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법 스님
바람이 차다. 바람이 찬 것 보다 세상이 더욱 차다. 따뜻한 둥지를 찾아 걸음을 옮기고 싶다. 실상사를 바라보면 따뜻함이 새어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한국 불교의 생명의 소리가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도법 스님은 작고 왜소하다. 그러나 스님의 가슴에는 삼계 모든 중생의 절망과 비애와 희망이 다 들어 있다. 그는 아파한다. 한국 불교의 현실에 대해서 그리고 생명을 파괴하는 현실과 물질문명에 대해서. 그의 사고와 행보는 그 아픔에 의해 추동된다. 그래서 그의 행보에서는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아, 진실! 그것은 얼마나 만나기 어려운 것인가. 얼마나 그려오던 것이었던가.
도법 스님은 지금 1000일 기도를 하고 있다. 그것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인한 민족의 아픔을 자기화 하고 그 아픔을 치유하고자 하는 발원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부처님이 중생에 대한 끊임없는 연민으로 출가했듯이 스님은 지리산을 떠도는 영가들에 대한 하염없는 연민으로 3년의 시간을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에 대한 극복 없이 한반도에 평화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 또렷이 알고 있다.
우리가 사는 한반도는 여전히 아픔으로 얼룩져 있다. 이념으로 갈리고 세대로 나뉘고 지역으로 갈라져 끝없는 분열의 시간 속에 있다. 모두들 대안 없는 삶에 매달려 너와 나를 적대시 하며 투쟁의 예봉을 꺾지 않고 있다. 정의도 선도 없는 다툼 속에서 우리의 미래는 불안 하기만 하다.
도법 스님은 우리들의 의식과 존재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한다. 많은 것을 이루고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들 삶에 고통과 대립이 끊이지 않는 것은 세계와 존재의 본질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의 결여 때문이라고 한다. 존재와 전체와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고통과 대립이 해소된 날들이 우리의 미래로 자리할 것이라고 말한다.
스님의 기도는 스님의 말대로 존재와 전체의 올바른 관계의 실천이다. 세계가 바로 자신의 생명이며 자신의 모습이 세계의 모습이라는 동체대비의 인식을 스님에게서는 엿볼 수가 있다. 그래서 스님의 기도는 이 세계를 향한 나눔이며 너와 나라는 대립이 끊어진 무심의 실천인 것이다.
한 수행자가 진실을 담보해 일생을 살아가기란 쉽지가 않다. 끊임없이 발심하지 않으면 그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저녁 어둠이 내리듯 세상이 혼탁해 가듯 우리의 마음도 또한 그렇게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법 스님에게서는 오염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의 곁에서는 거짓의 자취 또한 찾을 수가 없다. 그는 아파하지만 쓰러지지 않고 길을 가는 사람으로 내게는 기억되고 있다. 외롭지만 쉬지 않고 길을 가는 것은 스님에게 구세대비(救世大悲)의 원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님은 작은 몸집으로 서서 기도한다. 지리산의 상처 받은 영가와 생명평화를 위하여. 마침내 천일기도의 회향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나는 스님의 기도가 스님의 일생을 통해서 계속되리라는 것을 안다. 스님의 기도에 반향이 있든 없든 스님은 일생을 기도할 것이다. 그것이 매 순간 발심하는 수행자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번 출가 했다고 출가의 의미가 완성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매순간 출가의 정신을 잃지 않고 발심할 수 있을 때 그리하여 마침내 ‘출가’를 삶의 어느 순간에서도 실현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출가 수행자라 할 것이다. 도법 스님은 그렇게 살고자 하는 출가 수행자이다. 끊임없이 발심하는 수행자, 그리하여 가슴에 끊임없이 연민이 고이는 수행자이기에 그는 삶의 어느 자리에서도 구세대비의 원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스님은 소탈하고 진지하다. 권위를 내세우기 보다는 함께 이해하고자 하고 사랑이 있기에 스님은 한께 고뇌하자고 한다. 욕심도 야망도 그에게는 없다. 다만 길에 대한 꺼지지 않는 사랑과 염려만이 있을 뿐 이다. 11월 15일 스님은 천일기도를 회향하고 평화결사를 시작한다. 어두운 세상에 작은 빛 하나 놓고자 했던 스님의 회향식에 나도 가서 작은 불 하나 들고 싶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스님의 큰 원력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우리 종단과 사회에는 많다는 소식을.
성전(惺全) 스님은 태안사로 출가해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했다. 월간 <해인>과 <선우도량> 편집장, 서울 옥천암 주지를 지냈다. 현재 서산 부석사에 주석하고 있으며 월간 <해인>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