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정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한신대 강사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할로윈’(Halloween)과 관련된 상품들이 대박을 터트리면서 ‘할로윈 풍속’이 급속도로 문화 시장을 점령해 가고 있다. 지난 10월 31일이 바로 ‘할로윈 데이’(Halloween Day)로 불린다. 우리는 어린아이로부터 시작해서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이 말이 담고 있는 의미를 재현하는 데에 아무런 주저함도 느끼지 않는다. 이미 할로윈은 신조어로서 한국어 목록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용어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10월의 마지막 날에 대한 이미지를 조금씩 앗아가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유통된 낯설고, 생소한 말이 이 땅에 상륙하여 10월의 마지막 날에 대해 의미부여를 새롭게 하고 있음을 뜻한다.
할로윈 데이가 우리에게까지 온 것은 강력한 상업주의 물결을 타고 이 땅에 상륙한 ‘발렌타인 데이’나 ‘크리스마스’가 우리 사회에 유통된 과정과 비슷하다. 1990년대 초부터 외국의 기업들이 들어오면서 할로윈 축제도 함께 들어 왔고, 불과 3년 전에는 특급호텔이나 고급 클럽에서만 열렸던 할로윈 축제가 최근에는 영어학원과 유치원은 물론 거의 모든 호텔과 각종 클럽들이 그 상업적 가치를 인식해서 이 날을 이벤트성으로 기획하여 붐을 주도하고 있다. 이렇게 ‘할로윈 데이’가 하나의 상품이 될 수 있는 것은 이 축제가 주는 즐거움과 상업적 이해가 소비자들에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할로윈 데이는 기원에 있어서 매우 종교적이다. 유럽의 켈트족은 인간의 죽음과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죽음의 신인 삼하인(Samhain)을 믿었다. 당연히 삼하인은 두려움의 대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진정시키고, 죽은 자의 영혼이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그에게 희생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베풀었다. 이날의 의식인 삼하인 축제가 모든 성인의 날(만성절, Toussaint 혹은 All Hallow Day), 즉 11월 1일의 하루 전날이라 해서 ‘All Hallow′s Eve’라는 명칭으로 바뀐 후에 ‘Halloween’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이 풍속이 생산된 유럽 지역에서는 시들해지고 있는데, 미국에 전파되면서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와 함께 3대 명절로 꼽을 정도로 큰 축제가 되었다. 이런 열기는 그대로 우리 사회에 옮겨왔다. 미국에서 살다 온 경험이 있는 사람들, 즉 유학생들이나 이민자들에게는 미국 문화에 익숙해 있어서 이러한 문화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과거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 살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기왕에 미국 문화가 우리 가까이 스며 있는 마당에 굳이 우리 것이 아니라 해서 거부할 만한 이유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제공해 주는 ‘축제와 놀이’의 기회이다. 구획된 도시 속에서 마법에 걸린 듯이 일상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축제와 놀이는 긴장을 해소시켜 주며, 단조롭고 재미없는 일상에 삶의 활기를 되살려 준다.
우리사회는 이렇다 할 축제와 놀이가 없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유통되지 않고 있다. 할로윈 축제가 제공하는 희극적이고 역설적인 축제와 놀이의 이미지는 두려움과 긴장으로 표현되는 삶의 종교적 심각성을 해소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이방의 신화적 동기를 축제적 문화상품으로 재현하여 유통시킨 미국사람들의 문화적, 상업적 전략에 우리가 놀아나고 있다는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서 할로윈 축제가 제공하는 유머와 재미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반추해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