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에 수출한 백제 목탑기술
목탑을 세우는 기술은 삼국 가운데 백제가 단연 뛰어났다. 백제는 신라의 황룡사 9층목탑을 조성할 때 석공예 기술자 아비지(阿非知)를 파견하였고, 또한 일본에도 588년 백제의 기술자인 노반공(露盤工), 조사공(造寺工), 조와공(造瓦工), 화공(畵工)을 보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전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제에는 목탑이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심초석과 주초석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목탑지만 남아 있는데, 기록이나 목탑지만으로 백제의 화려한 영화를 떠올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일본 나라시대의 목탑 가운데 백제 목탑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탑인 나라의 호류지(法隆寺) 5중탑이다. 일본에서는 탑의 층수를 층이 아니라 중으로 세기 때문에 5층탑이 아니라 5중탑으로 표기한다. 어떤 이는 지붕이 여섯 개인데 왜 5중탑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1층의 지붕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붕이 이중일 뿐 층은 1층이다. 더군다나 아래의 지붕은 후대에 덧붙인 것이므로 이것을 빼고 보아야 백제 탑의 모습이 분명해진다.
호류지 5중탑은 1층의 석조 기단에 5층의 목조건물이 서있고, 건물 중심에는 찰주가 솟아 상륜부를 이루고 있다. 2층에서 5층까지의 건물을 보면, 몸체는 잘록하고 지붕은 완만한 경사로 얇게 좌우로 활짝 펼쳐진 형상이다. 이러한 조형은 당시로서는 고난이도의 건축구조인 다층의 목조 건물을 세우는 공법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즉, 몸체를 작게 함으로써 위에서 짓누르는 무거운 하중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높이와 지붕을 살려 위용을 과시하면서 몸체를 줄여 안전을 도모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백제인의 노하우인 것이다. 신라에서 황룡사 9층목탑을 건립할 때 백제의 기술자를 초청한 것도 이러한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호류지 5중탑과 같은 탑을 정작 백제에서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목탑은 모두 없어져 비교할 수 없지만 석탑인 정림사지 5층석탑에서 유사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정림사지 5층석탑은 호류지 5중탑처럼 몸체가 잘록하고 지붕이 얇고 길게 펼친 형상을 취하고 있다. 1층의 벽체가 육중한 탑을 받치고 있고, 2층 이상의 벽체는 잘록하고 지붕은 마치 새의 날개처럼 좌우로 시원하게 뻗어 우아한 기품을 자아내고 있다. 목조로 된 호류지 5중탑을 석조로 간략하게 표현하면 정림사지 5층석탑이 되는 것이다. 정림사지 5층석탑은 비록 돌로 만들었지만 백제시대 목탑의 이미지가 충실히 남아 있는 문화재로서 건축사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경주대 문화재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