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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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종교적 실천의 핵심키워드 중 하나

종교와 철학의 차이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불교를 종교가 아닌 철학이라 말하기도 한다. 혹자는 불교를 철학과 같은 종교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불교는 종교이기도 하고 철학이기도 한 것인가? 아니면 철학적 요소가 강한 종교라 보아야 하는가?
각자의 시각에 따라 달리 말할 수 있지만 우선 철학과 종교의 차이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철학이란 논리를 생명으로 한다. 그래서 명제나 논제에 대한 증명을 논리라는 도구로 해결한다. 때문에 논리적이지 않은 것, 논리에 의해 증명되지 않는 것은 철학이라 말할 수 없다. 반면에 종교는 논리 보다는 실천을 중시한다. 여기서 실천이란 용어는 종교적 영성 수련과 사회적 실천을 동시에 포괄하는 개념이다.
불교를 철학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느 정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불교를 철학 그 자체로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불교는 철학이 아니라 종교라고 말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초논리적인 요소도 있으며, 그러한 초논리를 이용하여 사회적 실천과 종교적 덕성의 함양을 유도한다.
불교라는 종교가 지니고 있는 종교적 실천 중에서 가장 강조되는 핵심 키워드 중의 하나가 자비라는 용어이다. 자비의 실천을 통해 불교가 추구하는 사회 건설을 획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불교의 자비는 조건을 따지지 말라고 전제한다. 조건을 따지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자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초기 경전 중의 하나인 <숫타니파타>에는 다음과 같이 자비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연약한 것이나 강한 것이나, 짧거나 길거나, 큰 것이거나 작은 것이거나,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가까이 있는 것이나 멀리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났거나 장차 태어나려는 것이거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여, 다 행복하여라(145-146송). 어미가 위협을 무릅쓰고 자식을 지키듯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 자비로운 마음을 갈고 닦아라(148송). 위이거나 아래이거나 모든 생명에게 방해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적의를 품지 말고, 선행을 갈고 닦아라(149송). 서 있을 때나 걸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눈을 뜨고 있는 한 자비로운 마음으로 선행을 쌓기에 최선을 다하라. 이러한 삶이 가장 거룩한 삶이니라(150송).”
조건이 없다는 것은 기실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인간이란 감정의 동물인 만큼 매사를 감정에 따라 판단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무조건이란 것은 감정적인 판단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논리적으로는 분명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실생활 속에서 무조건적으로 자비를 실천하는 일은 힘든 만큼 기쁨을 동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러한 삶은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룩한 삶인 만큼 세속적인 희생을 전제해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자비의 성격이 어떤 것인가를 두 가지 경전을 인용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땅은 깨끗한 것도 받아들이고 더러운 똥과 오줌도 받아들인다. 그러나 땅은 ‘이것은 깨끗하다. 이것은 더럽다’고 분별하여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이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은 그 마음을 땅과 같이 해야 하리라. 나쁜 것을 받거나 좋은 것을 받더라도 조금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오직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중생을 대해야 한다. ”(<증일아함경>제38)
“중생은 사랑하는 생각을 따라/ 사랑의 마음속에 갇혀버리나니/ 사랑을 바르게 알지 못하므로/ 괴로움을 갖가지로 준비하느니라. 만일 사랑을 바르게 알면/ 거기에 애착은 생기지 않으리니/ 사랑에는 나와 남이 없거늘/ 남이란 말을 어찌 하랴. 사랑에서 낫고 못남을 보면/ 한없는 다툼이 생기나니/ 보고 매달려 애착하지 않으면/ 위와 아래가 없어지느니라.”(<잡아함경>제38)
<증일아함경>에서는 대지처럼 일체의 중생을 포용하는 자비를 역설하고 있다. 무한한 연기의 세계를 관찰한다면 배척할 대상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아니 대지처럼 생명체를 무조건 사랑할 수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호오·귀천을 가리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사랑하는 마음, 진정한 자비의 실천은 그러한 사랑이다. 이것을 아가페적 사랑이라 말한다.
<잡아함경>에서는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들의 마음이 닫힐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이기적이고 선별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리들은 에로스라 표현한다. 감정에 충실하며, 너와 나를 구분해서 사랑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기쁨 보다는 번뇌를 야기하는 것이다.
<본지 상임논설위원·불교학 박사>
200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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