.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은 만나기 어려웠다. 그저 당연하기만 한 상식이 화제가 되는 현실, 가슴 따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쉽다.
■최원섭(성철선사상연구원 연학실)
200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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